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는 자신이 공개리에 언급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의 존재 여부에 대해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2인자'로 불리는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는 특유의 거침없는 발언을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전격 회동 이틀 후인 이날 청문회에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대북 쌀 지원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 밖에 진수희, 이주호 후보자에 대해선 그간 언론 등을 통해 이미 알려진 도덕적 의혹에 대한 공방이 오가는 정도였다.
▲ 청문회를 기다리는 사람 중에선 신재민 후보자가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 많다ⓒ청와대 |
당초 조현오 후보자 등에 대한 지명 철회, 자진사퇴 압력이 거셌었지만 청와대는 "청문회를 본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고 청문회까지는 끌고 왔다.
이제 관심사는 '개별적으로 흠집이 나건 말건 모든 후보자들이 생환하느냐' 여부와 방어선을 친다면 '누구까지냐'로 압축되고 있다.
'발탁'이 아니라 '인사 추천'에 문제 있다는 이 대통령
이날 청문회 시작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는 예의 '정책검증론'을 반복했다. 하지만 홍준표 최고위원은 "청문회의 본래적 취지는 첫째 도덕성 검증이다. 두 번째 전문성, 정책능력 검증"이라며 "그것은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대법관 후보가 히스패닉계의 가정부, 밀입국자 가정부를 집에서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인준이 거부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이 정부 후반기의 국정지표를 '공정한 사회'라고 말씀을 하셨다. 공정한 사회라는 것은 출발의 공정, 과정의 공정,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정한 포퓰리스트'를 자임하는 홍준표 최고위원다운 발언이고, 모두 옳은 말이다.
청와대에서도 비슷한 시그널이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좀 더 엄격한 인사검증 기준을 만들라"고 말했다. 그는 "인사추천을 그때그때 기준에 따라 해서는 안된다.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 그 기준에 따라 정밀하게 평가한 뒤 추천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이번에 추천된 인사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앞으로 더 보완하자는 차원"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 뒤따랐지만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선 이번에 청문회에 올라간 인사들이 '엄격한 인사검증 기준'으로 걸러진 사람들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엄격하지 못한 인사검증 기준'을 잣대로 들이댄 것도 청와대지만.
또 이 대통령은 '추천'에 책임을 물었을 뿐이다. '추천'은 참모의 몫이지 이 대통령의 몫이 아니다.
처지가 바뀌고 있는 조현오와 이재훈
청와대 관계자는 이미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 동영상 말고 다른 부분은 모두 인사 검증에서 나왔던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뒤통수를 맞았던 천성관 전 검찰청장 후보자 때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청와대 자체 기준으로 통과시키고 대통령의 재가까지 받았던 사람들을 여론과 야당의 압박에 밀려 낙마시키는 것도 체면 구기는 일이다. 하지만 여론이 심상치 않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홍준표 최고위원 만큼은 아니지만 "이렇게 가선 안 된다"는 의견이 꽤 많은 편이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가 될지언정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커트라인'이다.
▲ 이재훈 후보자는 여권에서도 '동네 북'신세다ⓒ청와대 |
그는 이미 이재훈, 신재민, 김태호 후보자를 사퇴 대상으로 지목한 바 있지만 이날은 이재훈 후보자에 초점을 맞춘 것.
여권에서는 "이재훈 후보자는 어렵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들린다.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가 '탈락 0순위'로 꼽혔던 때와는 기류 변화가 있다. 조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문제에 대해 답을 피하면서 엉뚱하게 "특검이 되면 증인으로 나올 용의가 있다",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에서 유죄를 받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결국 조 후보자의 거취는 또 다른 '힘겨루기의 상징'이 됐기 때문에 이재훈 후보자가 가장 약한 고리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는 부담 덜할 것이고 우린 실익이 없다"
야권의 한 인사는 "산자부 실장 시절부터 부동산에 손을 많이 댄 흔적이 나오고, 차관 이후에 그냥 신경을 안 썼더라"면서 "이 후보자는 자신이 장관으로 발탁될 생각을 못했던 케이스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청와대는 '우리가 장관 후보까지 올린 것이 인천 부평 재보선 출마에 대한 보상이다. 그 이후는 자기 흠결 때문에 낙마한 것이다'는 식으로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광주일고 출신에다가 정치적 중량감도 가장 떨어지는 사람이 이 후보자 아니냐. 이 사람 하나 떨어뜨리는 건 청와대에선 부담이 없을 것이고 우리 입장에선 실익이 없다"고 정치적 시각에서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훈 후보자 선에서 방어막이 쳐질지는 미지수다. 신재민 후보자의 흠결이 이재훈 후보자보다 덜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불은 순식간에 번질 수 있다. 신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24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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