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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화 문제'의 실종, 한국정치의 최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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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빈곤화 문제'의 실종, 한국정치의 최대 문제"

[최장집 인터뷰ㆍ下] "복지 유행병, '보고서 정치'의 유산"

복지가 화두다. 많은 이들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가 주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 '한국형 복지'를 내놓았다. 상대적으로 복지에 인색했던 보수세력에서 복지이슈를 선점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민주당 등 진보개혁세력도 '원조 복지세력'을 자처하며 앞다퉈 이 담론에 뛰어들고 있다. 경제 이슈가 '성장'에 초점이 맞춰졌던 이전과 비교하면 진일보한 논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복지서비스의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국 현실에서 과연 얼마나 실현가능한 논의인지는 의문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의 복지 논의는 사회의 중요한 이해당사자들이 정치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고 정치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민주정치의 특징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특정한 정책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사회로부터 투입할 것인지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반대로 권위주의 하에서의 정책 산출은 최고통치자와 그를 둘러싼 권위를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 디자인을 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힘으로 억압해서 만들고 추진하면 끝이다. 현재 우리의 복지담론은 인풋(input) 측면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 정책적 내용이 무엇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다보니 모든 정당이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최 교수는 노조조직률이 10%대로 낮은 한국사회에서 복지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을 던졌다. 복지는 단순히 사회빈곤층에 대한 '수혜'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과 분배를 다루는 경제시스템과 연관된 문제다. 최 교수는 "노동조합의 대표성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것을 건너뛰어서 갑자기 유럽과 같은 복지국가가 나타날 수 있냐"고 지적했다. 이 의문을 회피하는 한 '한국형 복지국가'이든,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추구하자는 주장이든,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최장집 교수와 대담은 지난 22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임경구 편집국장, 전홍기혜 정치팀장이 가졌다. 최 교수와 대담을 정치, 남북관계, 2012년 총선·대선과 복지담론,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민주주의' 특징 보여주는 복지담론

프레시안 : 내년 우리 정치에 대한 전망도 여쭙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내년부터 2012년까지는 정치의 영역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될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복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2012년 두 번의 선거에 모두 복지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정교한 한국적 복지의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최장집 : 최근 여러 곳에서 복지 이야기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진보파는 진보파대로, 박근혜 씨는 박근혜 씨대로 복지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논의들을 접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복지의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현실로부터 괴리된 담론의 정치랄까, 반대로 엘리트 담론으로부터 소외된 현실이랄까 하는 담론의 정치를 느끼게 됩니다. 정책적인 차원에서 복지정책, 사회정책을 통해 복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 담론으로서 복지의 문제를 중심에 놓으면 복지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상당히 강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데, 담론의 성찬이랄까, 그런 느낌을 갖게 됩니다.

복지를 복지정책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정치학적으로 보면 정책의 아웃풋 사이드(output side), 즉 정책의 산출 측면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어떤 담론을 만들고, 어떤 모델이 더 좋은 것이고, 우리가 취할 모델은 무엇이고, 이러저러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시각,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보고서 정치'의 유산과도 비슷한 것입니다. 앞선 민주정부 시기동안 위원회 정부라는 말도 있었지만, 보고서 많이 내고, 정책 아이디어도 많이 냈지요. 그러다보니 행정중심적 접근이랄까, 형식적으로는 위로부터 하향적으로 복지가 배분되는 것, 그 내용은 온정주의적이고 마치 자선 행위나, 봉사활동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중심은 산출보다는 정책의 인풋사이드(input side), 즉 투입측면이 중심이라고 봅니다. 말하자면 특정한 정책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사회로부터 투입할 것인지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반대로 권위주의 하에서의 정책 산출은 최고통치자와 그를 둘러싼 권위를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 디자인을 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힘으로 억압해서 만들고 추진하면 끝입니다. 민주주의는 그게 아닙니다.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정책으로 정치인과 정당을 통해 대표되고 그것이 정책결정과정에 투입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라 하겠습니다.

현재 우리의 복지담론은 인풋 사이드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 정책적 내용이 무엇인가, 여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논의는 모든 정당이 다 할 수 있는 것이죠. 진보파인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얼마든지 복지정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특정의 복지정책내용을 요구하는 사회집단과 교섭하지 않고도 정치인들과 전문가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좋은 복지모델들을 취사선택해서 좋은 복지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칸디나비 모델이 어떻고, 독일식이 어떻고, 네덜란드식이 어떻고 하는 식이지요. 이러한 모델이 가능하기까지의 정치과정과 정치적 요건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되는 것을 접하지 못했어요. 오늘의 한국의 정당과 정치적 조건들은 그러한 것을 가능케 했던 서구의 조건들로부터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가장 간단한 지표로 노조 조직율이 10%대로 떨어져있는 오늘의 한국정치현실에서 복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잡히지 않습니다.

