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치연구소 정당분석팀은 이런 상황 인식에 동의하는 연구자와 일선 정치인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첫 작업으로 개혁적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해왔고 향후 연합정치와 지방정치의 중추 역할을 하여야 할 민주당을 집중 해부하기로 하였다. 사실과 경험에 근거한 명확한 비판과 대안 중심의 논쟁을 제시함으로써 정당 및 정치와 관련된 생산적인 사회적 공론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민주당에 대한 분석은 내달 18일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 전까지 8회에 걸쳐 <프레시안>에 실린다. 관심 있는 분들의 토론 참여와 논쟁을 적극 환영한다. 편집자
한민당에 뿌리를 둔 민주당의 변천사
민주당은 계륵이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그런 것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진보를 통해서 사회발전을 고민하는 집단이나 사람이라면 결코 민주당의 문제를 피해서 갈 수 없다. 적어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민주당을 내치거나 우회해서 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주도하겠다고 자임하는 집단이라면 미아가 되어 버린 지금의 민주당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답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당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으려면 민주당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민주당은 도대체 어떤 집단인가? 정체성이 무엇인가? 그런데 내가 확인해본 바로는 민주당 사람들 자신도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의 역사적 맥락과 이념·정책노선을 중심으로 구조를 더듬어 보았다.
알다시피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해방 공간에서 존재했던 한국민주당(약칭 한민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민당은 지주세력을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공산당만이 아니라 중도좌파, 중도우파, 민족주의 우파 모두를 타도하고 극우반공국가연합을 건설하는 데 앞장선 정당이다. 그 후 반공국가연합은 권력을 놓고 균열하여 한쪽은 이승만자유당이 되었고, 다른 한쪽인 한민당은 야당이 되었다. 처음에 전자는 행정부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후자는 의회권력에 비교우위가 있었다. 그러나 공권력과 대중동원능력에서 우월했던 이승만자유당은 한민당을 철저히 핍박하여 의회권력마저도 탈취하였고, 그 과정에서 치열한 갈등이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이념적 차이는 거의 전무했다.
그러면 지금 민주당은 본질적으로 그런 한민당의 연장인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이 한민당의 연장으로서 존재했던 시기는 1960년대 말까지였다.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윤보선이 박정희를 향하여 색깔론을 펼칠 만큼 민주당은 개념이 없는 정당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박정희가 3선 개헌의 음모를 드러내 보이자 야당재야학생운동을 잇는 반독재전선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야 정당체제는 권력분파의 균열을 넘어 '독재 대 민주'의 대결구도로 전화되기 시작하였다. 야당은 이제 독재에 맞서는 민주정당으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바로 이 과정을 이끈 야당의 걸출한 지도자가 40대 초반의 김대중과 김영삼이었다. '선명야당', '투쟁야당'의 기치를 내건 이들의 리더십 아래 야당인 민주당은 체질혁명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극우보수정당의 일익에서 자유주의적 민주정당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민주당은 여러 형태로 모습을 바꿨지만 양김(YS는 3당 합당 이후 탈락)의 리더십과 정치철학 아래서 30-40여 년을 지속해 왔다. 민주화 이후 민주당은 '반독재 투쟁정당'으로부터 '중도적 개혁정당'으로 정체성의 틀을 시대 변화에 맞게 다시 한 번 재정비 하게 된다. DJ의 지도하에 1995년 창당된 새정치국민회의는 당의 정체성을 '중도적 국민정당'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DJ의 집권전략은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한 색깔론을 견제하고 외연을 확장시키기 위해 중산층과 보수층을 끌어안는데 주력하고 있던 관계로 당의 정체성도 '중도', '국민' 같은 온건하고 포괄적인 용어들이 사용되었다. 한마디로 너무 우경화되었던 것이다. 그 같은 우편향은 2000년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약간 정정되었다. 새천년민주당은 당의 정체성을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기존의 '중도주의'를 계승하면서도 '개혁' 담론을 새롭게 강화했다.
새천년민주당의 이 같은 정체성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라는 3대 이념으로 제시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이념 축은 그 위계관계가 모호했고, 어떤 점에서는 상호 모순적이기 조차 했다.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서는 민주당 정권의 정책노선을 놓고 매우 상이한 평가들이 나와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이는 김대중 정부의 민주적 성격을 강조하여 신조합주의라고 보았고, 또 어떤 이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복원되는 현상을 강조하여 신국가주의 내지 관치경제의 존속형태로 파악하였으며, 또 다른 어떤 이는 시장경제적 성격에 주로 주목하여 신자유주의로 규정하였다.
