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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은행나무숲 축제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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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은행나무숲 축제를 가다

해발 750m, 홍천 광원리 은행나무숲에서 수채화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나다

누군가의 발자국도 아직 나지 않은 파란 10월의 파아란 하늘이다. 그 하늘을 보며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기억 난 하루이다.

15일 아침. 나는 프로스트처럼 낙엽 위로 아무런 발자국도 나지 않은 단풍이 든 숲 속 길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리고 바다로 가는 길과 노랑 은행나무숲이 있는 두 갈래 길에서 나는 프로스트처럼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걷고 싶었다.

▲15일 홍천은행나무축제가 열리는 은행나무 숲에서 폰카를 찍으며 산소 같은 노오란 가을을 즐기는 방문객들. ⓒ프레시안(서정욱)

그래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동홍천 I.C에서 바다로 가는 길 대신 작은 숲길을 선택했다.
내가 가는 은행나무 숲길은 자동차로 1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그러나 이 길은 내가 몇 년 전부터 가지 않고 남겨둔 길이었다.
항상 바다로 가는 길에서 나는 이 한 쪽 길은 프로스트의 시처럼 오늘을 위해 남겨 놓았다.

그 길을 달린다.

오랜만에 보는 맑고 푸른 하늘. 구불구불 산길로 올라가길 1시간여가 지나자, 하늘마저 물들일 기세로 뻗은 은행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더 달리면 다시 바다로 가는 56번국도의 끝 양양이 나온다.

내가 자동차를 멈춘 곳은 해발 750m의 고랭지 마을인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은행나무숲이 있는 마을이다.

1년에 10월 한 달만 노오란 숲으로 가는 길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한다는 은행나무숲.

이 마을 사람들은 이 10월 한 달을 ‘은행나무축제’라고 부른다. 늦봄까지 눈이 온다는 내면 광원리 은행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계곡에는 가을단풍잎이 계곡물까지 가을색깔로 물들이고 있었다.


▲15일 10월 한 달간 개방하는 홍천은행나무축제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 ⓒ프레시안(서정욱)

계곡 물을 건너는 다리 하나를 건너자 또 두 갈래 숲길이 나온다. 이 두 개의 길에서 좌측으로 가는 길이 은행나무숲으로 가는 길이다.

이 두 갈래 길에서 은행나무숲까지는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나는 카메라 가방을 메고 은행나무숲을 보기위해 온 사람들 틈에 끼여 은행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꽤 넓은 산자락에 계곡을 끼고 은행나무들이 빼곡하다. 여기저기 은행나무 아래에서 폰카를 찍는 가족과 젊은 연인들의 행복한 얼굴이 은행나무잎을 닮았다.

나무 아래는 잘 심어져 있는 초지가 파아란 하늘을 향해 뻗은 은행나무색깔과 너무 잘 어울린다.

나는 잠시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생각을 한다.

한 사람들이 심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심고 가꿀 때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 수고로움이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서로 다른 이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힘은 무얼까.

이 은행나무 숲 주인이 도시를 떠나 험준한 태백산맥 한 자락에 살게 된 건 사랑하는 아내의 병이 낫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15일 홍천은행나무숲축제를 즐기러 온 한 관광객이 애완견과 함께 산소 같은 은행나무 숲길을 산책하고 있다. ⓒ프레시안(서정욱)

그래서 아내와 살며 심은 은행나무들.

은행나무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사람들이 지구라는 행성에 살기 이전인 2억7000만 년 전 공룡과 함께 탄생한 나무이다. 식물학자들은 은행나무는 강해서 병들거나 좀처럼 벌레를 먹는 일이 없다고 한다.

내가 중학교 때이다. 조선의 6대 왕인 어린 단종이 살던 영월 하송리에는 나무 둘레만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1,0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영흥리 마을에서 살던 나는 가끔 10분이면 가는 은행나무 그늘을 찾아 자전거를 타고 갔다. 늙은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져간 소설책을 읽던 나는 3학년이 되면서 은행나무가 주는 고목의 품격을 느끼기 시작했다.

말은 못하는 나무이지만 조선 군주들의 추악한 권력에 유배 온 어린 단종을 보면서 묵묵히 조선의 시간을 지켜본 고목이 된 은행나무가 인간의 인격보다 더 묵직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조선의 세종은 경기도 용문에 있는 고목이 된 은행나무에게 정 3품에 해당하는 당상관의 품계를 주기도 했다.


▲15일 홍천은행나무숲을 찾은 책읽는루부르에 나오는 소년을 닮은 한 아이가 은행나무를 보며 마냥 즐거워 하는 모습. ⓒ 프레시안(서정욱)

그런 생각을 하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은행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었다. 은행나무 숲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가을 햇빛이 강렬하다.

그러나 그 빛이 있기에 은행나무의 엽록체가 화학반응을 하여 이처럼 놀라운 노랑색깔을 입히는 게 아닐까.

