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제게는 재일조선인들이 그렇습니다. 어릴 때 MBC 드라마 <113 수사본부>(박복만 연출, 전운·오지명·송재호·백일섭 등 출연, 1973년 10월~1983년 6월 방영)를 꼬박꼬박 챙겨 보고 반공도서를 읽고 자란 저에게 재일조선인은 조총련이거나 성공한 사업가이거나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김명준 감독의 <우리 학교>(김명준 감독, 2006) 덕분에 재일조선인, 특히 조총련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쪽발이, 빨갱이, 이중첩자. 어쩔 수 없이 이 단어들을 입에 올립니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숨긴 채 성공한 기업인. 조총련 소속으로 북한을 내 집 드나들 듯이 왔다 갔다 하는 조선 국적자, 그리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양쪽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경계인. <이산자>의 주인공들은 이 세 가지 표상을 절묘하게 대표합니다. 적지 않은 등장인물들이 극적으로 교차하고 영화가 포괄하는 이산자의 영역이 북한 이탈주민, 국제결혼 이주여성으로까지 확장되어 가는 순간이 쉴 새 없이 펼쳐져서 영화가 정말 미쳤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2007년에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이라는 영화가 개봉됐었지요. 우연히 작은외할아버지의 일기장을 펼쳐보면서 발견하게 된 가족의 숨은 역사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매꽃 2>가 가제였던 속편이 10년 만에 <이산자>라는 이름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그리고 영화 속 수많은 이산자들은 김임만의 여정을 통해 등장합니다. 한국말도 일본말도 제대로 못 해서 창피했던 엄마. 그 엄마가 물을 떠 놓고 아침저녁으로 뭔가를 절실하게 빌거나 가끔 조선의 무당을 불러 굿을 할 때면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이 들통날까 봐 가슴 졸이던 아들 김임만. 이제 중년 김임만은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위해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고향 제주도에서 굿을 하기를 원합니다. 일방적으로 본명(조선명)을 일본 이름으로 바꿔 버린 회사를 상대로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재판을 진행하고 가마가사키의 노숙인들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변해 온 듯합니다.
세 번째 주인공 박수남을 만나러 가며 김임만은 박수남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인물임을 밝힙니다. 재일조선인이라는 것을 숨겼던 청소년기 김임만에게 조선인 정체성을 지켜온 박수남은 대단한 사람이었다고요. 그래서 제작진에게 선배, 재일교포 선배라고 소개합니다. 일본의 침략전쟁을 고발하고 소수자들을 지켜 오며 살아온 박수남과의 만남은 관객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최자헌을 만납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최자헌은 탈북자, 새터민, 이탈주민과 같은 단어를 거부합니다. "왜 넘어왔냐?"고 묻는 김임만에게 "가난하니까"라는 아주 짧은 답만 하지요. 여기 사람들은 그저 가난해서, 먹고살기 힘들어서 외국에 돈 벌러 나가듯이 온 것뿐인데,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성이나 지금 자신의 모습을 규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수차례 인터뷰를 거절하던 최자헌은 문정현 감독에게 세 편의 영화를 보냈고, 최자헌의 영화 덕분에 <이산자>는 국제결혼 이주여성과 남북 이산가족들로까지 이산의 범위를 확장합니다.
비밀을 품고 살아가는 수많은 가족들. 거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상처받았지만 말할 수 없어 침묵 속에 슬픔을 가라앉히고 살아온 사람들. 감독이, 김임만이, 주인공들이 길 위에서 보낸 시간 덕분에 그 세월과 사연들은 하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영화의 마지막,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에서 낡은 사진 속 어머니와 똑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며, 어머니 생일날에 어머니가 섰던 자리에 설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엄청 멀리 돌아 여기까지 왔다고, 중년의 김임만이 흐느낄 때, 저는 그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최자헌이 목포에서 보내온 네 번째 영화 화면에서 끝이 납니다. 빙글빙글 돌던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비추는 것은 육지로 올라온 세월호입니다.
"국가란 차별과 배제로 유지되는 시스템이며 동시에 무고한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 위에 성을 쌓아가는 것."
영화 중간에 나왔던 내레이션은 그렇게 다시 살아납니다.
국가 간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고 초국가화되는 이 시기에 여전히 조선족, 고려인, 탈북자,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을 붙여 가며 구별 짓고 타자들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서는 국가가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꾸 그렇게 선을 긋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주노동자 300만 명을 바라보는 이 시대에 국가나 민족 정체성을 계속 강조하는 것은 결국 근대국가의 생존 전략은 아닐까요? 그래서 녹슨 세월호를 비추며, 자국민도 지키지 못하는 허수아비 국가의 효용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최자헌의 카메라는 속편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할매꽃 3>을 기대하며 <이산자>를 추천합니다.
(상영 문의: 시네마달 02-337-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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