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무대(지금의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등에 매미처럼 붙어있던 곽영주란 이름의 경찰 경무관이 방첩대보다 더 센 권력을 휘두르던 그때, 경찰은 곧 '특수 권력'이었다고 A씨는 회고한다.
그 '특수 권력'은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하면서 새로 생긴 중앙정보부로 건너간다. 중앙정보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무서운 힘을 구사했으나,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쿠데타 성공에 힘입어 이번엔 '특수 권력'이 보안사로 옮겨갔다. YS정권 때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구속하면서 한때 검찰도 '특수 권력'의 임자가 되었으나, 한나라당이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 일컫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특수 권력'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양상을 보이다 이명박 정권에 들어선다.
MB정권에서의 '특수 권력'은 좀 특별한 모양새를 하고 나타난다. 지난날 '특수 권력'의 임자였던 경찰과 중앙정보부·보안사·검찰 등은 정부의 기구이거나 조직이지만, MB정권의 '특수 권력'은 조직이나 기구가 아닌 개인의 모습이다. 그것도 분명하게 특정되는 개인이 아닌, 아직은 불분명한 개인이다. 최근 들어 다소 윤곽이 보이는 듯 했지만 적어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에는 시기상조인 듯하다. 말하자면 베일에 가려진 '실루엣 사나이'다. 사조직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 무섭다.
▲ 총리실 불법사찰 '몸통'으로 지목받았던 이상득 의원. ⓒ뉴사스 |
다 알다시피 민간인 불법사찰은 예사로 일어나는 단순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사건이었다. 폭력배도 아닌 공무원들이 민간인들에게, 법에서 허락하지 않은 연행과 협박을 일삼고, '형님'의 비위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여당 국회의원들까지 뒤를 캐고 다니며 공포감을 조성한 '조폭난동' 사건이었다. 이 대명천지 민주국가에서 엄연히 심부름꾼된 자들이 주인된 자의 기본권을 짓뭉갰다하여, 다른 범죄에서와 마찬가지로 재범방지용 전자발찌를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노까지 표출된 사건이었다. 애당초부터 배후규명없이 그렇게 그냥 덮고 넘어갈 수는 절대로 없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사건이었다.
뒷조사를 당했다는 여당 국회의원들은 이번 사건의 배후로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차장을 지목하고 박 씨 뒤에 버티고 있는 '실루엣 사나이'는 '형님' 이상득 의원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형님'이 청와대와 정부내 요소요소에 영포라인 사조직을 심어놓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래서 기자들이 '형님'에게 달려가 물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대응하지 않겠다"는 게 그의 짤막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대통령까지 나서 "조사하라"명령했는데도 배후는 베일에 가려진채 사건 수사는 이내 막을 내렸다. 박영준 씨와 '형님'에 대해서는 소환조사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끝을 냈다. '관련 증거 없음'의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바람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잎사귀가 흔들렸으면 바람은 분 것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그냥 잎사귀가 흔들린 정도가 아니라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간, 태풍이 휩쓴 사태였다. 그런데도 증거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피해 의원들은 "검찰이 밝혀내지 못한 게 아니라 수사를 안한 것"이라고 했다. "조사받아야 할 사람이 수사진행 내용을 보고 받고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마도 검찰이 홀로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특수 권력'이었기 때문에 그리 됐을 것이다.
일개 이사관인 공직윤리지원관이 '어떤 이유'로 자기 선에서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구속됐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이 너무나도 많다. '어떤 이유'는 "조금만 고생하면 '실루엣 사나이'가 구해줄 것이고 보상도 있으리라는 확신일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기관 공무원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그 사건의 피해자가 주권자인 국민이라는 사안 자체만으로도 정부의 '상응하는 도리'는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귀신이 곡할 일이 뒤이어 또 일어난다.
