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쯤의 일이네요. 자유기고가가 눈길을 끈 적이 있습니다. 특정 매체에 얽매이지 않은 채 제 혼자 취재 하고 글 써서 기고하는 직업이 젊은이들 사이에 매력 있는 직종으로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하나 둘 자유기고가 타이틀을 달면서 '연합회' 비슷한 단체까지 생길 정도였죠.
하지만 저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반대했습니다. 후배들이 찾아와 자유기고가 전망을 조심스레 꺼낼 때마다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자유로워 보이는 외양,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양은 말 그대로 껍데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로운 기고'는 '밥으로부터의 자유'를 제물 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로운 기고가 아니라 속박된 하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입에 풀 칠 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여러 편의 글을 써야 했습니다. 매수가 많아 그만큼 원고료 총액이 큰 월간지에 하나를 쓰고, 매수는 많지 않지만 원고료 단가가 센 대기업 사보에 하나를 더 써야 겨우 최저생계비가 보장됐습니다. 하지만 월간지에도, 사보에도 자유는 없었습니다. 편집자의 일방적인 청탁만 있었죠. 발품 팔아야 하고, 취재하기 귀찮은 '꺼리'를 자유기고가의 몫으로 떠넘기기 일쑤였습니다.
애당초 성립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자유기고가라는 타이틀을 전문직종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필수요소, 즉 전문분야를 갈고닦을 여지는 애초에 없었습니다. 입에 풀 칠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관심 두는 분야, 자기가 잘 아는 분야와는 무관하게 매체 편집자가 원하는 글을 납품해야 했으니까요.
후배들은 미국의 기사 신디케이트를 운위하면서 전문 내공을 쌓은 다음에 글을 기고하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지 않냐고 항변했지만 저는 잘랐습니다. 그건 그 나라 얘기라고, 우리 매체가 지급하는 원고료가 얼마인지 둘러보라고 반문했습니다. 쓸 만한 글 한 편 팔면 두세 달 먹고살 원고료를 주는 나라와 마른수건 쥐어짜듯 원고료를 깎고 또 깎는 나라를 어찌 비교하냐고 되물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유기고가라는 타이틀은 어느 순간 쏙 들어갔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IMF 위기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대기업이 구조조정 일순위로 사보를 정리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자유기고가가 비교적 손쉽게 짭짤한 원고료를 챙기던 통로가 바늘구멍이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자유로운 글쓰기를 떠들고 있습니다. 주변 후배들에게, 글쓰기 강좌를 듣는 수강생에게 자유로운 글쓰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매체환경과 정보환경이 바뀌었으니까 작심 하고 내공 쌓으면 기자와 '맞짱' 뜰 정도로 글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천에 널린 게 1인 미디어이고, 인터넷이 보장하는 게 빠르고 폭넓은 콘텐츠 유통이니까 글쓰기 전망을 얼마든지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표현 욕구가 분출하는 걸 확인하면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올인'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기고'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떠벌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병행하라고 말합니다. 생활정치, 생활진보가 화두가 되는 요즘 아니냐고, 그러니까 자신의 삶터를 기반으로 사회적 화두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뽑아내라고 말합니다. 정치권과 언론의 공담(空談)이 지겹지 않냐고, 그러니까 실생활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뽑아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프로 같은 아마추어가 되라고 말합니다.
압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인정합니다. 어쩌면 그게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충분히 헤아립니다. 글은 자유로운 신분일 때 가장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기에 주변의 시선과 삶터의 이해관계에 속박된 생활인이 사회적 화두가 될 만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엄청 어렵다는 걸 압니다. 프로 같은 아마추어는 결국 분열될 수밖에 없는 모델이란 걸 압니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올인'을 떠들지 못하고, '자유'를 읊조리지 못하고, '프로'를 추켜세우지 못합니다. 글 쓰려는 욕망, 사회를 향해 표현하려는 열망을 수없이 목격하면서도 차마 장단 맞추지 못합니다. 그 끝이 무엇인지 대충, 아니 충분히 예감하기에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합니다. 그저 내뱉을 수 있는 말이라곤 '병행' 뿐입니다. 표현 욕구를 끌어안으면서도 척박한 현실을 등질 수 있는 방책이라곤 오로지 '병행' 밖에 생각해내지 못하기에 그냥 그렇게 읊조립니다.
어제와 오늘 두 개의 뉴스가 나왔습니다. 전도유망한 시나리오 작가가 밥과 김치를 달라는 말을 남기고 월세방에서 숨져갔다는 뉴스, 그리고 성인 10명 중 3.5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글은 뉴스블로그'미디어토씨 (www.mediatossi.com)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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