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한나라당만큼 예산안 후폭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뻣대지 못할 것이다. 청와대의 심기에 자유롭지 못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앞에서 "당도 재정원칙을 지켜주기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이진 못할 것이다. 장관만이 아니라 힘없는 기획재정부 실무자까지 나서 양육수당과 영유아 예방접종비 등이 삭감된 데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한나라당을 향해 '정부 원칙'을 읊조리지는 못할 것이다.
청와대는 돌파하려 한다. 템플스테이 예산과 같은 한두 가지 항목을 조정하고,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같은 한두 명의 당사자를 사퇴시키는 선에서 후폭풍을 가라앉히려 한다. 청와대의 의지는 아직 강고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의지를 꺾고 기세를 뺏기면 다음 상황이 막막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처리해야 하는 한미FTA 비준안이 위태로워진다. 야당에 기세를 뺏기는 건 둘째 치고 한나라당의 불만을 통제하지 못하면 단속력이 약화되고 또 한 번의 강행처리 동력이 줄어든다. 눌러야 한다.
백 번 양보하더라도 내년 상반기까지 '정권의 몰락'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청와대에겐 그렇다.
청와대의 의지와 상황이 이렇다면 야당의 대응전략은 아주 단순해진다. 그냥 춤추면 된다. 청와대가 깔아준 멍석 위에서 한판 흐드러지게 춤을 추면 된다. 민생과 직결되는 양육수당이나 영유아 예방접종비, 결식아동 급식비 등을 내칠수록 더 강하게 두드리면 된다. 거기서 '민생'을 뽑아내 한미FTA와 연결하면 된다. '민생예산 투쟁'을 '민생파탄 저지투쟁'으로 이어가면 된다.
민주당이 이른바 '5적' 사퇴를 촉구하고 긴급 추경 편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 일환일 것이다. 집권여당의 약한 고리를 침으로써 그들의 균열을 유도하고 의정의 주도권을 쥐려는 차원일 것이다.
헌데 문제가 있다. 객관적 요인에 맞춰 전선을 치는 것은 그렇다 치지만 결정적인 한 가지를 소홀히 하고 있다. 체력이다.
세상에 펀치 날리는 법 몰라 다운 당하는 권투 선수 없고, 스윙법 몰라 삼진 당하는 야구 타자 없다. 경기력을 가르는 건 교본이 아니라 근력이다. 민주당은 이걸 키우려 하지 않는다.
곳곳에서 예산안 강행처리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 한 데 모아야 하는데 민주당은 오히려 분산하려 한다. 거점을 세워 응집해야 하는데 산개하려 하고, 틀을 만들어 망라해야 하는데 독주하려 한다. 그들이 마다않는 험구를 보면 소속 의원과 당원에 총동원령을 내려도 모자랄 판에 대표 한 사람의 '선도투쟁'에 골몰한다.
민주당의 태도가 이렇다면 달리 해석할 수 없다. 둘 중 하나다. 소심하거나 욕심부리거나.
▲ 민주당 의원 등의 서울광장 농성 장면 ⓒ민주당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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