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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지국가의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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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지국가의 길을 열다

[제안발제]

1 '보편적 복지국가'가 시대정신인 이유

서구에서는 18세기와 19세기에 걸친 근대국가의 발전 과정을 통해 봉건적 신분질서를 철폐함으로서 공민권(civil rights)이라는 사회적 자유권을 쟁취하였다. 이것이 시민권(citizenship)의 첫 번째 구성요소다. 그리고 20세기 초반까지 시민권의 두 번째 구성요소인 정치권(political rights)을 제도화하였다.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대공황이 초래되었고, 사회양극화는 심화되었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각국에서 더 나은 삶(복지)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민권의 세 번째 구성요소인 사회권(social rights)의 보장이 최대의 정치적 이슈가 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정치적 좌우를 막론하고 복지국가 건설로 매진하였다. 그 결과, 시장과 가족이 복지의 대부분을 제공하던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넘어 국가가 경제와 복지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 인류는 역사상 최고의 경제성장과 균형 잡힌 복지를 향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시기를 복지국가 또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부른다.

유럽 복지국가들이 경제와 복지에서 역사상 최고의 성과를 누리던 이 시기에 우리는 정치사회적 혼란과 극도의 빈곤 속에 해외원조에 의존하며 여전히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 이후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역동적인 발전을 이룬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중화학공업 중심의 압축적 경제성장이 성공함으로써 산업화를 달성하였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화를 달성하였다. 유럽 국가들이 두 세기에 걸쳐 이룬 역사적 성과를 불과 30여년 만에 달성한 것이다. 그런데 1997년의 외환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과 미국이 요구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사회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발전국가로부터 시장만능국가로 변화된 것이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일부 가난한 사람들만 선별하여 복지를 제공하는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정책의 짝이 그것이다.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사회적 자유권과 정치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었으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경제사회의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시민권의 마지막 구성요소인 사회권을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으며, 4대 사회보험의 확립과 사회서비스의 제도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의 비중이 8.5%로 OECD 평균(21%)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주요 선진국의 1/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도적 준비 수준에서 복지국가의 입구에 다다르긴 하였으나, 복지지출 측면에서는 여전히 복지후진국에 속한다.

우리는 1997년의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 없이도 '각자도생'의 방법으로 경쟁시장에서 개인의 복지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열심히 살았다. 이렇게 시장복지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은 가족복지가 보태주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쟁시장에서의 각자도생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실업과 고용의 불안정으로 시장복지는 불확실해졌고, 가족복지는 대부분 해체되었다. 이제 많은 국민들이 이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민생이 만성적으로 불안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일자리 불안이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모든 것을 왜곡시킨다. 10%의 좋은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무한경쟁은 대학교부터 초등학교까지 우리나라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이다. 비정규직과 저임금노동을 양산하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감세, 규제완화, 민영화)에 기인한 것이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서 조정시장경제의 복지국가 경제정책이 요구된다.

다음으로 우리는 교육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 의료 불안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사교육에 매달리고 능력 되는대로 민간보험에 가입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불안은 심화된다. 서민과 노동자등 보통의 국민들은 사교육 경쟁에서 부자들과 고소득 전문직들을 이길 수 없다. 결국, 학벌과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며, 더는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런 승산 없는 각자도생의 무차별적인 사교육 경쟁이나 민간보험 가입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산업과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누구나 봉착하게 되는 생애주기별 위험에 대한 사회적 대처방안을 보편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럽 선진국들이 이미 오래 전에 달성했고 환경의 변화에 조응하며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모습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거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과거 수십 년 동안 '국가와 복지와 세금'에 대해 저항감을 키워오며 자유경쟁과 시장만능의 성장주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 국민들이 이제 보편적 복지국가를 요구하며, 누구나 생애 전 과정에 걸쳐 기본소득(아동수당, 실업급여, 노후소득 등)과 사회서비스(보육, 교육, 의료, 요양)를 보장받는 '보편적 복지'가 제대로 제도화된다면 기꺼이 누진적 방식으로 세금을 더 내겠다고 한다. 이는 참여정부 말기의 상황과는 현저히 다른 것이다. 2007년 당시, 참여정부에 피로감과 실망을 느낀 많은 국민들이 "부자 되세요"라며 장밋빛 성장주의를 내세우는 보수진영에 최후의 기대를 걸며 현 정권을 선택했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우리 국민은 그 선택이 잘못 되었음을, 각자도생의 시장만능주의가 더 이상 우리의 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명박 보수정권의 무능 탓도 크겠지만, 보수진영이 내세우는 선진화 담론의 주장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현재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기 어렵겠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70% 이상의 국민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미국식의 시장만능국가가 아니라 스웨덴식의 보편적 복지국가로 발전하길 원하고 있다. 최근 수년 사이에 우리 국민의 생각을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은 외부의 어떤 이념적 세뇌나 좌파의 조직적 선동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발붙이고 살아온 대한민국 경제사회의 현실, 즉 신자유주의 시장만능국가가 초래한 사회양극화와 민생 불안 그 자체다.