한편 새천년민주당과 김대중 정부 스스로는 자신의 정책이념을 독일 프라이부르그파를 중심으로 발전한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라고 일컫기도 하였다. 질서자유주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사회발전모델로 하는 것인데, 기민당이 주도한 전후 독일부흥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핵심목표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에 있으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경우 국가가 개입하여 독과점을 규제하고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념과 이론을 정립한 뮐러아르막은 질서자유주의에 강력한 사회보장을 결합시켰다.
하지만 질서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가 새천년민주당의 정책노선과 상통한다는 주장은 과도해 보인다. 디제이노믹스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노선보다는 훨씬 덜 '반독점적'이었으며, 덜 '분배지향적'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경제영역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3대 이념 중 시장주의 원리가 압도적으로 관철되었고, 민주주의는 노사정위원회의 좌절에서 보듯이 삐걱거렸으며, 복지를 통한 분배기능은 여전히 부수적으로만 작동했다.
새천년민주당 정권 하에서 정치개혁은 중간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새천년민주당은 출범부터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생활화를 통해 참된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하다"고 제시하고, '인권과 복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정치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에 따라 참여의 폭이 넓어지고, 인권신장의 측면에서 현격한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역주의 타파는 결과적으로 실패하였고, 정당지배구조는 보스와 패거리 중심으로 이루어져 나갔으며, 정경유착을 근절하기 위한 개혁조치는커녕 그 자신이 정권 말기 각종 게이트에 휘말리고 말았다.
이 시기에 가장 성공한 정책은 남북의 화해협력과 평화정착이었다. 햇볕정책은 반공이데올로기의 제약을 완벽하게 돌파해냈을 뿐만 아니라,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도 민주노동당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을 만큼 중도주의의 자기 틀을 벗어나 진보적으로 확장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새천년민주당과 김대중 정부 하에서는 정치 분야와 경제 분야 남북관계 및 평화 분야에서 이념과 정책의 정체성 발현이 각각 서로 불균등하고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답을 제시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연구대상으로만 남겨두기로 한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은 이름을 민주당으로 바꿨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든 열린우리당과 합당,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이름을 바꿨었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다시 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연합 |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은 우여곡절 끝에 열린우리당으로 재창당되었다. 열린우리당은 무엇보다도 '새롭고 깨끗한 정치'를 내걸고 정치부패척결을 강력하게 의제화시켰으며, 정당개혁의 제도화를 추진하였다. 또한 경제정책 영역에서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라는 담론이 부각되기 시작하였으며, 국민의 정부에서 정초된 생산적 복지의 뼈대 속에 살과 피를 채워 넣는 과제가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
열린우리당은 자유주의적 개혁정당 사상 최대의 의석과 그에 비례한 최대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중도좌파에서 보수까지 다양한 이념적 컬러가 공존하였는데, 열린우리당의 리더십은 이를 조화롭게 조율하지 못함으로써 '중도실용노선'과 '개혁' 노선이 소모적 대립을 지속하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해야 하는지 개정해야 하는지, 이라크 파병은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논란이 분분했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면서 점차 중심을 잃어갔다. 사회경제정책에서도 최종적 착점이 성장인지, 분배인지 어정쩡하고 혼란스러웠다. 재벌정책은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지 완화해야 하는지도 잘 정리가 안 되었다.
게다가 IMF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경제구조조정의 여파는 사회를 급속히 양극화로 몰아가고 있었다. 사회양극화를 막아내거나 적어도 완화시켜야 하는 과제가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주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응하자면 이념적·노선적으로 정체성과 색깔이 분명한 무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는 2005년 말부터 신강령 제정 작업에 돌입하였고, 그 결과로 도출되어 나온 개념이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라는 발전담론이었다.
