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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저임금 일자리 해결 못하는 복지는 허구다"

'복지 논쟁'에 가려진 것들…"증세 찬반이 핵심 아니다"

최근 정치권, 좁게는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 논쟁의 최대 쟁점은 '증세'다. "돈 없이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돈 얘기 전에 복지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런데 "증세? 그런 거 없이도 복지국가로 갈 수 있다"는 주장이 23일 제기됐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얘기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최근 복지 논쟁이 아주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좋은 일자리 없는 복지는 허구"인데 정작 복지 논쟁에서 '일자리의 질'을 높이기 위한 토론은 쏙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현재 극심하게 나뉘어 있는 두 개의 노동시장을 하나로 만들지 못하면 복지국가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좋은 노동, 좋은 일자리가 복지국가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같은 날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에서 개최한 토론회 제목이 "비정규직 문제,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인 것도 비슷한 고민의 발로다. "돈을 쏟아붓는 방식의 복지가 과연 지속가능한 것이냐"는 의문에 대해 정치권 나름의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늘어날대로 늘어나, 이미 경제개발협력국가(OECD) 평균의 2-3배를 넘은 저임금, 임시직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세금을 더 걷는 것보다 어렵다. 증세보다 더 막강하게 뭉쳐 있는 이해관계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사용자다.

최근 치열하게 벌어지는 정치권의 '복지 논쟁'에 가려진 것들은 무엇일까?

은수미 "두 개로 나뉜 노동시장 합치는 것이 복지국가의 시발점"

은수미 연구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희망쇄신연대 토론회 '일자리 복지,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발제자로 나와 "두 개의 노동시장, 두 개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복지국가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은 연구위원은 "더이상 우리나라는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이 늘지 않거나 나쁜 일자리만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3년에는 '1000인 이상 사업장', 이른바 대기업의 노동자가 전체의 13.6%를 차지했던 데 반해, 2009년 대기업 노동자의 비율은 고작 6.1%에 불과했다. 반토막이 난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5인 이상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비율은 9.0%에서 12.1%로 늘어났다. 경제 성장이 질 나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이는 대기업의 고용 행태 때문이다. 은 연구위원은 "대기업의 인건비와 외주가공비를 비교해 보면 1996년부터 2009년 사이에 인건비는 줄었지만 외주가공비는 크게 늘어났다"며 "즉, 대기업이 노동자를 직접고용해 인건비를 지출하는 대신 외주화를 통해 사람을 쓰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실제 300인 이상 대기업 가운데 사내하도급, 즉 하청업체를 통해 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중은 54.6%로 절반이 넘었다. 조선업의 경우 100%, 철강(92.6%)과 자동차(86.4%)도 그 비중이 높았다.

심지어 공공부문은 민간기업보다 20%포인트나 많은 78%가 하청업체를 두고 있었다. 은 연구위원은 "지난해 우수기업으로 상을 받은 모 공기업의 경우 정규직 대비 사내하청 비중이 무려 600%나 됐다"고 덧붙였다. 최근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홍익대 청소 노동자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도 모두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비정규직 58%는 일자리 옮겨도 또 비정규직…취업빈곤율, 실직 가능성도 높아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악순환의 고리 때문이다. 한 번 저임금 노동자가 되면 좀처럼 그 명찰을 뗄 수 없고,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일수록 근로빈곤(워킹푸어) 상태에 빠지거나 실직할 위험이 높은 악순환의 구조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에 비정규직이 정규직 일자리로 옮겨간 경우는 고작 13.7%에 불과했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외국의 경우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되는 비중이 30~4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이상(57.9%)은 일자리를 옮겨도 역시 비정규직이 됐다.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 즉 '취업빈곤율'을 2001년 8.3%에서 2009년 10.9%로 늘어났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빈곤을 경험한 비율을 묻는 질문에 저임금 노동자의 51.5%가 '그렇다'고 답해, 고임금 노동자(15.2%)의 3배가 넘었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는 일시적인 빈곤(15.2%)이 아니라 반복적(15.2%)이고 지속적(21.1%)인 빈곤에 놓여 있었다. 빈곤을 경험했던 고임금 노동자의 단 3.6%와 2.3%만이 반복적 빈곤, 지속적 빈곤에 놓여 있었던 것과 대비된다.

임금을 적게 받는 일자리일수록 실업의 확률도 높았다. 2009년 임금 근로자의 1년간 실직율은 20.8%였는데 저임금 근로자에서는 그 비중이 무려 61.2%나 됐다. 고임금 근로자의 1년간 실직율, 5.0%의 12배나 높다.

▲ 한 번 저임금 노동자가 되면 좀처럼 그 명찰을 뗄 수 없고,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일수록 근로빈곤(워킹푸어) 상태에 빠지거나 실직할 위험이 높은 악순환의 구조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프레시안(김봉규)

증세보다 더 강력할 사용자의 '저주' "비정규직 규제하면 실업 더 늘 것"

은수미 연구위원은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이나 자발적 실질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등 돈이 필요한 제도도 필요하지만 당장에도 규제를 통해 간접고용 사각지대는 충분히 줄여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조달 자격 제한'이다. 은 연구위원은 "외국은 남녀고용 평등이나 인종차별 금지를 어긴 기업에게는 공공부문 조달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며 "간접고용 비중이 지나치게 큰 기업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불이익을 주면 충분히 민간의 파견 확대를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현실화까지는 쉽지 않다. 사용자 단체의 저항 때문이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부장은 정두언 의원 주최의 토론회에 나와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 강화가 지속된다면 우리 일자리는 해외로 빠져나가게 될 것이고, 실업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비정규직법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이형준 부장은 "기업의 인력운용을 제한하는 규제적 법률로 작용하고 있다"며 비정규직법의 존재에도 불만을 토로했다.

"복지 포퓰리즘"아니라면 민주당 스스로 증명해야

현재 민주당은 은수미 연구위원의 편인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토론회에서 "보편적 복지를 얘기하면서 노동 문제를 빼놓는 것은 공허하다"고 말했다.

천정배 최고위원은 같은 자리에서 "참여정부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큰 부채의식과 죄의식을 숨길 수 없다"고 반성문을 내놓았다.

민주당이 증세 논쟁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노동시장 구조를 들여다 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천 최고위원의 말에 있다. 최근 대법원 판결이 나온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 홍익대 청소 노동자와 비슷한 고용에 있었던 KTX여승무원 문제는 모두 이른바 민주정부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민주당 정부는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심지어 KTX여승무원의 경우 공기업인 코레일(옛 철도공사)에서 벌어진 문제임에도 당시 코레일은 지금의 홍익대와 다르지 않았다. 노동부도 유례없이 2차례나 조사를 했지만 "일부 불법이나 종합하면 합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왔었다.

민주당이 내세우고 있는 보편적 복지가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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