2. '보편적 복지국가'의 담론과 주요 내용

우리나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압축적인 경제사회 발전을 역동적으로 달성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서 휘청거리며 경제사회의 양극화와 만성적 민생불안으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적 달성에 이어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보수진영은 '선진화담론'을 통해 선진국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사회를 지배해온 선진화담론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선별적 복지체제의 이분법적 결합에 불과하며, 이것을 통해서는 결코 선진국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시기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던 선진화담론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를 사실상 지배해온 성장주의담론이자 신자유주의 성장체제론의 다른 이름이다. 이러한 선진화담론의 귀결이 산업의 양극화, 고용 없는 성장, 노동시장의 양극화, 일자리 불안, 교육·주거·노후·의료 불안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합계출산율이 낮은 나라다. 그리고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이러한 최악의 인구학적 조건은 신자유주의 선진화담론과 절대로 조응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보편적 복지국가담론만이 저출산·고령화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경제사회의 양극화를 넘어 경제와 복지의 안정적이고 통합적인 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는 산업과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불공정성을 극복하려는 민주정부의 조정시장경제체제와 선별적 복지를 넘어서는 보편적ㆍ적극적 복지체제의 통합적 구조물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규제, 누진적ㆍ연대적 조세, 적극적 재정 등의 정책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는 유능하고 책임성 강한 민주정부를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와 선별적 복지를 고수하며 "복지의 확충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기존의 '반 복지' 선진화담론은 잘못된 것이다. 경제와 복지는 대립적인 이분법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유기적 통합체이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 중 경제와 복지가 '상충하는' 대립적 이분법인 나라는 없다. 경제와 복지는 늘 함께 움직인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나라에서는 복지도 함께 발전했다. 북유럽을 위시하여 서유럽 복지국가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들 보편적 복지국가에서는 조정시장경제와 보편적 복지를 유기적 통합체로 잘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는 달랐다. 미국은 경제와 복지가 상충하는 측면이 크게 존재한다. 경제는 신자유주의 성장체제를 견지하고, 복지는 선별적 복지체제에 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시장탈락자와 빈자들에게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에 재원을 많이 투입할수록 경제성장에 부담을 주게 된다. 여기서 복지는 소비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금을 내는 계층과 복지혜택을 받는 계층이 뚜렷이 구분된다. 복지수혜와 재원부담의 분리현상이 특징인데, 이러한 시스템은 지속가능성이 낮다. 경제영역의 신자유주의 양극화로 인해 시장에서 탈락하거나 주변화 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므로 선별적 복지수요는 폭증하는데 비해, 복지를 위한 재원조달에는 한계가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30년 간 미국의 국가복지는 계속 축소되어 왔으며, 중산층의 조세저항은 심각하고, 재정적자는 만성적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와 경제위기에서 보듯, 미국 경제성장의 많은 부분은 부동산과 금융의 거품에 의존한 것임이 드러났다. 앞으로 미국은 '경제와 복지를 대립적 이분법으로 제도화하는 나라는 경제와 복지가 함께 추락'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신자유주의 선진화담론은 잘못된 논리이며, 우리는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시대정신이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소극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민심이 원하는 것은 '복지의 일부 확충'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국가'다. 그래서 선별적 복지 예산을 늘리거나 보편적 복지 요소를 일부 도입하는 것에 머무는 '복지확충 논쟁'이 아니라 기존의 시장만능국가를 보편적 복지국가로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쟁'이 요구된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복지확충'에 기반을 둔 '한국형 복지국가'를 제기하였다. 누가 복지를 좀 더 확충하는 데 더 유능할 것인지, 더 신뢰할만한지, 질문을 이렇게 제약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는가? 박 전 대표가 가장 높은 지지를 얻게 될 것이며, 진보개혁진영에게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양극화 시대의 민생불안을 치유하는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가야할 프레임은 '신자유주의 시장만능국가 대 보편적 복지국가'이다. 시장만능국가에서 '복지확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민생의 5대 불안, 즉 일자리 불안, 교육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 의료 불안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 복지국가의 주요정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자리 복지이다. '일자리 불안'의 핵심에는 비정규직과 저임금노동과 같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놓여있다. 비정규직과 저임금노동 문제는 주로 중소기업, 영세사업, 자영업 등에서 생긴다. 따라서 우리는 산업과 생산체제 전반의 양극화에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경제의 불공정을 제압할 강력한 규제를 실행하고, 노동권을 강화해 비정규직을 최소화해야 한다. 노동계 기준으로 현재 노동자의 52%가 비정규직인데 이 비율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것을 당면과제로 삼아야 한다. 노동시장의 격차 해소를 위한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과 보편주의 국가복지를 통해 사회임금의 비중을 대폭 높이는 등의 정부재정 투입이 요구된다. 그리고 장차 노동의 정규성과 무관하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접근하기 위해 기존의 기업별 노조를 산별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법령정비 작업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정부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경쟁력 없는 기업이 문을 닫아도, 노동자는 정부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의해 보호되고 새로운 직업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일자리가 아닌 '좋은' 일자리를 중소기업 부문과 서비스 부문에서 대규모로 창출해야 한다. 사회서비스 영역의 좋은 일자리 창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모든 것이 민주정부가 개입해서 추진해야 할 일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경제가 아니라 복지국가의 개입주의 조정시장경제를 추구해야 한다.