열린우리당의 신강령(안)은 신자유주의 물결에 의한 사회양극화 문제에 대한 본격적 대응을 천명하고, 이에 대한 세계화의 한국적 수용을 통한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으로서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를 제시하였다. 그것의 이론적 골간은 주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사회협약', '능동적 정부', '공정한 경쟁질서', '복지의 확대' 등이었다. 그것은 '혁신주도형 성장'과 '성장촉진형 분배'의 결합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본질적으로는 '성장의 질'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신강령(안)은 '중도개혁정당'이라는 모호한 정체성 규정을 극복하고 실질적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사회양극화 문제에 대응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통합적 시장경제의 철학적 기반이 무엇인지 여전히 불분명했다. 당시 박세일교수의 '선진화' 담론이 제창하는 '공동체 자유주의'와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도 불명확했다. 사회통합적 시장경제의 문제의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가능한지도 확신이 없었다. 신강령(안)의 작업은 난관에 부딪쳐 갔다. 결국 신강령 작업팀이 내린 결론은 이념정체성 확립을 위한 논쟁이 바람직하고 지금 필요한가라는 회의였고, 결국은 정책의 각론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결론으로 돌아갔다.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론이 남긴 담론적 파급이 결코 적지는 않았다. 참여정부는 대통령 의제로서 사회투자국가론에 입각한 '비전2030' 작업을 추진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사회양극화 극복 문제를 정식 의제로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런 중대한 과제를 추진하기에는 열린우리당은 리더십이 무너져 있었고 지지기반은 와해의 단계로 가고 있었다. 참여정부는 담론과 정책의 일관성 사이에서 방황을 거듭하고 있었다. 바로 사회양극화 극복을 의제로 설정했으면서도 동시에 한미FTA 협상 추진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사회통합적 시장경제의 담론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구속력도 가질 수 없었다. 게다가 2006년 중반부터 마치 쓰나미처럼 본격적으로 불어 닥친 부동산 투기열풍은 앞서의 모든 담론과 정책적 노력들을 일순간에 쓸어 담아 묻어버렸다.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17대 대선은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의 최악의 참패로 귀결되었다.
대선 패배 후 그 동안 분열되어 각개 약진했던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은 다시 합당하여 통합된 민주당이 되었다. 민주당은 강령에서 "고른 경제성장과 서민·중산층의 복지향상을 함께 추구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중도개혁주의 정당임을 선언"하였다. 또 "성장과 분배가 조화되는 경제·문화강국과 복지·행복국가 건설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강령에 표현된 담론에서도 암시되듯이 민주당은 이념적 정체성 측면에서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우클릭한 것이었다. 보수적 색채가 강한 (구)민주당을 고려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또한 산술적이고 공학적인 합당의 불가피한 결과이기도 했다. 게다가 2008년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당의 인적 구성이 더욱 우경화된 데에도 기인한바 컸다.
총론과 각론, 혼재된 정체성
당의 이념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민주당에서 추진한 주목할 만한 성과는 '뉴민주당플랜'이었다. 2009년 뉴민주당플랜(안)이 제시되었을 때 이를 향해 당 내외에서 우경화 논란이 빗발치듯 쏟아졌고, 시안은 그 후로 정처 없이 표류하다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서야 수정보완 끝에 공식 발표될 수 있었다.
뉴민주당플랜은 주요 정책의 핵심 방향으로 '사람중심 발전모델'을 제시하였다. 사람중심 발전모델은 "'先성장·後분배' 모델도,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모델도 아닌, '성장과 분배가 동시 달성'되는 모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뉴민주당플랜의 제1원칙은 '포괄적 성장'이라는 개념이다. 그것은 아마 미국 민주당의 새로운 리더십 그룹이 만든 해밀턴 프로젝트의 '폭넓은 경제성장'(broadbased economic growth)이나 동 그룹의 진 스펄링이 쓴 '성장친화적 진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이 바로 '기회의 복지'인데, '사회투자형 복지국가'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포괄적 성장'에 연계되어 있는 '사회정책'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뉴 민주당 플랜'의 사회경제정책노선의 전체적 기조가 드러난다. 그것은 '뉴민주당플랜'이 '제3의 길'이나 '클린터노믹스'가 추구하는 중도주의 정책노선의 테두리 속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이상에서 말한 것은 총론이고,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런 기조가 변형된다는 것이다. 각론의 정책들, 특히 사회정책 분야 쪽으로 가면 좌클릭된 정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가령 교육정책의 경우 유아교육 담당 교사들의 인건비 격상(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지원)이라든가 초·중등교원의 대폭 증원, 대학교육에 대한 국가재정지원 확대, 보편적 무상급식 확대 등 국가 및 공공부문을 통한 예산투입형 정책들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정책들이 사회 전반의 영역으로 확대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하게 되어 있다. 이는 총론과 괴리되는 문제여서 민주당의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 같이 뉴 민주당 플랜에서 총론과 각론의 비대칭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은 애초 '시안'이 발표되었을 때 쏟아진 내외의 비판들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임기응변적 대응이 때론 필요할 수도 있지만 자칫 민주당이 항로를 잃고 말 수도 있는 위험 요소이다.
