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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의 성립일자는 누가 정할까, 대통령?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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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의 성립일자는 누가 정할까, 대통령? 아니!

[기고] 법률 개념을 바로잡기 위한 고독한 투쟁

대통령이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날짜를 법률에 명기한다?

법제처는 2008년 3월 28일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개정이유에 대해서는 "법률 등의 공포 또는 공고문 전문(前文)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자라는 표현의 의미가 불명확해 이를 공포 또는 공고일로 변경해 그 의미를 명확히 하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은 잘못 개정된 것이다. 개정 이전의 해당 조항은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날인하고 그 일자를 명기(明記)해 국무총리와 각 국무위원이 부서(副署)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항을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날인하고 그 공포일을 명기해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라고 개정한 것이다. 즉, '그 일자'를 '그 공포일'로 바꾼 것이었다.

이는 명백히 사실(fact)에 위배되는 내용이다. 분명히 이 법문의 주어는 대통령이므로 서명과 날인 그리고 공포일의 명기 모두 대통령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어떻게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관보 발행일, 즉 공포일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떻게 공포일을 미리 명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고 사실에 명백하게 위배된다.

잘못 규정된 '공포(公布)' 법률 개념

우리나라의 법률에 최종 서명하는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희한한 사실은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에 서명만 하고 그 서명일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명일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법제처에서 지정해준 관보 발행일, 즉 '공포 일자'가 나중에 기록되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부동산 계약서만 써도 그 일자를 반드시 써야 하고 만약 그 (계약) 일자가 없다면 계약서 자체가 무효화될 정도로 일자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국가의 최고 규정인 법률에서 서명 일자를 기록하지 않는 것은 매우 커다란 하자가 아닐 수 없다. 문서 성립의 완결성 자체에도 커다란 하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법률 공포권자는 과연 누구인가? 앞에서 살펴보았듯 대통령은 법률에 서명만 하고 행정안전부 소속 관보발행국에 넘겨 비로소 '공포'가 완성된다. 따라서 현재의 관련 규정으로만 보면 행정안전부 관보발행국 직원이 법률의 공포권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 국가의 법률이 일개 공무원의 손에 의해 최종 '공포'되는 셈이다. 이는 '대통령이 공포한다'는 헌법 규정 위반이고 '대통령이 공포일을 명기한다'는 법률 규정 위반이다.

미국에서 관보 발행일은 대통령의 법률 서명일과 일치

미국의 경우, 대통령의 법률 서명과 함께 곧바로 효력이 발생한다. 미국에서 법률은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확정되며,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이 서명으로써 곧바로 효력이 발생한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서명은 법률 확정의 최종적 요소이자 법률안이 법률로 확정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그리해 관보 발행일을 대통령의 서명일과 동일하게 일치시킨다. 그렇게 확정한 법률은 연방기록관리소에 이송돼 원본으로 보관되고 법률번호(Law Number)가 부여된다.

우리 법률의 이 '공포' 규정은 바로 일본의 관련 규정을 완전히 베낀 것이다. 우리 헌법 제53조 제7항에는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일본의 공식령(明治 40년 칙령 제6호)을 보면, 제11조에 "황실령, 칙령, 각령(閣令) 및 성령(省令)은 별도의 시행 시기가 있는 경우 외에 공포일부터 기산해 만 20일을 경과하면 이를 시행한다."라고 규정돼 있었다.

법률 '공포(promulgation)'는 '출판(publication)'과 다르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이 '공포'라는 법률 용어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앞에서 소개한, 법제처가 잘못 개정한 '공포' 관련 법률도 사실 필자가 '공포'의 개념을 바로잡기 위해 제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더욱 왜곡된 채 개정되고 말았다.

필자는 이 과정에서 '고정관념'의 높은 벽과 주변의 몰이해로 심지어 근무처에서 징계에 부쳐져 납득할 수 없는 '서면경고'까지 받아야 했다. 당시 필자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답변했었고, 국회 입법조사처 학술지 <입법과 정책>에 "각국 법률상 '공포' 개념 고찰을 통한 우리나라 '공포' 규정의 개선 방안"(2011. 6)의 논문을 발표하고 <법률신문>에 관련 기고문을 발표하는 등 '공포'의 법률개념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홀로' 계속해왔다.

본래 '공포(promulgation)'의 법률적 의미는 바로 대통령의 법률서명 절차를 가리키며 법률을 확정시키는 행위이다. '공포'는 관보 발행을 의미하는 publication(출판)과는 분명하게 상이한 개념이다. 이에 대해 권위 있는 <가톨릭 엔사이클로피디아>(Catholic Encyclopedia)는 "법률의 공포는 법률의 출판과 혼동돼서는 안 된다. 법률 공포의 목적은 입법자의 의지를 알리는 것인 반면, 법률의 출판은 법률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당사자들에게 제정된 법률에 관한 지식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등 EU 국가들과 러시아 등 세계 대부분 나라의 법률에서 '공포일'과 '관보발행일'은 서로 상이하다. 즉, 공포일은 서명일과 일치되며 그에 반해 관보발행일은 공포일과 별도로 관보에 법률이 발행, 출판돼 공시(公示) 혹은 공표(公表)되는 일자로서 그 일자는 효력발생의 기산점으로 역할하게 된다. 이들 나라의 법률은 'Date of document(or text)'와 'Date of publication' 등 두 가지 일자를 분명히 구분함으로써 두 가지 개념을 완전히 달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근대화 시기 일본이 서양의 법률 용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promulgation'을 '공포(公布)'라는 용어로 잘못 번역해 소개했고, 이 '공포'라는 한자어는 본래 '널리 알리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출판) 행위와 동일시됐다. 그리고 이 용어를 우리나라가 직수입한 것이다.

입법 절차와 개념의 하자는 법률의 정당성을 동요시킨다


존재하는 문제점을 임기응변의 미봉책으로 막을 수 없다. 입법 절차와 개념의 정당성은 그 결과물인 법률의 내용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를 위해서도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입법 절차와 개념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법률의 내용적 공정성이 의심스럽게 될 뿐만 아니라 정당한 법률로 추정하기 위한 전제로서의 절차의 공정성이 동요할 수밖에 없다.

이제 잘못 이해되고 있는 '공포'의 법률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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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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