둘째, 보편적 소득보장이다. 사람은 일생동안 기본소득은 보장받아야 한다. 아동수당, 고용보험, 국민연금이 이를 위한 보편적 제도 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동수당이 아예 없는 아주 예외적인 국가다.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은 사각지대가 전체 가입대상자의 30%에 이르고, 고용보험의 경우에는 수급조건을 감안할 때 실제로는 50%의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영세 자영업자들과 청년들은 고용보험의 보호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단계적으로 아동수당을 도입해야 한다. 주로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자들이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므로, 이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 특히,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일과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한 공정한 경제 및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회보험료 지원과 정부재정에 의한 실업수당이 필요하다. 노후소득보장 위해서는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생계비 수준에 근접하도록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하고, 국민연금을 기초연금(기초노령연금)과 소득비례연금의 2층으로 재구성하는 개정작업이 요구된다.

셋째, 보편적 사회서비스 보장이다. 일생에 걸쳐 사회구성원 누구나 필요로 하는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을 사회서비스라고 하는데, 이는 재화의 성격상 시장에 맡겨두면 오히려 비효율이 초래되는 '시장실패'를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국가가 보편적 제도를 운영함으로서 이들 사회서비스를 온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각자도생의 시장에 맡겨두는 것 보다 비효율은 줄어들고 사회전체적인 편익은 훨씬 더 커진다. 그래서 유럽 복지국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사회서비스를 보편적 복지제도로 제공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들 사회서비스는 사회투자 성격이 크다. 한편, 유럽 보편적 복지국가들의 경험에 의하면, 사회서비스는 좋은 일자리의 보고다. 그러므로 여기에 투입되는 정부재정과 사회보장 기여금의 대폭적인 증대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다. 소비 확대를 통한 성장의 선순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일자리 창출이다. 이는 복지지출을 줄이고 세수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다주므로 복지국가의 지속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민생불안의 가장 중요한 '일자리 불안'을 해소하는 데도 크게 도움을 준다.