노란색깔로 변신하는 은행나무를 보며 이 많은 사람들은 은행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노랗게 물든 저 은행나무잎을 책갈피에 넣어 언젠가 이 은행나무들만이 겪어 온 공룡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를 읽을 것이다.


▲15일 홍천 내면 광원리 은행나무숲 축제가 열리는 계곡 하천으로 나가는 길에서 본 은행나무 숲의 풍경. ⓒ프레시안(서정욱)

나는 잠시 은행나무 숲 오솔길을 빠져나와 작은 돌들을 부딪히며 내려가는 가을계곡 물소리를 듣기 위해 강으로 내려갔다.

크고 작은 돌을 강가에 탑처럼 쌓아놓은 시냇물을 보았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은행나무 색깔만큼 좋아하는 곳이 시냇물이다.


▲홍천은행나무축제가 열리는 은행나무 숲 옆의 계곡 하천이 가을단풍에 물드어가는 풍경을 즐기는 방문객들. ⓒ프레시안(서정욱)

해가 기울어가는 오후 무렵이라 그런지 울긋불긋한 산단풍 빛깔이 맑은 시냇물에 비춰 물빛은 이미 가을을 닮았다.

돌을 타넘는 물소리가 귀뚜라미처럼 우는 은행나무숲 골짜기.

이 은행나무숲이 아니라면 이 풍경을 누가 볼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또 다른 은행나무 숲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주인을 따라 나온 예쁜 강아지 한 마리가 내 카메라를 쫒아 달려온다.

사람만이 아닌 동물들에게도 행복을 주는 은행나무 숲길 옆에 농장 주인이 사는 통나무집이 있다. 뒷마당에는 이곳에 사는 암그루 은행나무와 수그루 은행나무들이 만나 낳은 은행 알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15일 은행나무 축제가 열리는 홍천 은행나무 숲 장독대가 있는 한 은행나무앞에 떨어져 쌓인 은행잎들. ⓒ프레시안(서정욱)

그리고 그 옆 은행나무 아래는 이 집 주인이 아침저녁으로 떨어지는 은행낙엽들을 빗자루로 쓸어서 모아 놓은 은행잎들이 쌓여있다.

이제 이 가을이 다 떨어지는 10월 마지막 밤에는 이 은행나무 숲 바닥은 모두가 노오란 낙엽들의 대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은행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겨울 하늘을 향해 내어 놓은 채 태백산맥에서 불어오는 눈바람을 맞으며 견딜 것이다.

그리고 주인과 사람들은 내년 10월을 기다릴 것이다.


▲15일 강원도 홍천 내면 광원리 은행나무숲 안에서 마을 사람들이 옛 전통 가마솥에서 쪄내는 홍천옥수수 광경. ⓒ프레시안(서정욱)

저물어 가는 오후 무렵. 굴뚝에서 연기가 풍풍 피어오른다. 나는 은행나무 숲으로 올라올 때 보지 못한 홍천옥수수를 가마솥단지에 장작을 때서 쪄내는 광경을 내려 올 때에 보았다. 어릴 적 어머니가 쪄 주던 그 풍경이 새록 솟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너무 반가웠다.

안개 같은 하얀 김이 솟아 오르고 난 뒤에 모습을 드러내는 찐옥수수의 빛깔은 도시의 가스불에 찐 옥수수보다 싱싱했다.

이 곳은 신선한 먹거리가 많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점심을 먹었다. 10여 년 전에 정말 맛있게 먹었던 그 점심이다. 해발 750m의 차가운 계곡물을 막아 기른 송어회 점심은 혓바닥체 송어맛이 착착 감긴다.
▲해발 750m의 홍천은행나무축제가 열리는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대지의 채소들이 푸르른 가을하늘 아래에서 익어가고 있다. ⓒ프레시안(서정욱)

주인은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달군 돌에 얹어 송어를 썰어서 내왔다. 정말 쫄깃하다. 특히 이곳 고랭지에서 생산된 곰취나물에 싸서 먹으면 그 맛이 더한다.

구불구불 넘어가는 56번 국도의 저녁 해가 은행나무숲을 지울 무렵.
▲15일 홍천에서 양양으로 가는 56번 국도변에서 본 홍천은행나무숲의 마을 풍경. ⓒ프레시안(서정욱)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아황산가스와 납성분을 정화하는 능력이 플라타너스보다 두 배나 되는 은행나무를 자동차 매연과 공장굴뚝이 많은 도시에 숲을 많이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런 은행나무숲을 만들어 주는 제2, 제3의 고마운 사람들이 오늘 내가 찾은 아무도 가지 않은 이런 길을 찾아 또다른 은행나무 숲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내년 홍천은행나무축제를 기약하며 오늘 하루 나무들과 함께한 행복과 함께 아쉬움을 담는 사람들. ⓒ프레시안(서정욱)

프로스트의 시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따라 누군가 만든 새로운 숲으로 가는 또 한 개의 길을 숨겨 둔 채, 나는 해 저문 56번 국도를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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