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담은 슬라이드 사진이 차례로 스크린에서 흘러 나오자, 강연을 하던 한홍구 교수의 목소리도, 이를 듣는 청중의 열기도 점점 높아졌다. 그러는 동안 광장 한 구석에 마련된 임시 강연장에 모여든 사람들의 숫자는 100명에서 200명으로, 20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사흘째를 맞은 7월 20일 오후 8시, 고인을 기리는 추모 강연회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학계 등으로 구성된 김대중 전 대통령 시민추모위원회가 주최한 이 행사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강연자로 나선 가운데 총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광장을 찾은 시민들도 걸음을 멈추고 강연을 들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를 맞은 20일 오후 8시, 고인의 생애와 정치를 기리는 추모 강연회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강연회를 지켜보고 있다. ⓒ프레시안 |
한홍구 교수는 '인동초를 그리며'라는 제목으로 한국 현대사의 궤적을 따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하나하나 되짚었다. 청중들은 김 전 대통령이 납치와 사형 선고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대목에선 함께 숨죽이기도 했고, 그가 네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대통령이 되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대목에서는 함께 환호하기도 했다.
한 교수가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독재자는 결국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은 한국전쟁 이후 진보의 씨가 말랐던 우리 현대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등의 발언을 할 때에는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는 두 달 동안 온 몸으로 유언을 남겼다"
▲ 추모 강연회를 진행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프레시안 |
한 교수는 이어 "현 정부를 '독재 정부'라고 과감히 비판하고, 민주주의의 역주행을 날카롭게 지적한 분 역시 김 전 대통령이다. 그는 현 시대의 문제를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며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끝까지 '행동하는 양심'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강의가 끝날 무렵 한홍구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은 유언 없이 떠나셨다지만, 사실 그는 지난 두 달 동안 온 몸으로 유언을 남기셨다"며 "그 분의 정치적 유산을 탐하지 말고, 그 분의 유지를 이어나가자. 끝까지 그 분의 유지를 이어 민주주의를 다시 찾는 날, 언제부터인가 닫혀버린 이 광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호소했다.
두 시간 동안의 열띤 강의가 끝나자 청중의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분향을 마치고 강의를 들었다는 김현종(62) 씨는 "김대중 선생님이 1998년 대통령이 되던 날, 아내와 부둥켜안고 울었다"며 "시대의 큰 어른이 가셨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박다솔(18) 학생은 "어머니와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가 강의를 듣게 됐다"며 "김대중 대통령이 젊은 시절 고생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애쓰셨는지는 몰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좋은 곳에서 푹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추모위원회는 김 전 대통령의 장례 기간 동안 매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추모 행사를 계속할 예정이다. 영결식 하루 전인 22일 오후 7시에는 고인을 기리는 시민추모문화제가 열린다.
▲ 서울광장 분향소 옆, 시민들이 매달아놓은 근조 리본과 추모 메모가 보인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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