중도를 넘어선 새로운 깃발과 주도세력이 절실하다
▲ 민주당은 '중도개혁'의 시대정신을 넘어서는 새로운 깃발이 필요하다. ⓒ연합 |
이상으로 우리는 민주당의 긴 역사적 궤적을 더듬으며 정체성이 어떻게 변동을 겪었는지 살펴보았다. 민주당은 1970년대 초 DJ, YS의 리더십을 통해서 성공적인 체질 혁명을 이루었다. 민주당은 '민주 대 독재'의 시대, '개혁 대 수구'의 시대에 요구되는 역사적 과제를 나름대로 완수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깃발이 필요하다. 특히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사회개혁을 이끌었던 '중도개혁'의 시대정신을 넘어서는 새로운 깃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민주당이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자기 것을 내팽개치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1970년대 초와 1990년대 후반에 시대상황과 집권전략에 맞춰 당의 정체성을 재정비했던 DJ의 미션에 다름 아니다. 또한 새 시대의 장자이기를 원했으나 구시대의 막내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절절한 꿈과 회한을 담아 뒷세대에게 던진 과제이기도 하다.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과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세계화가 던지는 문명사적 도전을 극복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 간의 공정하고 민주적인 협력의 공동체'를 더욱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초점을 맞춰야 할 과제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right)의 실현이며, 이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까지도 자기 삶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민주주의를 충분히 향유할 때 가능해 진다.
이상의 맥락에서 민주당이 새롭게 지향해야 할 정체성은 큰 흐름에서 좌 클릭이 맞다. 하지만 민주당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의 노선이 되기는 근본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민주당은 본질적으로 자유주의 정당(liberal party)이고 그것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사회민주주의노선이 한국사회의 문제 해결에 자유주의노선보다 더 바람직하고 적실한지도 아직은 의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자유주의의 기반 위에서 진보와 노동을 흡수하는 '리버럴 진보'(liberal progressive)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민주적 자유주의 혹은 사회적 자유주의)의 길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주류는 자유주의적 중도 내지 보수였다. 다만 DJ와 노무현의 리더십을 매개로 진보적 인사들이 부정기적으로 수혈되어 왔을 뿐이다. 그래서 리버럴 진보의 정체성을 갖는 집단이 형성되어 오지 못하였다. 한국의 민주당이 미국 민주당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이다.
한국사회에는 아직 개척되지 못한 넓은 정치경제적 영역이 있다. 사회경제적 문제에 국한시켜 놓고 본다면, 가령 성장과 분배를 동시적으로 달성하면서 사회적 시민권의 영역을 확장해야 하는 문제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 민주당은 '포용적 성장'이라는 지금까지의 제1의 기조를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시켜 성장이냐, 분배냐의 협소한 범위를 뛰어넘는 진정한 '발전' 개념을 정립하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민주당이 직면한 그러한 과제의 달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옹호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이를 위해 보편적 절차와 규칙, 배분적 정의에 관한 진보적 기준들을 수립하고자 한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일률적이지 않고 아주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좌우에 존재하는 자신과 다른 이질적인 이념·집단들에 대해서 대단히 관용적이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급진적인 이념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현실 가능성과 지평은 의외로 넓다고 생각된다.
민주당은 중도주의의 담론을 극복해야 한다. 그 같은 노선 기조는 세계사적 시간대에서 보아도 한참 뒤쳐진 것이다. 미국도, 영국도 클린턴의 중도주의, 토니 블레어의 급진적 중도주의('제3의 길')를 넘어서 가려하고 있다. 그 때는 신자유주의의 압도적 영향력을 중화시키기 위해 일정한 타협과 변형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때와는 차원이 달라졌다. 리버럴리즘에 태생적 기반을 둔 정당은 사실 영원한 중도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도주의의 '담론'은 리버럴리즘의 더 많은 진화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제2의 DJ, 노무현을 기다려 본다.
이제 제2의 체질혁명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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