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문화연구학과에 재학 중인 한 대학원생은 24일 "학교가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초빙 교수로 위촉할 당시, 연구실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강의없이 특강만 할 수 있도록 특혜를 베풀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중앙대 측은 이 전 최고위원의 연구실을 설치하고자 다른 교수의 연구실을 좁혔다.
또 이 대학원생은 "학교가 경제학 학사, 교육학 석사 학위가 전부인 이 전 의원에게 정치학 명예박사학위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자리를 제공했다"며 "학교 당국이 진중권 교수의 재임용을 거부한 사례와 비교해 볼 때, 학생을 가르치는 교단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2008년 2월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이 중앙대학교에서 열렸다. ⓒ이재오 |
▲ 중앙대 국제대학원 홈페이지에 실린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초빙교수 프로필. ⓒ프레시안 |
진중권과 박범훈 총장의 '악연'…학생들 "진 교수 재임용 탈락은 정치적 의도"
이재오 전 최고위원에게 특혜를 베푼 중앙대 박범훈 총장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총장 신분을 유지한 채 이명박 선거대책본부의 문화예술정책위원장 지냈고, 이후 이명박 정부의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았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박 총장을 치켜세우며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중앙대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총장의 정치 활동을 고무했다.
이런 정치 실세에 대한 중앙대의 호의는 2002년부터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를 맡아 왔던 진중권 씨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중앙대는 지난달 29일 진중권 겸임교수에 대해 "겸직 기관이 없다"는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한 데 이어, 이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한 학생의 징계 처리 방침을 밝혔다.
겸임 교수 임용 자격 중 하나인 '겸직 기관' 관련 조항은 사실상 학교 내에서 사문화됐던 조항으로, "학교가 진 교수 해임을 위해 죽어있던 조항까지 다시 되살렸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해왔던 진 교수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는 지적이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진 교수와 박 총장의 해묵은 '앙금'이 이번 재임용 탈락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박 총장이 한나라당 의원모임 주최로 열린 한 초청 강연회에서 성희롱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진 교수는 "학생을 관기 취급한다"며 공개적으로 박 총장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박 총장은 판소리 공연을 하러 무대에 오른 자신의 여제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생긴 토종이 애도 잘 낳고 살림도 잘한다"며 "감칠 맛이 있다" 등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빨간 종이 몇 장 붙이고 나왔을 뿐인데…총장실은 성역인가"
급기야 진 교수의 재임용을 둘러싼 논란은 학교가 그의 재임용 탈락에 반발하는 학생들에게 '징계'라는 강경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 "진중권의 눈물…"이런 사회에 살게 해 미안합니다")
중앙대 학생들은 지난 17일 진 교수의 재임용 탈락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항의의 표시로 빨간 색종이 10여장을 총장실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중앙대 측은 지난 19일 총학생회장을 비롯해 총장실에 진입했던 학생 7명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학생지원팀으로 와서 조사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총장실을 무단 침입했기 때문에 징계 처리를 할 예정이니 사실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었다. (☞관련 기사 : "중앙대, '진중권 재임용 거부 반발 학생' 징계 처리 방침")
학생들은 재차 반발하고 나섰다. 24일 오후,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에서 본관 앞에서 "진중권 교수 재임용 거부 규탄 및 학생 처벌 시도 철회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생 20여명은 학교의 학생 징계 방침에 대해 "표현의 자유와 자치권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4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본관 앞에서 '진중권 교수 재임용 불가 처분 규탄과 학생 징계 시도 철회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프레시안 |
정경대 학생회장 이준혁 씨는 "우리 학생들이 집기를 훼손한 것도 아니고, 사람을 때린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빨간 종이 몇 장을 총장실 안에 붙이고 왔을 뿐이다"라며 "총장실은 학생의 표현의 자유조차 행사할 수 없는 성역인가"라고 비판했다.
징계 대상자에 포함된 독문과 3학년 노영수 씨는 "학교는 징계 대상 학생들의 학부모에게 전화까지 걸어 '(징계가 확정되면)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협박까지 일삼았다"며 "학교의 부당한 처사에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역시 징계 대상자에 오른 한 대학원생은 "학생지원과는 조사를 위해 학생들을 소환한다고 해놓고, 진술서도 미리 작성해 놓은 상황이었다"며 "학부모를 협박하고, 언론에 보도된 당시 영상을 통해 기자회견 참가자의 신원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등, 학교 당국이 '공안 경찰' 행세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징계 논란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문방송학과 4학년 신동익 씨는 "2007년 학생들이 한 교수의 성폭력 가해 의혹을 제기하며 총장실을 점거했을 때는 징계의 '징'자도 나오지 않았다"며 "현 정권에 쓴 소리를 해온 진중권 교수에 대한 문제이다 보니, 학교가 정권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날 진중권교수재임용을위한비상대책위원회 소속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학교의 징계 조치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으며, 학생지원과를 방문해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한편, 중앙대 학생지원팀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자유로운 입장 표명은 당연히 보장되지만, 과격한 시위 방식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며 "총장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허가받지 않은 유인물을 붙이는 행위는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징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이며, 아직 최종 결정이 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 24일 기자회견이 끝나고 중앙대 학생들이 학교의 징계 조치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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