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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김문수, '20년 동지'에서 '경쟁자'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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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재오-김문수, '20년 동지'에서 '경쟁자' 되나

김태호도 가세…8.8개각으로 불어난 여권의 '서민형 대권주자'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9일 '사고'를 쳤다. 김 지사는 이날 오전 경기도청에서 열린 월례조회에서 "갑자기 자고 나니까 어! 이 총리가, 이 사람이 누구지? 갑자기 그냥 누가 나타나는데 이게 누군지 뭐, 왜 그렇게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8일 개각에서 전격 발탁된 40대 총리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김문수 "갑자기 자고 나니까 총리가 나타나는데 이게 정상이냐"

김 지사는 중국의 경우 지금 세대 지도자는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이며 차세대 지도자는 누구라는 등 리더십 자체가 안정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깜짝 인사'에 대해 "저놈이 또 언제 해 처먹는지 뒤로 뭘 빼먹을지 다음에 저 사람이 그만두고 자살을 할지 총 맞아 죽을지 정말 모르는 것"이라며 "이게 과연 정상이냐"고 비판했다.

김 지사는 더 나아가 "예측할 수 없고 검증되지 않은 리더십으로 선진국까지 가겠느냐"면서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제대로 본인과 그 가족이 온전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다 총 맞아 죽거나 감옥 가거나 그 자식이 감옥 가거나 자살하거나 안 그런 사람이 누가 있느냐.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지사는 둘다 민중당 출신이지만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서 대권주자 반열까지 올랐다. ⓒ연합

김 지사의 '대형 설화'에 경기도는 서둘러 수습에 나섰다. 최우영 경기도 대변인은 이날 오후 "김 지사가 오늘 직원 월례조회에서 총리 내정과 관련해 한 발언은 우리나라가 중국에 비해 행정이나 정치가 예측 가능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일 뿐"이라며 "국무총리로 내정된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최 대변인은 "조회에서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몇 달 갈지' 등을 이야기한 것은 역대 국무총리 인준 과정의 갈등을 설명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문수-김태호 '신경전' 배경은?

김문수 지사의 발언이 김태호 내정자를 겨냥한 '작심 발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김태호 내정자의 발탁으로 적잖이 상처받은 사람 중 하나가 김문수 지사라는 사실이다. 김 지사 측에선 향후 대권구도와 연결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고 나섰지만 김태호 내정자가 '깜짝 총리'로 일약 대권주자 반열에 서게 된 것은 김 지사 입장에서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성장 배경을 보면 김태호 내정자의 '경쟁력' 중 김문수 지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김 내정자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경남도의원, 거창군수를 거쳐 경남지사를 지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노동운동가, 민중당 출신인 김문수 지사가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서 3선 의원을 거쳐 경기지사로 재선에 성공하기까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김 지사가 민중당 출신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특유의 '낮은 포복'식 정치 때문이다. 의원시절부터 김 지사는 직접 발로 뛰는 지역구 관리로 유명했다. 부천 지역에서 그와 악수를 해보지 못한 사람이 드물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부지런히 챙겼다. 경기지사를 하면서 주말이나 휴일에 택시를 몰며 곳곳을 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정치 스타일은 한나라당 내 다른 정치인들과 차별적인 '서민'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줬다. 이를 통해 김 지사는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와 맞붙어 이길 수 있었다.

김 지사의 이런 '낮은 포복'식 정치는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 내에서 벤치마킹해야할 '모델'로 떠오르기도 했다.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김문수 모델'을 배워야 한다"며 "김 지사는 전략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옳은 건 옳다고 얘기하는 부분에서 당당했다. 선거 전 24일간 현장을 누비고 개인택시 체험을 하면서 현장 행정을 보여줬다. 서민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극찬했다. 전여옥 의원도 지방선거 직후 열린 의원워크숍에서 "김문수 지사를 잘 봐야 한다. 기본을 잘 지키고 경기 발전 이외에는 사심이 없다는 진정성이 도민에게 전해졌다"며 "물건이 좋으면 눈이 오고 비가 와도 팔린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권자들을 직접 찾아가는 정치는 김태호 내정자도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내정자는 경남지역에서 '형님만 1000명'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소 장수의 아들'이라는 배경 역시 서민들에겐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다.

때문에 경기지사 재선에 성공하면서 유력한 '박근혜 대항마'로 떠오른 김문수 지사 입장에선 김태호 내정자의 존재가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김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발탁한 인사로 이 대통령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김 내정자는 젊고 훤칠한 외모라는 김 지사의 또다른 경쟁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장점도 갖추고 있다. 김 지사의 '깜짝총리' 발언은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에 더 주목받았다.

김 지사의 발언에 김태호 내정자도 치받고 나섰다. 김 내정자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지도자를 정해 놓고 뽑는 시스템과, 우리나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를 뽑는, 국민이 평가하고 선택해서 뽑는 시스템하고는 다르다"고 대응했다.

'킹 메이커' 이재오, '킹' 노리나

8.8개각으로 여권의 대권경쟁구도에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는 점에 이견은 없다. 이 대통령의 간택으로 일약 대권주자로 편입된 김태호 내정자 뿐 아니라 7.28 재보선으로 여의도에 재입성한 이재오 의원도 특임장관에 내정되면서 대권주자로 등극했다.

국정을 총괄하지만 정치적 자율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총리보다 차기 여권 내 권력구도 재편, 개헌 등 굵직한 문제들의 막후 조정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대권주자로 부각될 가능성이 더 크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9일 CBS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해 "이재오 의원도 자기 나름대로 '킹 메이커'가 아니라 '킹'이 되려고 하는 욕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막 시험대에 오른 김태호 내정자는 아직까지는 위력적이지 않은 반면 '왕의 남자' 이 의원의 존재는 다르다. 당내 지지세력도 만만치 않다.

이재오 의원도 김문수 지사와 마찬가지로 민중당 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 전신인 민자당에 영입, 96년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두 사람은 20년 이상 '동지 관계'로 친분이 매우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스타일도 매우 비슷하다. 이재오 의원도 자전거로 지역구를 누비며 주민들을 만나는 등 '낮은 정치'에 능하다.

한때 야인으로까지 밀려났던 이재오 의원은 7.28 재보선과 8.8 개각을 거쳐 대권 욕심을 키울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김문수 지사의 유력한 경쟁자가 된 셈이다. 이 의원은 최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김문수 지사를 차기 대권후보로 밀 것이라는 말도 있다"는 질문에 "문수? 문수와 친하지. 친한 정도가 아니라 동지니까. (근데) 내가 민다고? 허허허"라고 답했다.

지방선거 이후 부각됐던 '김문수 모델'을 공통분모로 하는 한나라당 내 대권주자가 3명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일까. 이 모델은 이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친서민 정책'과 맞물려 한나라당내 차기 대권주자의 한 전형으로 급부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낮은 보폭'과 '우파 포퓰리즘'이 결합된 새 모델의 돌파력은 어느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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