넷째, 적극적 복지의 중요성이다. 사회보험에 의한 높은 소득대체율의 현금 지급(이를 소극적 복지라 함) 보다는 일자리의 제공이나 사회서비스 등의 현물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데 대체로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적극적 복지는 국민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하는 조치를 말하는데, 이는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대·강화를 가져온다. 우리나라처럼, 경제사회의 양극화에 대한 대응과 함께 저출산·고령화를 대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진 상황에서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사회투자와 적극적 복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평생교육과 직업훈련, 적극적 노동시장정책도 적극적 복지의 중요한 영역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높아진 인적자원 수준은 장차 지식경제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의 혁신적 경제를 가능하게 하고, 사람 중심의 공정한 경제와 보다 잘 조응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이 제일 낮은 나라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 국민연금·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기여금 등을 모두 합친 '일반정부재정'의 크기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1%밖에 안 된다. 북유럽 국가들은 55%, 유럽연합 평균은 5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45%다. 우리나라 일반정부의 크기가 GDP의 31%로 400조 원 정도인데,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단계적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당장 500조 원은 돼야 한다. 100조 원을 추가 조달할 방법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야당과 시민사회의 주장처럼 부자감세의 철회다. 다음으로, 정부재정을 효율화하고 토건예산 등을 복지재정으로 돌리는 등 재정지출 구조조정과 조세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세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비과세 감면도 단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세금 탈루를 막기 위한 제2의 소득파악기구를 만들든가 국세청을 대폭 강화하는 등의 조치도 취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연간 최대 48조 원까지 세수를 추가 확보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조세재정개혁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비과세감면의 정비 등은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노력을 통해 민주당의 '3+1' 무상복지를 실천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충분히 충당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정작 더 많은 재정이 소요될 일자리 복지, 노인 복지, 주거 복지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개혁진영의 집권 시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직면해 시장만능국가를 보편적 복지국가로 패러다임 전환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복지에 대한 동시적인 개입을 통해 민생의 5대 불안을 함께 해소해 나가야 한다. 이것들이 유기적으로 다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권 4년차 때쯤에는 현재 가치로 연간 100조 원 정도의 재정이 추가로 요구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이는 선진국 수준에서 보면 아주 낮은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크게 결심해야 할 사안이다. 그래서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요구되는 재정규모를 드러내고, 이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증세 없이도 복지의 일부 확대는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증세 없는 복지의 일부 확대'라는 해법으로는 우리시대의 불안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우리 국민이 원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더더욱 이룰 수 없음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위해 국민이 내는 세금은 그저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사회연대적인 투자이자 사회적 기여다. 가령, 지금 우리가 내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료(의료보장 목적세에 해당)를 34% 인상하면, 즉 지금보다 국민 1인당 월평균 1만 1천 원을 더 내면 입원진료의 사실상 무상의료가 가능해진다. 이 경우, 개인 당 월 10만 원 정도 부담하는 민간의료보험료를 낼 이유가 없어진다. 서민가계의 경제적 부담은 크게 줄어들고, 의료 불안의 해소와 함께 사회연대성을 높이는 삼중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이렇듯 복지국가를 위한 세금은 시장에서 각자도생으로 복지를 구입하는 것 대신에 더 효과적이고 연대적인 방식으로 국가가 온 국민의 복지를 책임지는 데 필요한 재원이다. 누진적 증세를 통한 세금과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이야말로 경제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공정한 경제를 달성하도록 하며, 민생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우리는 선택해야 하다. 세금을 더 내지 않는 대신 지금처럼 각자도생의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시장복지를 구입하고 시장만능국가의 국민으로 머룰 것인지, 각자의 능력에 맞게 누진적으로 세금을 더 내고 민생의 5대 불안을 해소하고 경제와 복지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보편적 복지국가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인지, 우리 국민이 직접 선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열려있는 토론이 필요하고,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의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한 기대와 열망을 모아내려는 노력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운동'이고, 풀뿌리 복지국가 시민정치운동이다.

