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흔 아홉의 박종신 할머니는 기자에게 연신 "선생님의 일기장은 언제 나눠 주냐"고 물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를 맞은 21일 오전, 국회 앞에 마련된 공식 분향소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를 맞은 21일에도 시민들의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박 할머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고마운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오늘 이북에서 특사가 온다"며 "(김 전 대통령이) 살아계실 때는 북한과의 소통의 길을 열어주시더니,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남북 화해의 길을 터 주셨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훌륭한 분이 쓰신 일기를 보고 배우기 위해 여기까지 나왔다"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 한 아이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에 헌화하기 위해 국화를 들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역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빈소를 찾은 김상희(37) 씨는 "분향소 조문은 아들에게 훌륭한 민주주의 교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문을 위해 뙤약볕에서 30분을 넘게 기다렸다는 그는 "아들에게 민주화를 이끈 큰 어른으로 김 대통령을 소개했다"며 "생전에 고생이 많으셨는데, 부디 하늘나라에선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MB 조문,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와 태도 너무 다르지만…그나마 다행"
오전 10시 30분께 이명박 대통령도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빈소를 찾았다. 같은 시각 빈소를 찾은 시민들은 이 대통령의 조문이 5분 만에 끝나는 바람에 "대통령이 왔다 갔는지도 몰랐다"는 반응이었지만, 대부분 "현직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조문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던 양재두(69) 씨는 이 대통령의 조문에 대해 "현직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춰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와는 달리, 이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찾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진정한 화합의 장이 열리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 대통령이 경호상의 이유로 고인의 빈소를 찾지 않은 것과 비교했을 때,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와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평가도 있었다.
김정숙(60) 씨는 이 대통령의 조문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 대통령이 분향소를 찾았다면 분명 저지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겠느냐"며 "(이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 21일 오전 10시 30분께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 헌화하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어제도 시청 앞 서울광장 분향소에 다녀왔다는 김희연(가명, 31) 씨는 "지난 5월 전경 버스로 막힌 광장과 어제의 열린 광장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며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와 비교했을 때) 정부의 태도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김 전 대통령께서 현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했던 연설 동영상이 국회 분향소에서 상영 금지 됐다고 들었다"며 "그런 태도로 무슨 '국민 통합'이 가능하겠느냐"고 꼬집었다. 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6월 11일 김 전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9돌 기념 특별연설'의 상영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으나 유족 측이 자제를 당부해 논란이 확산되지는 않았다.
당시 연설은 고인의 마지막 연설로,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50년 동안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매우 걱정이다"라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정부를 성토한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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