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하루 앞둔 15일 오후 2시 29분께 지진 관측 사상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지진이 포항 지역을 강타해 전국에서 진동을 감지한 국민이 불안에 떨었다. 이번 포항 지진은 지난해 인근 경주에서 발생했던 진도 5.8 규모보다 약간 낮은 5.4로 에너지 세기 면에서는 10분의 1 수준이었다.
하지만 진앙지가 경주 때의 13킬로미터보다 5~6킬로미터 더 얕고 포항 북부 지역에 노후 건물들이 많아 실제 느낀 진동과 피해는 훨씬 더 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5.4에 이어 4.6 규모의 여진 등이 잇따라 발생해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지난해보다 더 클 수 있다.
이번 지진으로 16일 오전 현재 57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고 재난안전본부는 밝혔다. 상수도관 파열, 정전, 도로와 땅 균열, 한동대학교 등 여러 건물 내외벽 붕괴 등으로 자동차가 파손되는 등 피해 규모는 경주 때보다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포항 지역 피해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수능 시험을 일주일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이에 따라 대학입시 일정도 줄줄이 순연이 불가피해졌다. 포항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는 이번 주 임시휴업에 들어간다. 지진 피해가 큰 한동대도 임시 휴교했다. 지진 관련 신고만도 8000건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지진, 우리 사회의 새로운 사회불안으로 굳어가
기상청은 여진이 수개월 지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5.4보다 더 큰 규모의 지진이 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민들의 지진 불안이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경주 지진은 우리나라도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이번 포항 지진은 이런 판단과 예측을 전 국민의 마음에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1년 여 사이에 진도 5가 훨씬 넘는 규모의 지진이 잇달아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고 그리고 더 큰 규모의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원인 파악이 매우 중요하다. 단층 활성화 여부와 단층의 규모, 특성에 대한 면밀한 조사연구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토대로 지진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기상청은 포항 지진이 경주 지진, 그리고 이보다 앞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의 관련성을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광희 교수, '진앙지 인근 지열발전소 때문에 생긴 유발 지진' 가능성 제기
이번 지진의 원인을 놓고 지진전문가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김광희 교수는 진앙지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지열발전소를 세우면서 지하 깊숙이 박은 시추공이 활성단층을 건드린 것일 수 있다는 가설을 조심스레 내놓아 눈길을 끈다. 진앙지는 활성단층인 양산단층 북쪽 끝에서 약간 벗어난 곳으로 장사단층 선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이를 별도의 단층으로 보기도 하지만 어떤 학자는 장사단층을 양산단층의 곁가지로서 넓은 의미에서는 양산단층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만약 이번 지진이 자하 개발에 따른 유발지진임이 드러난다면 앞으로 국내에서도 무분별한 지하 심층 개발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본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유발지진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지진 다발 지역은 캘리포니아이다. 한데 최근 몇 년간 오클라호마 지역에서 많은 지진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지하 깊숙이 시추를 했기 때문이란 분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하 깊숙이 시추공을 1000개씩 박다보면 이 가운데 한두 개가 단층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포항 지진이 나자 15일 오후 곧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기상청 화산지진센터 전문가들과 함께 지진 원인 분석을 벌이고 있다.
포항 지진이 나자 시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사안은 앞으로 이와 유사하거나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지진이 생길 가능성이 있느냐와 대형지진이 생기기 전에 조금이라도 일찍 이를 감지해 시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릴 수 있느냐이다.
김 교수는 대형지진 조기감지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5.4규모의 이번 포항 지진 본진 발생 전에도 2~3 규모의 지진(前震)이 몇 차례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진관측소를 지진 다발지역에 촘촘히 설치하면 지진 조기경보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기상청 재난 문자에 대피요령은 쏙 빠져, 속빈 강정
우리는 지난해 초유의 경주 지진을 겪고서 지진 대비 중장기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중장기 계획에 따른 활성단층 등 조사연구와 관측소 확대 등에 대한 투자를 제때 하지 않거나 미뤄지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문재인 정부와 국회는 포항 지진을 계기로 지진 대비 투자를 게을리 하거나 시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포항 지진 때 기상청의 긴급재난 문자발송은 지진 발생 뒤 15~20초만에 이루어져 지난해 경주 지진 때와 견줘 매우 빨랐다. 하지만 여전히 지진 발생 7~8초 만에 경보가 이루어지는 일본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더 신속한 경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이번에 두 차례에 걸쳐 받은 문자 내용에는 지진 규모와 발생 지역, 발생 시각밖에 없었다. 대피요령 등 핵심 소통 내용은 빠져 있다. 한마디로 속빈 강정이나 다를 바 없다.
이번처럼 건물이 크게 흔들리고 내외벽 건축자재가 떨어지고 건물 벽에 금이 갈 정도의 지진이 일어난 뒤에는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하나는 건물 안전진단을 꼼꼼하게 해 앞으로 계속될 여진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다. 특히 학교와 대형건물, 다중이용시설, 공공시설물에 대해서는 이른 시일 안에 안전진단을 실시해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
포항 지진, 발암물질 석면 안전 관리에 비상
두 번째는 석면 건물 안전 진단이다. 1군 발암물질인 석면은 우리나라에서 80%가 학교와 공공건물, 다중이용시설, 그리고 지붕슬레이트 등 건축자재로 1960년대부터 널리 쓰였다. 건물 안에는 천장재와 벽체 등에 주로 사용됐다. 석면건축물 가운데 상당수는 낡아 강진이 발생하면 쉽게 파손되거나 기존 흠집이 난 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석면 먼지가 실내 공기 중으로 비산될 위험성이 높다.
이번 포항 지진 규모 정도면 포항 시내 모든 석면건축물에 대한 안전진단을 즉각 해야 한다. 만약 건물 이용자가 석면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긴급 출입통제를 하고 안전하게 석면을 제거하는 등 대책을 세워 시행해야 한다. 만약 실제로 지진으로 흔들린 건물 실내가 석면으로 오염됐는데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 이들은 10~50년 뒤 석면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호주와 일본, 미국 등에서는 허리케인과 홍수, 지진 등 자연재난이 발생한 뒤 건축물 석면 안전 관리를 게을리 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나중에 큰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뒤 이런 나라에서는 자연재해 뒤 복구 때 석면건물 안전 관리에 신경을 크게 쓰고 있다.
포항 지진은 우리에게 석면안전 관리라는 또 하나의 과제를 던져주었다. 우리 사회는 그 숙제를 잘 풀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것이 바로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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