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 전 대통령의 안장이 끝난 7시에도 시민들은 꾸준히 분향소를 찾았다. 20여 명씩 무리를 지어 헌화와 묵념을 했지만 10시가 넘어서도 100여 명의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분향소 밖 광장에도 300여 명(경찰 추산)의 시민들이 자리를 지켰다.
민주당과 시민추모위원회 측은 4시 50분에 끝난 추모문화제를 끝으로 공식적인 추모행사를 열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민추모위원회의 이지현 참여연대 의정감시팀장은 "국장 행사가 끝난 만큼 시민추모위원회의 공식적인 활동은 더 이상 없다"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문화제는 이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별도의 촛불 문화제나 추모 행사를 열지 않은 채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이들은 조문을 마친 시민들이 달아놓은 근조 리본과 고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쪽지를 살펴보거나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진행하는 미디어법 무효 서명에 동참하기도 했다.
▲ ⓒ프레시안 |
"DJ는 김구 선생에 이은 2번째 국부"
20대 후반의 직장인이라고 밝힌 연 모 씨는 저녁 8시부터 홀로 촛불을 켜고 광장을 지켰다. 연 씨는 "촛불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구현했던 가치를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이라며 "국장 이후에도 그분들의 뜻을 잊지 않겠다는 걸 보이고 싶어 혼자라고 켜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 김 전 대통령은 김구 선생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국부라고 생각한다"며 "자유와 인권을 주창하고 독재에 항거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의 가치"라며 "그런 보수의 가치를 위해, 거기에 진보적 가치까지 더해 싸운 사람은 역사적으로 DJ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연 씨는 "현 정부의 지지세력은 반통일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이 환기돼 북한 조문단이 대통령을 접견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며 "정부가 고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기회를 살려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분향소가 끝나는 12시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길 사양한 한 남성(39세)은 "자리를 지키면서 고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강조했던 가치에 대해 계속 되새기고 있었다"며 "어느 순간부터 정치를 냉소하고 보신주의에 빠져 살았던 자신을 반성하고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고인의 말씀을 실천하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는 '준비된 이별'이라고 하지만 지금 시대 상황이 고인을 요구하고 있어 떠나 보낼 마음이 없었는데 너무나 아쉽다"며 "그래도 국장으로 결정되면서 그분의 생애가 젊은 세대나 그를 왜곡된 이미지로 바라봤던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려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용산 철거민 범국민대책위원회는 7시 30분경 서울광장에서 '용산 참사'의 대책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범대위 측은 "추모 문화제에 맞춰 유인물을 나눠주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경찰이 둘러싸고 유인물을 압수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철거민과 이들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경찰에 유인물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며 언쟁을 벌였지만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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