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장청 개헌론을 제기하는 그의 일편단심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착각이다. 그것도 쌍으로 나타나는 착각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다른 건 몰라도 개헌만큼은 여야 합의로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에 따르면 개헌은 가능하지 않다. 그가 제시한 '내년 상반기 중 개헌' 일정을 데드라인 삼으면 더더욱 가능하지 않다.
친박계는 물론 청와대마저 개헌에 반대하거나 회의한다는 사실은 따로 짚을 필요가 없다. 이것 말고도 개헌이 불가능한 이유는 더 있다.
내년 2,3월이 되면 예산안보다 더 크면 더 컸지 결코 작지 않은 폭탄이 작동한다. 한미 FTA다. 여야가 '기필코 비준'과 '결사 저지'로 갈려 드잡이질을 할 게 분명한 이 사안을 제쳐놓고 야당이 개헌에 머리 맞댈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망상이다. 게다가 4월이 되면 재보선이 치러진다. 이재오 장관이 설정한 '내년 상반기'는 대립의 계절이지 타협의 계절이 아니다.
▲ 이재오 특임장관 ⓒ뉴시스 |
바로 이 점을 의식했기 때문일까? 이재오 장관은 "정치권에 있는 사람은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국민의 의견을 모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을 동원해 정치권을 압박하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이 또한 가능하지 않다. 이재오 장관 뇌리에 국민의 63.7%가 '개현해야 한다'고 응답한 여론조사결과('헤럴드경제'의 9월 조사)가 담겨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능하지 않다. '개헌해야 한다'는 의견은 개헌 방향에 대한 각론으로 들어가면 갈라지게 돼 있다. 세종시처럼 찬성 아니면 반대 여론으로 단순화하는 여론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권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할 수 없다.
그래서 다수가 분석한다. 이재오 장관의 개헌론을 '개인 차원'으로 해석한다. 개헌론으로 정치공간을 열어 정치 유랑으로 까먹은 인지도를 올리고 입지를 강화하려는 기도로 풀이한다.
그제까지는 그랬는지 모른다. 개헌론이 성사되든 안 되든 이재오 장관의 정치반경을 넓혀주는 도구로 쏠쏠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강행처리하는 순간 이 전략은 사실상 끝장났다.
전현희 민주당 대변인이 어제 이재오 장관을 지목해 날선 말을 쏟아냈다. "(이재오 장관이) 말로는 소통을 외치면서 날치기 통과를 제1선에서 독려하고 진두지휘했다"며 "그동안 이 장관의 90도 인사가 얼마나 허위와 가식이었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재오 장관에 대한 야당의 인식이 이렇다면 그는 별 역할을 할 수 없다. '위선자'로 낙인 찍힌 상태에서는 여야를 넘나들며 산파와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없고, 더불어 그의 정치반경은 자연스레 좁아진다. 개헌론으로 정치 반경을 넓히겠다는 생각은 개헌이 가능하다는 생각만큼이나 큰 착각이다.
이렇게 정리하니 이재오 장관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더 추출된다.
이재오 장관은 어제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내가 져야 할 짐이 있다면 피하지 않겠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는데 그는 아직도 모른다. '짐'과 '희생'이 뭔지 아직도 모른다. '짐'과 '희생'을 언급한 같은 날 개헌론을 제기한 걸 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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