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세상의 공기를 제대로 마셔보지도 못한 채 숨졌다. 이들은 거의 동시에 최상급의료기관인 대학병원 신생아실 인큐베이터에서 숨졌다. 죽음의 원인은 있지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현재까지는 미스터리 사건이다. 1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부검에 들어갔지만 사망원인을 속 시원하게 밝혀줄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16일 밤에 벌어진 이번 사건 소식을 일요일이었던 17일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대학병원인 이대목동병원에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또 최고의 시설과 의료기술을 자랑하는 곳에서 1시간 여 사이라는 매우 짧은 시간에 4명씩이나 숨진 것도 더욱 관심을 촉발했다. 숨진 아기의 부모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그 원인에 대해 의료계뿐만 아니라 언론, 정부, 시민사회 모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건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도 현재로서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필자가 섣불리 진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고 뒤 수습 과정에서 병원 쪽이 보인 행태는 위기가 발생한 뒤 조직이나 기관이 필수적으로 하는 기본적인 대응이나 자세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런 점에서 원인이 밝혀진 뒤에도 이대목동병원이 받게 될 불신은 오랫동안 지속할 것으로 본다.
사건 뒤 병원 쪽은 거짓말로 일관했다. 경찰에 신고해야 했음에도 신고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신고를 했다고 거짓을 말했다. 숨진 아기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이에 대한 사과를 즉각 하지 않았다. 보건소에도 당연히 즉각 신고해야 했음에도 하지 않았다. 사건 당일 밤늦게 부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다음날 자정 조금 지나 보건소에 신고했다. 그런데도 병원 쪽은 자신들이 보건소에 먼저 신고했다고 시치미를 뗐다.
사건 발생 뒤 병원 쪽이 즉각 경찰과 보건소에 신고하지 않고 뭉갠 사실은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대해서도 병원 쪽은 즉각 잘못을 사과하지 않았다.
33년 만에 벌어진 최악의 병원 내 환자 집단 사망 사건
이번 사건은 1984년 고려병원(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중환자실 레지오넬라 집단 감염으로 인한 환자 4명 사망과 의료진 23명 감염 사건 이후 병원 안에서 벌어진 최악의 사고라는 점에서, 그리고 2015년 메르스 대유행 때 빚어진 사실 은폐로 인한 위기 확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대학병원이 또 다시 사실 숨기기에 급급했다는 점에서도 의료계 전체에 끼칠 부정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이처럼 병원에서 벌어진, 매우 특이한 사망 또는 집단사망 사건은 그 어떤 형태로든 즉각 관계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경우도 2006년부터 대학병원들에서 아기와 어린이 등에게서 연례행사처럼 2010년까지 거의 매년 상당한 규모로 사망자를 냈지만 그 어느 병원도 이를 방역당국 등에 알리지 않아 참사의 규모를 키운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다른 곳이 아닌 이대목동병원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하인리히 법칙이 바로 떠오른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은 한 번의 큰 재해가 있기 전에,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나 징후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법칙이다. 하인리히는 큰 재해와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을 1:29:300로 말했지만 여기는 수치는 그리 중요치 않다.
이대목동병원에서는 그동안 여려 차례 경고음이 울렸다. 올 들어서도 5개월 된 갓난아기에게 벌레가 들어 있는 수액을 주사한 일,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결핵에 감염된 줄 모르고 영아들을 돌보다 이들에게 집단적으로 결핵(잠복)을 옮긴 일, 이보다 훨씬 전에는 500명가량의 부비동염 환자 엑스레이 사진을 좌우가 바뀐 것으로 진료해오다 뒤늦게 드러난 일 등 크고 작은 사건이 잇따랐다. 결과적으로 하인리히의 경고가 이 병원에서는 먹혀들지 않은 셈이다.
병원감염 아니라면 혹 의료진의 실수(?)
감염 전문가들도 아기들의 사망 행태를 봐서는 감염이 원인일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사건 발생 뒤 병원 쪽도 절대로 병원감염 사건은 아니라고 펄쩍 뛰며 강조했다. 용의선상에 떠오르는 다른 유력한 추정 원인이 있으면 그리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병원 쪽이 사건 원인을 두고 너무 단정적으로 말할 일은 아니다.
병원감염을 포함해 의료진의 실수, 의료기기의 오작동 등 중환자실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놓고 하나하나씩 따져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고 유력한 원인을 찾아내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한다. 만약 숨진 아기들의 혈액이나 세포조직에서 독성성분이 발견되거나 하면 사망원인은 의외로 쉽게 밝혀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의료진의 실수나 기기 조작 잘못 등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당사자는 알고 있음에도 처벌이 두려워 말을 하지 않고 있다면 이는 병원과 의료계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 늦었더라도 하루빨리 잘못을 드러내는 게 그나마 파장을 줄이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병원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충분히 살 수 있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해당 개인과 가족으로서나 사회로서 엄청난 충격이자 불안이다. 병원에는 살리기 힘든 환자가 오는 것도 다반사여서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죽음에 대해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보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의료진의 명명백백한 실수나 주의태만으로 누군가가 숨지거나 치명적 장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은 사회안전을 지켜내야 할 국가로서 그냥 지켜보고 있을 문제는 아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최대한 신속하게 밝혀내 책임을 물을 일이 있으면 책임을 묻고 그것이 개인에 머무르면 곤란하다.
이와 함께 유사한 사건이 이대목동병원은 물론 다른 병원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기는 하지만 병원안전을 위해서 때로는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강력한 처벌-형벌이 아니라 면허취소-을 해야 한다. 병원이 안전해야 환자가 안전하고 사회가 안전하다. 환자안전을 게을리 하는 병원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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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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