3. 가치 중심의 정치질서 재편과 '복지국가 단일정당론'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이 많이 변하고 있다. 민주당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6.2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의 요구에 조응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당의 노선으로 삼았고, 보편적 복지국가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도 일정하게 좌클릭을 단행하고 있는 바, 당내의 다양한 복지확충 논의와 박근혜 전 대표의 '한국형 복지국가' 주창이 대표적이다. 진보정당들도 복지국가를 주창하고 있는데, 특히 진보신당은 복지국가를 당의 얼굴 수준으로 내세우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별 관심이 없던 복지국가 이슈에 대해 정치권이 이렇게 관심을 집중하게 된 것은 일자리 등 민생의 만성적 불안을 호소하는 국민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정치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국민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 시장만능국가를 대체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올려놓고 있다. 그러므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달성할 정치사회적 경로와 전략이 매우 중요해졌다. 이를 위해 현재 다양한 형태의 범야권 통합 및 연대연합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의 눈에는 지지부진하고, 잘 안 될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하기 싫은데 국민의 눈초리가 무서워서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첫째, 국민의 명령 민란운동과 민주당의 민주진보통합론은 진보정당을 포함한 모든 야권세력을 한 곳에 모아 통합하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진보정당들이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이념정당을 포기하고 대통합정당에 참여하라고 계속 압박하는 것은 자칫 지나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둘째, 비민주 진보통합론이 있는데, 이는 민주당을 제외한 야당과 시민사회가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든 후 총선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대통합론이 아니라 연대연합론인데, 이는 사실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먼저,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헤어졌던 두 진보정당의 통합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설사 두 진보정당의 통합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2012년의 총선에서의 선거연합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소선거구제 하에서, 진보정당의 대표 등 상징적인 몇 자리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 있겠지만, 누가 다른 당 후보에게 당선가능성이 높은 자신의 후보 자리를 양보하겠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최근의 통합 및 연대연합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빠져있다. 혹자는 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연대연합(반MB 연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래서 그 정권으로 뭘 하려고? 이에 대한 답은 이미 지난 6.2지방선거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투표로 말한 바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이 가치를 더욱 확산해야 한다. 전국 방방곳곳의 풀뿌리 시민들이 보편적 복지국가의 가치를 그들의 언어와 방식으로 충분히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 운동을 풀뿌리 복지국가 시민정치운동이라 부른다. 이러한 풀뿌리 시민의 요구에 조응하여 긍정적 상호작용을 미칠 수 있도록 한국 정치가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가치'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민주당이 좀 더 진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진보정당은 분화되어야 한다. 이념정당을 추구하는 진보정파는 진보적 이념정당으로 재편되고, 진보적 대중정당을 추구하는 진보정파는 '복지국가라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다수파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결국, 다수파 전략은 민주당을 포함하는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의미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기대하고 염원을 표출하는 풀뿌리 시민정치운동에 역동적으로 상호 조응하는 한국 진보개혁 정치의 통합적 재편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실현가능한 방법이 '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이다. 이는 기존의 '세력 중심 통합론'과는 달리 '복지국가의 가치'를 높이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세력을 재편하자는 것이며, '중도 진보' 영역에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건설하자는 주장이다. 복지국가 단일정당은 복지국가 시민정치운동에 근거하여 확장된 시민사회의 제 세력, 진보개혁 성향을 강화한 민주당 등 야당, 복지국가의 가치에 동의하는 진보정당의 제 정파 등 모두에게 완전히 열려있다. 과거에 무엇을 했던, 현재 어디에 몸담고 있던, 이런 것보다는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함께 구현하겠다는 의지만 뚜렷하다면, 이들 모두가 복지국가 단일정당에 참여할 수 있다. 한편, 복지국가 단일정당 추진세력은 이념정당을 추구하겠다는 좌파세력을 존중해야 한다. 이들에게 참여를 지나치게 압박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 중심의 정치재편 전략인 '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을 중심으로, 조속히 풀뿌리 복지국가 시민정치운동에 역동적으로 상호 조응할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과 함께 앞으로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풀뿌리 시민정치운동에 진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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