공직윤리지원관의 직속 지휘관인 박영준 씨가 '형님'의 비호 때문이었을까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오히려 영전한다. 그레샴 법칙을 대입해보아도 풀어내기 힘든 지극히 질이 나쁜 해괴한 논리가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영일귀신이나 포항귀신조차도 기가 막혀 울고 갔을 것이라 했던가.
아무튼 그래서 이명박 정권의 '분명히 있는' '특수 권력'은 아직 특정인 아닌 '실루엣 사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터놓고 '실루엣 사나이'는 바로 '형님'이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되어있다. 그 '실루엣 사나이'의 '특수 권력'이야기가 인천공항 상공에서도 맴돌고 있다.
요약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이명박 정권의 집권초기인 2008년 8월 정부가 인천공항 매각문제를 들고 나왔다. 국토해양부의 논리는 인천공항의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선진공항 운영기법을 도입하고 ▲HUB화(化)의 지표를 높이며 ▲민간자본을 유입해 경영효율화를 기하기 위해 지분 49%를 매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인천공항은 2004년 이후 매년 지속적으로 100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 세계공항협회(ACI)가 주관하는 공항서비스 평가에서는 2005년 이후 5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중이다. 경영효율화를 말하지만, 인천공항은 직원 1명당 영업이익이 2009년 기준 5억 1000만 원에 이른다. 그해 삼성은 7500만 원, 현대자동차는 3400만 원, 포스코 1억9000만 원이었다. HUB 지표 이야기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
도대체 세계 최상급 공항에 어느 나라 공항운영기법을 도입한다는 것인지, 도대체 왜 판다는 것인지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대목이 있다. 정부가 매각문제를 들고 나온 2008년 8월 인천공항지분을 사들일 수 있는 외국의 공항운영전문기업은 극히 제한돼 있는 상황이었다.
호주계 투자은행인 맥쿼리금융그룹의 자회사가 서서히 떠올랐다. 사람들이 질겁한 것은 이 자회사 사장이 바로 '형님'의 큰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 대목에 '숨은 그림'이 있었다. 게다가 외국기업에 지분을 매각한다는 49%는 면세점 등 당장 돈이 되는 쪽이었고, 인천공항이 보유할 51%는 활주로와 관제탑 등 돈이 안 되는 것들이었다. 당연히 '음모론'이 고개를 들었다.
국회논의가 시작되었다. 국토해양위원회에서는 눈물겨운 일들이 벌어졌다. 회의 때마다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진 김성순의원에게 국회 출입기자들이 "인천공항을 지켜주세요" "우리공항 매각을 막아주세요"하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때마다 김 의원은 울컥울컥했다고 했다.
여론이 따가워지자 '형님'의 아들은 그 자회사를 떠났으나 공항노조 등 관련자들은 아직도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어딘가 '숨어서' 기회를 엿볼 것이란 걱정 때문이라고 했다. 더구나 공항공사 측이 지난해 10월, 30억 원을 들여 펴낸 '경영진단 및 경영구조개선 용역보고서'에는 '지분 매각 로드맵'까지 실려 있다. '형님'쪽은 관련이 없다고 펄쩍뛰지만 문제는 1등 공항의 지분을 왜 팔려하는지 아직도 이유가 분명치 않다. 때문에 혹시 '실루엣 사나이'가 노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조바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쯤해서 우리는 투명성과 정당성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요즘 강조하고 있는 '공정사회' 정신을 우선 '형님'에게 적용해야 한다. 공인은 처신에서 모든 게 거리낌 없어야 한다. '실루엣 사나이'는 앞가림을 하고 있는 수상한 베일을 벗어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게 투명해지고 떳떳해진다. 납득할 이유를 대지 못하는 공항매각은 더 이상 추진되지 않는 게 옳다.
민간인 불법사찰사건도 관련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형님'은 얼굴을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항상 이름이 붙어다니는 박영준 씨와 나란히 손을 잡고 자청해서 검찰에 걸어들어갈 필요도 있다. 국민들의 의혹은 풀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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