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한나라당의 '선상 반란'으로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을 더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게 있다. 빠르게 확산되는 구제역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11월 살처분 가축 숫자가 140만 마리를 넘어섰다. 전체 가축 10마리 중 1마리가 살처분된 셈이다.
정부는 워낙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이미 지역 민심은 구제역의 확산 속도보다 더 빠르게 돌아서고 있다. 야당에서는 "명백한 인재"라면서 이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작년 11월말 경북 안동의 돼지농가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한달 반이 지난 현재 6개 시·도 52개 시·군에서 발생했다. 자고 나면 또 어느 곳으로 번졌나를 우려해야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의원들 뿐 아니라 농촌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의원들도 '불안'에 떨고 있는 민심을 앞다퉈 전하고 있다.
"이 순간에도 방역활동 수박 겉핥기식"
민주당 김효석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살처분 하는 현장은 눈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고, 이제는 매몰하는 땅이 부족해 아우성"이라면서 "토양을 통한 2차, 3차 감염이 걱정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구제역의 확산이 정부 대응 실패 탓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1월 23일 최초 구제역 의심신고를 했지만, 경북가축위생시험소에서 간이 키트 검사로 음성 판정, 초기 확산을 막는 데 실패했다"며 "뿐만 아니라 발병 신고 일주일전에 분뇨처리회사차량이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에서 분뇨를 싣고 경기도 연천 일원으로 돌아다닌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결국 수도권 일원에 구제역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방역활동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야간에는 활동이 멈춘 곳이 많다"며 "이 상태로 가다가는 호남, 경남에도 구제역이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안동에서 최초 구제역 발생 신고접수가 작년 11월 26일이 아니라 11월 23일이고 또 최초 신고날짜를 조작하기 위해 관련 농장주에게 허위진술을 하도록 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이런 의혹에 대해 사정당국의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영택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번 구제역 사태는 첫 발생지인 안동시의 안일한 대처와 방역당국의 늦장 대응 등 초동방역의 실패가 부른 명백한 인재"라면서 명확한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대강에는 군병력 투입하던 정부가…"
농민 출신인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제2의 국방인 방역이 무너지고 있다"며 "인력 부족으로 공무원과 현장 인력의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어 군부대의 투입 외에는 인력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4대강 공사를 위해서는 특별부대까지 창설해가며 인력 지원에 나선 정부가 국가적 비상사태인 구제역 확산에 대해서는 군부대 지원을 덮어두고 있다"며 "2002년 구제역 발생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국방부장관에게 호소하여 군이 철통 방역에 나서도록 했던 과거와 너무나 대조되는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또 "살처분으로 구제역을 막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며 "전면 백신접종 밖에 답이 없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MB '구제역 무관심'이 대응 실패의 한 원인"
야당들은 사태가 이토록 악화된 원인의 하나로 '대통령의 무관심'을 꼽았다. 김효석 의원은 "이 대통령은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창궐하고, 축산농가가 시름을 앓고 있었지만 지난 1월 6일에서야 구제역 관련 긴급관계장관 대책회의를 주재한 게 전부"라면서 "신년사에서도 구제역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이 관심이 없으면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는 게 상식다. 게다가 대통령은 지난 8일 청와대 참모진과 함께 한가하게 뮤지컬이나 관람하는 여유를 부려 구제역 방제를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공무원들과 농민들을 허탈감과 좌절감에 빠지게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천정배 최고위원도 사태의 책임을 이 대통령에게 돌렸다. 천 최고위원은 "이 대통령은 이번 대란을 초래한데 대해 대국민사과를 해야 한다. 주무장관인 유정복 농림부장관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며 "대란이 끝난 후에는 재발방지와 초동진압에 실패한 이명박 정권의 책임을 묻기 위한 '구제역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도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구제역에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구제역 스톱 스톱 스톱 스톱 올스톱"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 11일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일하는 대통령에게 레임덕은 없다"며 야심차게 임기 4년차를 맞은 이 대통령의 발목을 '인사 실패'와 '구제역'이 잡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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