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취미가 재봉이나 뜨개라 하면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 ABC가 있다. 어떤 이는 나의 숨겨진(?) 여성성을 발견했다며 놀라워한다. 나도 몰랐던 나의 '천생 여자 본능'을 본인들이 나서서 발굴해 주기도 한다. 이보다 흔한 반응은 나의 취미를 '살림 잘하겠네'로 해석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내 취미를 통해 가사 능력을 점검했다. 그런 이들 대부분은 집안일을 하지 않거나 관심 없는 이들이 대다수였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많은 경우 나는 피식 웃었다. 여러모로 그럴 수밖에 없다. 우선은 재봉틀 돌리는 장면을 정말 본 적이 없구나 싶어서다. 실제 재봉에 열을 올리며 취미에 매진하는 나날은 살림을 내팽개치는 날이니까. 실 먼지, 옷감 자투리, 곡선자와 핀셋으로 거실 하나쯤은 30분 만에 난장을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니 웃길 수밖에….
둘째로는 살림을 고작 재봉질로 할 수 있는 수준으로밖에 상상 못 한다는 것이 웃겨서다. 21세기, 대체 재봉이 살림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있긴 한가? 어떤 옷이고 싸게 사서 입고 빨리 유통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식의 의류 SPA 매장들이 호황을 누리는 시대이다. 온 집안 식구의 옷감을 마련하여 한 땀 한 땀 옷을 지어 입히는 것이 '살림'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시대 감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재봉질을 취미로 가지고 있는 여자는 살림 잘해서, 가족들의 모든 옷을 만들어 입히고 더불어 빨랫방망이 들고 청계천에라도 가서 그 옷들을 빨아 주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첨언을 하기도 한다. "그런 게 아니고, 직접 뭔가를 만들 수 있으면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되잖아." 가계 비용 절감이야말로 현대적 의미의 살림 잘하는 여자의 미덕이라는 듯이. 왜 여자는 아껴 살아야 하는지, 왜 살림의 역할이 나에게 이토록 끈덕지게 붙어 다니는지 다 차치하자.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도 그 말은 틀리다. 만드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싸니까. 물론 집에 원단과 부자재 등이 왕창 쌓인 10년 차 재봉인이 되다 보니 당장 돈을 들이지 않고도 에코백 몇 개는 너끈히 만들 수 있고, 오늘의 지출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원단과 부자재가 하늘에서 거저 떨어진 것도 아니잖은가.
"여러분 저는 취미를 말하는 겁니다"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많다. 재미로 하는 일이라고요. 스트레스 해소용이라고요. "그거 재미있어? 할 만해? 나는 어렵던데, 나는 이게 안 맞아" 등의 반응이 사실 적합하다. 대화의 내용이 '취미'에 대한 것이니까. 서로의 즐거움을 찾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면 될 테다.
여자의 취미는 그런 식의 대화 주제가 되기 힘들다. 여자의 취미는 통념에 따른 여성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취미', 그 밖에서 이야기될 때가 더 많다. 어떤 취미를 말하든 취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여성이 무엇을, 왜, 어떻게 '좋아하는지'는 그래서 사회적으로 이해되기 더욱 힘들다. 그냥 취미의 이름이 나의 성별에 잘 부합하는지, 주어진 성 역할과 일맥상통하는지 아닌지만 중요하다.
똑같이 뜨개질을 좋아해도 좋아하는 이유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친정엄마도 뜨개질을 상당히 좋아하셨는데, 수리적 감각이 탁월하게 좋았던 엄마는 수치화 된 도표를 현실화시키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셨던 것 같다. 엄마는 상대적으로 재봉질이나 바느질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게이지를 엄밀하게 내지 못하고, 곡선 부위의 뜨개 수치를 늘 엉성하게 계산하기에 뜨개를 어려워하는 반면 엄마는 바로 그 특성 때문에 뜨개가 재미있다고 했다.
내가 뜨개질이나 재봉질을 좋아하는 이유는 엄마와는 꽤 달랐다. 나는 어떤 행동을 통해 '입체'화된 형태가 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엄마가 꽤 수리적 인간이라면 나는 훨씬 건축적인 감각들을 더 좋아했다. 예쁜 것, '여자여자'한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물론 안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평면 위에 그려진 패턴에 내가 어떤 조작을 가하면 그것이 입체가 된다는 것, 그 변화를 즐기기를 엄청 좋아한다는 거다. 그러니 나는 바느질을 촘촘하게 예쁘게 하는 데 관심이 없다. 손바느질보다 속도감이 월등히 빠른 재봉질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색상의 배열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내가 만든 것들이 미학적일 리도 없다. 내가 디자이너가 될 수 없는 이유요, 여전히 이런 것들이 취미에 불과한 이유다. 당연히 삶의 실용을 위해 바느질하지도 않는다.
나는 캠핑을 좋아하기도 한다. 대학 때는 혼자 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산에 오르고, 자전거 여행도 하고, 산에서 비박을 하며, 캠핑을 하고, 밥을 지어 먹고는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텐트 치고 걷는 것을 재미있어했다. 이것 역시 나에게는 없던 형태가 순식간에 입체화되는 기분을 줬기 때문이다. 가족을 꾸리고 캠핑의 'ㅋ'도 모르던 남편을 열심히 설득해서 근 8년 정도 가족 캠핑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여자가 캠핑을 한다 하면 다들 남편을 '따라서' 캠핑에 나섰다고 생각한다. 재봉질이 취미라는 것을 알면 여자들은 캠핑하러 다녀도 캠핑 요리에나 관심을 가지려니 하지, 캠핑 장비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 여기는 사람이 적다. 나는 캠핑장에 갔기에 '특별히' 아이들에게 내가 직접 요리를 해 주려는 것인데, 사람들은 엄마여서, 캠핑장에서도 내가 '당연히' 해 온 바대로 요리하는 줄 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즐기는 행위, 기쁨을 찾는 방식에 있어서 뜨개질이나 재봉질이나 캠핑 사이에 큰 차별점은 없다. 그러나 사회적 통념에 기반하면, 나의 취미인 이 둘은 굉장히 별개의 것이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떤 이가 어떤 취미를 즐기고, 어떻게 그 취미에 빠지게 되었는지의 맥락은 성별과 거의 무관할 때가 많다. 정말이지 이는 개인의 취향이고, 삶의 방식이고,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부여된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1 혹은 2에 기준해서 누군가의 취미를 축소시키거나 엉뚱한 것으로 확대시켜 버리고는 한다.
취미를 성별과 굳이 연관 지어 사고하는 방식들이 그 사람이 삶에서 취할 수 있는 기쁨의 가능성을 얼마나 많이 제한하는 것일까. 각자의 삶의 가능성을 열어 주기는커녕 제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남의 취미에 역시 여자답다느니, 진짜 사내답다느니, 어울리니 마니 쓸모없는 평을 하기보다는 그냥 침묵을 지키는 게 낫지 않을까?
취미는 고독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가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의 고난을 조금씩이라도 해소해야 하는 일일 테니 말이다. 누군가의 취미에 정 관심을 쏟고 싶거든 말로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차라리 자본을 지원하는 것이 맞을 거다. 현대 사회의 취미는 종국에는 물적, 인적, 시간적, 공간적 자본의 양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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