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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21세기 첫 10년의 '즐거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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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21세기 첫 10년의 '즐거운' 기록

[프레시안 books] 세스 토보크먼의 <나는 왜 저항하는가>

꼭 1년 전 이맘때, 경기도 평택은 전쟁터였다. 대규모 정리 해고에 맞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는 77일 동안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점거 농성이 장기화되고 정리 해고 대상자에서 제외된 이른바 '산 자'들이 공장 밖에서 "파업을 중단하라"며 맞불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진압의 시점을 재고 있었다.

2009년 8월 5일, 경찰은 마침내 진압 작전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있던 도장1공장 옥상에 경찰은 컨테이너를 이용해 뛰어 내렸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노동자들이 경찰의 손에 목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넘어져 쓰러진 노동자를 발로 밟았다. 곤봉이 하늘에서 노동자의 몸으로 떨어져 내렸다. 군홧발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 지옥 같았던 현장에서 기자는 활자의 한계를 처음으로 절실하게 깨달았다.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글자를 이어 쓰는 글은 분명 훌륭한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기막힌 잔인함을 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곳을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간신히 쥐어 짜낸 가장 훌륭한 단어의 조합도 짧은 순간 촬영된 영상이나 사진 한 장보다 힘이 약했다.

<나는 왜 저항하는가>(세스 토보크먼 글과 그림, 김한청 옮김, 다른 펴냄)의 책장을 넘기면서 다시 그 여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떠올린 건 그래서였다. 토보크먼의 그림은 그 어떤 언어보다 훌륭하게 "암울한 21세기의 첫 10년을 적절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일들이 엑스선처럼 드러나다"

▲ <나는 왜 저항하는가>(세스 토보크먼 쓰고 그림, 김한청 옮김, 다른 펴냄). ⓒ다른
<나는 왜 저항하는가>는 만화책이다. 하지만 단순한 만화가 아니다. 이 책의 원제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만화는 재앙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저항을 그린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치 만화다.

저항이 촉발되는 곳은 어디든 재앙이 먼저 있었다. 그 재앙은 때로 '카트리나'와 같은 자연재해이기도 하고 9·11과 같은 예상치 못했던 정치적 재앙이기도 하며, 때로는 사모펀드 회사 칼라일그룹이 일으키는 숨겨진 재앙이기도 하다.

미국의 흑인 운동가인 무미아 아부자말은 "토보크먼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대표되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계급적, 인종적 범죄에 대한 정면 대응을 그려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국가가 시민에 가하는 공격과 반대되는 의미의 저항"이라 덧붙였다.

토보크먼의 눈이 머무는 재앙의 피해자는 언제나 약자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하며 또 그래서 "가혹한 세상의 돌과 화살"을 너무 자주 맞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절망과 슬픔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그림으로 그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전 지구의 재난과 저항"을 전한다.

"토보크먼의 만화는 우리가 신문의 헤드라인에서 볼 수 없는 일들을 엑스선처럼 속속들이 명료하게 보여준다"는 아부자말의 평은 책장을 덮는 순간 다시 한 번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만화를 연재하던 <뉴욕타임스>가 중도에 연재를 중단했던 까닭도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의 글과 그림은 어떤 글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문제의 본질로 곧바로 진입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른

재앙의 현장에 차려진 작업실

토보크먼의 붓과 펜에 성역은 없다.

"미국이 추위에 떨면 지구상의 나머지 나라들은 독감에 걸린다고 부모님은 말했다. 구역질나게도 아직도 우리 정부는 이라크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죽었는지에 대해 인권 단체와 논쟁을 벌이고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우리에게 사실을 알리는 데 태만하고 심지어 고의적으로 은폐하는 분위기다."

당연히 토보크먼은 그저 들은 얘기를 기록하지 않는다. 그는 "스케치북, 녹음기,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현장으로 뛰어간다. 자신이 직접 본 것, 알아낸 것을 통해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사건의 실질적인 원인"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특히 그가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조지 부시의 형'과 관련된 칼라일그룹의 문제점을 파헤친 것은 인상적이다. 그는 칼라일그룹의 정치적 유착과 전쟁을 통한 이윤 확대 과정을 어떤 신문기사보다 간결하고 정확하게 드러낸다.

"중동에서 전쟁이 확대되면서, 피 흘리는 곳에서 돈을 버는 정치와 경제를 통치하는 지배계급이 있다. 부시와 빈 라덴 가문은 그 일원이다."

그의 작업실은 재앙이 벌어지는 바로 그 곳, 재앙에 맞선 저항 운동이 파고를 이루는 바로 그 땅이다.

ⓒ다른
"9·11 공격이 미국을 바꾸었다? 우리가 어떻게 바뀌었단 말인가?"

토보크먼은 미국 시애틀과 칸쿤의 반세계화 시위, 워싱턴에서 일어난 세계은행에 대한 저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폭력, 미국 뉴올리언스 빈민들의 호소를 있는 그대로 기록해 세상에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그림과 글을 읽는 이들에게 그는 질문을 던진다.

"9·11 공격이 미국을 영원히 바꾸었다고 지겹도록 말들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바뀌었다는 말인가. 몇 년 동안 미국인들은 자국의 외교 정책을 망각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가 이란, 과테말라, 칠레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한 일을 알고 있는 미국인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 사실 미국인들에게 냉담해도 될 핑계로 삼을 만한 것이 많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걱정하는 이들은 정말 게으르고 인생이 공허한 사람들일까?"

그가 언제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알기 위해 그는 2002년과 2003년 중동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은 기존의 그의 만화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았다. 시카고에서 열린 슬라이드 상영회에서는 "검은색 모자를 쓴 우파들에게 심한 야유"를 받았고, 심지어 그의 만화는 "친팔레스타인 좌파의 몇몇 분파들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그는 그들에게 되물었다.

"20쪽 분량의 만화를 읽고 독자들이 나의 관점에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에 잠시만이라도 자신들의 확고한 신념에 대해서 되새겨볼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당신들은 그러한 신념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가? 당신들이 갖고 있는 정보의 원천은 정말 신뢰할 만한가? 당신들은 개인적으로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을 알고 있는가?"

ⓒ다른

"우리만 행동한다면 상황은 변할 수 있다"

토보크먼은 아는 것에 그치지 말라고 틈날 때마다 진심을 담아 당부한다. 우리의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이 그의 만화의 제일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이 각종 시위 현장의 포스터나 선전물로 사용됐음은 토보크먼 자신이 제일 먼저 행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변할 수 있다. 만약, 우리 시민들이 행동을 취한다면."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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