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배추 한 망을 머리에 이고 품에 안은 사람들의 표정은 밝습니다. 안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 5일 오전 신림동 신원시장에서 서울시가 시중가 70%에 공급하는 배추를 두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구입한 한 시민이 기쁜 표정을 지으며 배추를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 |
착시를 봅니다. 시중가보다 30% 싸게 공급했다는 서울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여전히 비쌉니다. 한 망 가격이 1만 4000~1만 8000원이라면 한 포기 값이 대략 5000~6000원입니다. 평상시 가격과 비교하면 턱없이 높은 가격입니다. 하지만 가려집니다. 폭등한 배추값은 특별공급가에 가려집니다. 상대평가가 절대평가를 가리는 겁니다.
갈망을 봅니다. 배추 한 망을 머리에 이고 "심봤다"고 외치는 아낙네의 모습에서 갈망을 봅니다. 그들은 혜택의 양보다 혜택 그 자체가 더 기쁜지 모릅니다. 이게 맞다면 배추를 사기 위해 줄 선 사람들의 심저에 깔린 건 갈망입니다. 정부가 민생을 보듬어 안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싼 배추' 특별공급은 이런 갈망을 자극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정치를 봅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배추값 폭등의 궁극적 책임은 정부에게 돌아갑니다. 정부가 생산관리 물가관리에 실패한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시가 특별공급책을 내놓음으로써, 그 뒤끝에서 "심봤다'는 환호가 터져나옴으로써 화는 복이 됩니다. 유명환 전 장관 딸 특채 파문을 조기 사퇴로 매듭지은 후 전화위복의 계기가 마련됐다고 자평한 청와대의 논리와 비슷한 상황이 재연출 됩니다.
그래도 서울시를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시중가보다 싸지도 않은 가격으로 특별공급하면서 전시행정을 편다고 비판하지만 그래도 낫습니다.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하는 게 낫습니다. 서울시를 비판할 여지도 없습니다. 배추값 폭등을 제대로 정치문제화 하지 못할 바에는 정치색을 띠지 않으면서 몸으로 뛰는 게 낫습니다. 탈정치적 행보에서 최대의 정치적 효과를 거두는 게 훨씬 노회한 정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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