"죽어가는 골목을 살리고, 이를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담는 거리 심폐소생 프로젝트"
매주 금요일 방송되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한줄 요약 설명이다. 요리 연구가이자 요식업 CEO인 백종원 씨가 죽어가는 상권을 살리기 위해 식당주인에게 직접 요리 노하우를 전수하는 과정을 그리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면서 점차 '골목'에서 멀어졌던 손님들을 유치해 죽어가던 골목상권을 살려내겠다는 취지다.
5일 첫 방송을 한 이 프로그램에서 백종원 씨가 선정한 첫 골목은 '이대 삼거리 꽃길'. 이대 거리는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상권으로 꼽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점차 쇠락을 길을 걷게 됐다. 인근 홍대, 연희동 등이 독특한 가게 등으로 경쟁력을 갖추면서 소위 '핫플레이스'로 뜨는 동안, 이대 거리는 이렇다 할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고 그에 따라 상권이 쇠락하게 된 것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그런 이대 골목상권의 부활을 꿈꾸며 시작했다. 지난 12일 방송분에서는 이대 백반집 사장과 백종원 씨가 제육볶음 대결을 벌였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백반집 사장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백종원 씨는 "내가 이기면 제가 하라는 대로 하셔야 된다"며 손님을 대상으로 한 제육볶음 블라인드 테스트를 제안했고, 백반집 사장 역시 이를 수락했다. 결과는 당연히 백종원 씨의 승리였다.
골목상권 죽이는 대형 프랜차이즈
사실 이 프로그램은 시작할 때부터 여러 비판을 받았다. 대표적인 비판이 골목상권을 죽이는 대형 프랜차이즈 대표가 되레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 골목상권을 망가뜨린 주범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송을 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실제 백종원 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외식기업 더본코리아는 빽다방‧새마을식당‧한신포차·홍콩반점‧본가 등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다양한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이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형 프랜차이즈의 골목상권 진출은 젠트리피케이션 속도를 가속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소위 뜨는 동네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입점하면 기존 상인들이 밀려나게 된다는 것. 실제 대형 프랜차이즈의 입점은 임대료와 보증금의 상승을 불러오고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기존 상인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
허자연 도시공학 박사(지방공기업평가원 전문연구원)가 2015년 발표한 '서울시 상업가로의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를 보면 가로수길의 프랜차이즈 업종 개수는 2007년에서 2014년 사이 30개에서 225개로 무려 8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와 함께 300~350만 원(2007년 기준)이었던 전용 66제곱미터(㎡) 점포의 월 임대료는 2013년 기준으로 1000만 원이나 급등했다. 권리금도 마찬가지다. 2013년 거래되는 권리금은 4억 원을 웃돌았다.
무너진 '백종원 상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동시장 먹자거리는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음식점이 많아 관광명소로 손꼽혔다. 특히 가격이 저렴하고 양이 많은 백종원 씨 식당이 인기를 끌면서 백 씨 점포 수가 한때 19개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권이 발달하는 만큼 임대료 상승 폭이 커졌다. 건물주들이 '백종원 상권'이라는 명분으로 임대료를 올렸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임대료는 2년 전보다 30% 정도 올랐다. 33㎡ 기준으로 보증금 5000만 원에 월 임대료 300만 원, 그리고 권리금은 1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 씨 프랜차이즈가 다른 프랜차이즈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기존 상인들과 함께 골목상권을 키웠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존 상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백 씨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서 기존 영동시장 상인들은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골목을 떠났다.
누구를 위한 골목상권의 부활일까
그간 백 씨는 여러 차례 음식 방송을 맡았다. 외식업 장인들의 맛있는 음식 소개와 함께 그들의 맛 개발과 유지 노하우를 소개한 <3대천왕>, 푸드트럭을 이용해 장사에 나선 젊은이를 대상으로 장사 조언, 레시피 개발 등을 알려주면서 이를 통해 자립을 도와주었던 <푸드트럭>.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백 씨의 세 번째 음식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백 씨가 지속해서 방송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외식업의 파이를 키우고 싶다는 것.
백 씨는 <백종원의 골목식당>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유명한 연예인도 아니고 외식업자"라며 "외식업에 관심 없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이끌어 새로운 소비층을 만들고 싶다는 뜻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백 씨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은 급속도로 진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상권이 발전할 경우, 정작 상권을 키운 상인들은 급상승한 임대료 등을 감당하지 못해 밀려나게 된다. 이는 강남 가로수길, 성수동, 홍대, 상수동, 한남동 경리단길 등에서 수도 없이 확인된 사실이다.
물론, 이를 백 씨가 책임질 이유도, 명분도 없다. 국회에서 잠자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방송을 보는 게 불편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백 씨와 제육볶음 배틀을 진행한 이대 백반집은 8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 가게가 백 씨의 조언인지 모르겠으나, 10가지가 넘던 메뉴를 확 줄여 현재는 제육볶음 등 단 세 가지로 장사하고 있다.
아마 백 씨의 레시피와 조언, 그리고 방송의 후광이라면 이대 백반집은 날로 번창할 것이다. 그에 따라 프로그램의 취지인 골목상권은 성장할 것이고, 외식에 무관심한 소비층도 자연히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방송이 끝난 후, 언제까지 이 백반집이 그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누구를 위한 골목상권 부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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