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뭐냐고 물어서 '활동보조'라고 하니까 설계사분이 모르시더라고요. 제가 이 일을 한 지가 11년째인데, 아직도 사회에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어요."
김 씨의 이용자인 이경호 씨는 희귀 근육병을 앓고 있는 1급 중증장애인이다. 하체는 휠체어를 이용하고 근육에 힘이 없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못 누를 정도다. 김 씨는 토요일만 빼고 하루 10시간 이상을 이용자와 함께한다. 김 씨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보자.
아침 7시 30분 이용자의 집으로 출근, 몸을 일으키고 화장실로 가 배설할 수 있도록 옷 내리는 것부터 올리는 것까지 함께한다. 그리고 머리를 감기고 세수, 양치와 전신 목욕을 시킨다. 이용자의 일터로 출근하기 위해 옷을 입히고, 집안을 정리한다. 휠체어에 오르기 전 리프트에 앉힌 후, 리프트를 휠체어 높이까지 올리고 휠체어 의자에 밀어 태운다.
그리고 전철을 이용해 9시 30분 이용자의 사무실로 함께 출근한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이용자의 사무 업무에 필요한 활동을 지원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식재료를 준비해 밥, 국, 반찬 등을 직접 만들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보조한다. 외부로 이동할 경우 이용자를 차에 태운 후 직접 운전을 하고 저녁에 회의나 장애인과 관련한 집회가 있을 경우에도 동행한다. 그러고 나면 퇴근 시간은 보통 저녁 7시에서 8시, 야간 활동보조인과 교대를 하고 나면 퇴근이다.
이렇게 김 씨가 하는 일은 한마디로 '오만 가지'다. 그런데 '보조'로 호칭되니 중요치 않고 부수적인 직업처럼 평가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달 6일 열린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집담회에서 장애인이자 활동가인 박현 씨는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가 낮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의 평가도 낮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가 이렇게 매일 10시간, 주 6일을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은 약 190만 원. 4대 보험을 빼고 나면 실수령액은 17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평택에서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이상만 씨(51세) 역시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고 있지만, 활동보조인의 임금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임금 같지도 않아요."
이상만 씨의 경우에는 젊을 때 모은 재산으로 생활은 유지할 수 있는 형편이 돼서 적은 임금에도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그렇지 않은 가장들은 이 일을 절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활동보조인은 2011년 1월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활동지원법)'이 제정되며 생긴 직업이다.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국가가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해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여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다. 이는 장애인들의 끊임없는 투쟁의 결과였다.
활동보조인이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유는 정부가 장애인 복지 예산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하고 수급 자격 심사에서 통과되면, 각 지역의 활동지원기관(예: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고용된 활동보조인을 이용자에게 연결해 준다. 2017년 정부가 책정한 시간당 활동보조수가(시급)는 9240원. 장애인이 이용한 시간만큼 국민연금공단에서 기관에 급여를 지급하면, 급여의 25퍼센트는 기관이 운영비로 가져가고, 나머지 6930원만이 활동보조인에게 지급된다. 최저임금(6470원)보다 460원이 많아 보이지만, 여기에는 주휴수당과 연장수당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상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노조는 이에 최저임금을 줄 수 있는 수가로 1만1000원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복지 예산 증가보다 부정수급 단속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사회보장정보원에서 갑자기 모니터링 전화를 합니다. 저에게 전화해서 이용자가 옆에 있는지 통화로 확인하는 거죠. 그런데 제가 운전 중이라서 통화가 안 될 때도 있고, 이용자 요구로 잠시 장을 보러 갈 때도 있어요. 그러면 부정수급을 의심하면서 소명 자료로 CCTV 증거라도 내놓으라고 해요."
이에 많은 활동보조인들이 모욕감을 느끼고 그만두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뿐만 아니라 활동보조인의 90퍼센트가 여성으로 이용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발생하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감정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있다.
"어떤 분이 와상 장애인 가정을 4년 돌봤는데, 지갑에서 돈이 없어지자 도둑으로 몰려서 그만둬야 했대요. 너무 마음이 상해서 다시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대부분 활동보조인들은 돈도 돈이지만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김 씨도 마흔 살부터 장애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더 나빠지는 활동보조인의 처우에 요즘은 힘이 빠진다. 김 씨는 지금까지 중증장애인만 돌봤다. 지금 이용자인 이경호 씨와는 2008년부터 인연을 맺어 오랜 동지이자 가족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경호 씨는 장애인 권익운동에 나서 의정부 지역 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만들었다. 김 씨 역시 자연스럽게 이용자의 활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회원을 모집하고 재정을 꾸리는 것부터 시작해 장애인 투쟁현장에 함께했다. 자연스럽게 김 씨 역시 자신의 직업에 대해 노동자로 인식하고 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의정부지회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용자인 장애인들도 활동보조 노동자의 권리 확보에 앞장섰다. 김 씨는 장애인과 지자체, 보건복지부 등을 다니며 투쟁해 장애인의 권리를 찾았을 때 보람을 느낀다. 이처럼 장애인과 활동보조노동자의 권익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이상만 씨는 2급 장애인인 아내의 권유로 이 일을 시작한 지 4년째다. 그의 이용자는 키가 185센티미터에 100킬로그램이 넘는 자폐성 발달장애인이다. 성인이지만 정신연령이 세 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곧 보람을 느꼈다.
"사랑을 주면 그만큼 따라옵니다. 저에게 '사랑해' 하며 안아 주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몰라요."
이 씨는 이용자를 데리고 매일 운동을 시켰다. 걷기와 등산, 수영을 꾸준히 해서 이용자의 몸무게가 20킬로그램 빠지고 튼튼해졌다. 수영장에서는 장애인 이용에 편견을 갖고 불만을 제기한 노인과 싸우기도 했다. 지금 이용자는 자신의 부모님보다도 이 씨를 더 잘 따른다.
저임금,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는 활동보조인. 그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주 5일, 8시간 정도 일하고, 월급은 200만 원 정도 됐으면 좋겠어요. 기관에 고용되지 않고 정부기관에서 직접 고용해서 고용도 안정되었으면 좋겠구요. 가족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고요, 심리 치료도 받고 싶어요."
장애인 역시 활동보조인의 요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신뢰가 쌓인 활동보조인에게 안정적으로 지원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위한 집담회에서 장애인들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을 건넸다.
"활동보조인은 우리와 함께 비를 맞는 사이입니다. 힘내서 같이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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