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대략 3000년 전 한반도에 살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곡물을 절구로 빻아 조리했음을 보여주는 나무 절굿공이 유물이 사상 처음으로 출토됐다.
아울러 이 유물을 출토한 경북 안동 저전리(苧田里) 유적에서는 올해 상반기에 한반도 청동기 유적 사상 처음으로 확인된 저수지(너비 15m 내외, 길이 50m) 외에 또 다른 청동기시대 저수지가 발견됐다.
이에 따라 청동기시대 한반도에서는 이미 저수지를 축조해 농경지 등에 물을 대는 관개농업이 행해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동양대박물관(관장 이한상)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국도 5호선 구간에 포함된 저전리 일대 유적을 지난 3월 이후 추가 발굴한 결과, 2차 저수지 출수구(물이 나가는 길목) 부근에서 절굿공이를 확인했다고 7일 말했다.
이 절굿공이는 대형목재에 깔린 채 발견됐으며 그 주변에서는 청동기시대 전기에 속하는 토기편이 다수 발견됐다. 절굿공이는 길쭉한 나무를 다듬어 만들었으며 양쪽은 지름 9cm 안팎이다. 단면은 원형에 가까우며 손잡이로 추정되는 중앙부에는 돌기 2개를 만들어 놓았다. 전체 길이는 151cm.
이한상 교수는 "일본에서는 나라현 가라코카기 유적을 비롯한 야요이시대 전기(기원전 4~3세기) 유적에서 목제 절굿공이가 더러 보고됐으며, 국내에서는 초기 철기시대 저습지 유적인 광주 신창동 유적(기원전 1세기)에서 그 절반이 파손된 채 확인된 바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저전리 절굿공이는 야요이시대 절굿공이보다 약 300~400년 가량 앞서 제작된 것으로, 일본 야요이문화 개시에 한반도 청동기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하는 기존 학설을 유물로 증명해 준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한편 1차 조사 때 보고된 '저수지'를 두고 학계 일각에서는 저수지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반론도 있었으나, 추가조사 결과 출수구와 입수구, 관개수로 등이 뚜렷하게 확인됨으로써 이 유적이 청동기시대 저수지임은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아울러 이 1차 저수지가 폐기된 뒤 그 상류에 축조된 또 하나의 저수지를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 2차 저수지에서는 관개수로(너비 2m, 깊이 1m 내외)와 출수구가 확인됐으며, 특히 출수구에서는 제사 행위와 관련됐을 법한 수많은 유물과 보(洑) 시설로 활용됐음이 분명한 대형 목재(일부는 직경 30cm, 길이 2.5m)가 다수 폐기된 채 출토됐다.
이 저수지에서는 공렬토기(孔列土器. 아가리 주변을 따라 구멍이 뚫린 토기)와 이단병식 석검(二段柄式石劍. 자루를 두 계단으로 만든 돌칼)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저수지는 기원전 3000년 전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한상 교수는 이번 저전리 유적 발굴을 통해 "한반도 청동기시대 전기인들이 이미 저수지를 축조하고, 반월형 석도(반달모양 돌칼)로 곡물을 수확했으며, 그렇게 수확한 곡물은 절구로 정미해 음식을 조리했음을 알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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