오늘의 한국사회에서의 복지논의는, 한국 민주정치의 특징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의 중요한 이해당사자들이 정치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고 정치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당정치의 약화와 집행부의 권력 집중으로 나타납니다. 특정한 정책을 놓고 이해관계를 갖는 집단들이 이익집단이든 노동조합이든 정당이든 조직을 해서 스스로 자신들의 요구를 말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조직해서 선거에서 표로서 집단화하고, 그들 스스로가 크든 적든 정치적 행위자가 돼서 정치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 때, 복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전부 억압되고 있어요.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얼마 전 재벌기업 대형슈퍼마켓들이 동네에 진출해서 기존의 영세 마켓들이 존립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이들이 길거리에서 데모하고 하는 모습이 뉴스로 나오고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됐지요. 이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은 길거리에서 데모밖에 없었어요. 이건 민주주의방식이 아니지요. 8,90년대에 일본의 사례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그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들 영세자영업자들이 조직해서 자민당의 한 영향력 있는 표의 블럭을 형성해서 자민당의 지원을 받고 통산성의 정책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해서 법을 만들어 내 기업 수퍼마켓의 진출을 제한했던 사례이지요.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식으로 이해당사자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런 것부터 먼저 논의돼야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에 기반을 갖는 복지정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민주정부 하에서 정책결정들, 즉 산업정책, 중소영세상인 보호정책, 노동정책, 통상정책 같은 것들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민주 대 반민주' 담론이 갖는 한계도 이러한 상황과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들이 들어오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작동이 어려울 뿐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권위주의 정치가 반복되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일하는 사람, 노동하는 생산자 집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 정치권이 제기하고 있는 복지는, 특정의 정당, 특정의 정치세력이 집권하기 위한, 그리고 집권했을 때 그것을 시행하는 방법이 행정기구를 통한 사실상 온정주의적인 복지를 의미하는 것 이상이 아닐 것입니다. 90년대 이야기인데 IMF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민주적 시장경제'를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줬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한다는 측면에서 기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다 보니 내용은 그만두고라도 그러한 말조차 이내 사라져 버렸어요.

ⓒ프레시안(최형락)
복지국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럽만 봐도 상당히 좋은 사회경제적 체제이고, 우리나라도 이 정도의 경제성장 수준에 도달하면 당연히 복지국가적 내용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복지국가라는 말 자체가 아니라 현재 담론이 제기되는 방식으로는 그 결과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습니다. 복지는 어려운 것입니다.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 경제적 생산과 분배구조, 조세정책 등 여러 변화를 수반해요. 그런데 노동조합의 대표성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것을 건너뛰어서 갑자기 유럽과 같은 복지국가가 나타날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프레시안 : 복지의제와 관련해 당면한 현안이이라면 우선 무상급식 논란이 떠오릅니다. 이 역시 정책의 산출에만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타협이 불가능한 논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장집 : 무상급식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중요한 선거이슈가 됐지요. 복지랄까, 사회경제적 문제가 쟁점화 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현실화 가능한 이슈들을 하나하나 접근하고 풀어나가는 것은 좋은데, 무상급식 문제는 여러 복지 중에서도 작은 이슈입니다. 그런 작은 이슈만이 쟁점이 되면 찬반론이 부각되면서 세밀하고 섬세한 논의는 실종됩니다. 보다 테크니컬하게, 좋은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상급식이 강한 이슈가 된다는 것은 좋은 측면도 있지만, 다른 이슈를 억압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사회복지는 여러 정책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사회서비스랄지, 사회보장, 교육 등 여러 측면이 함께 존재합니다. 무상급식은 큰 복지의 작은 이슈입니다. 물론 논의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서는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복지 논의에는 무상급식 자체보다 더 큰 문제가 그 배면에 존재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회경제적 이슈의 실종, 한국 정치가 풀어야할 가장 시급한 문제

프레시안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한국형 복지국가'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최장집 : 복지는 한나라당이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앞에서 제기한 이러한 문제는 한나라당 마음대로 거론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현재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복지라는 말은 훨씬 더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보겠습니다. 좋은 이야기들, 좋은 사례들을 이것 저젓 집어넣어서 상상하는 정도로 복지국가가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유럽의 복지국가라고 하는 것은 소득과 분배구조, 실업보장, 교육 등을 모두 커버하는 경제적 생산과 운영체제입니다. 복지가 바로 그것이라는 인식은 없는 것 같아요.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확대, 비정규직, 청년실업, 중년실업을 포괄하는 고용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그것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충격 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요. 이러한 문제들이 복지보다 먼저 논의되거나, 복지정책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같이 제기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점들은 우리 정치가 다루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담론 중심, 이념 중심으로 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같은 문제를 다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경제 관료들의 독점적 영역이었습니다. 여당이 집권하든, 야당이 집권하든 큰 차이가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우리의 계층 구조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중산층의 양극분화가 문제의 중심에 있나? 추정으로는 한국 사회의 계층구조에서 중산층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중산층의 아래 부분, 하층 영역이 훨씬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연구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하층계급이 팽창했다는 징조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그 규모가 얼마나 되고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에 연구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노동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문제, 20대 청년실업, 그보다 더 심각한 4,50대 중년실업 문제, 고용불안과 서민대중 경제생활의 피폐화, 이런 것들이 당장 풀어야 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회의 중하층 혹은 하층의 빈곤화 문제가 정치적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정치 최대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것은 정당들, 특히 진보적인 야당이 해결해야 할 부분입니다.

정치적 표출이 안 된다는 것은 투표율에서 나타납니다. 우리 투표율은 통상 50%정도인데, 지난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떨어져 왔고, 신자유주의 이후 더 떨어졌습니다. 체계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데이터들을 종합해 보면 그 중에서도 하층민에서 투표를 안 하는 경향이 더 두드러집니다. 자신이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 상황에서, 어느 정당이든 그들만의 이해를 추구하는 정치집단에 들러리서지 않겠다는 의식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투표를 통해 뭔가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이 낮은 투표율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이 집단이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는 동안 자살률에서부터 강력범죄, 가정파괴, 출산률 저하 등 사회적인 문제들은 스스로 그 모양을 드러냈어요. 정치의 중심적인 담론이 지역대결과 지역감정이라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의 축을 통해서는 사회경제적 문제가 끼어들 틈이 없어요. 과연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지역구도와 같은 한국정치의 대표적이고, 지배적인 갈등구조의 창을 통해볼 때 이 문제들은 어디에 위치할까요? 불행하게도 나는 이 담론의 구조에서 이 같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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