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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보다 더 긴 아리랑 길이 있다”

정선아리랑문화재단, '아리랑 로드' 발간

오래 전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자이덴 슈트라쎄’, 즉 ‘실크로드’로 명명했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실크로드를 통해 상호교류와 협력으로 문명의 진보를 이끌어 왔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무역을 넘어 문명교류의 통로에 대한 상징적이고 관용적인 명칭으로 오늘날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찬란한 문명이 넘나들던 길이 실크로드였다면 구한말부터 시작되어 우리 민족의 끝없는 디아스포라로 길 따라 아리랑이 퍼져간 ‘아리랑로드’는 과연 어디까지 뻗어 있을까.

▲아리랑로드 표지. ⓒ정선아리랑문화재단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1860년대 이후 나라가 도탄에 빠져 먹고살기 힘들 때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우리 민족이 떠난 길의 역사와 그곳에서 불리는 아리랑을 거점별로 밝힌 ‘아리랑로드’(B5판, 288쪽)를 발간했다.

‘아리랑로드’는 아리랑박물관 진용선 관장이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정선 뗏목이 내려간 남한강 물길과 해외동포 아리랑 현지조사를 하면서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 이름을 따 정립한 용어다.

‘아리랑로드’라는 제목에서처럼 이 책은 우리나라를 넘어 중국, 러시아, 일본, 중앙아시아, 유럽과 태평양, 미주와 남미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지역으로 뻗어간 길과 아리랑의 실체를 규명하는 보고서다.

정선군과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2009년부터 2016년까지 해외 동포사회에서 전승되는 아리랑의 전승 양상과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해외동포 아리랑 총서를 발간한 바 있다.

‘아리랑로드’는 총서 발간 이전부터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의 세월 동안 단계적으로 진행해 축적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구체화한 보고서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일본, 미주로 간 우리 민족의 이주 역사를 비롯해 나라별로 이주 경로, 아리랑 전승 기반, 아리랑로드의 거점과 이를 구체화한 성과를 담고 있다.

각 장마다 아리랑 노선을 토대로 아리랑의 전승 배경과 양상,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아리랑 유적 및 관련 인물 등을 재조명했다.

중국 조선족의 이주와 재이주로 도시 곳곳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아리랑,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나 성장해 살다가 다시 선조의 고향인 연해주로 재이주한 2·3세대 고려인들이 부르는 아리랑, 강제이주 이후 꼴호즈 예술단을 기반으로 전승된 중앙아시아의 아리랑은 심금을 울린다.

일제강점기 이후 레코드 산업의 부흥과 북한 음반의 유입으로 뿌리 내린 일본 아리랑, 하와이의 알로하오에와 어우러지는 아리랑, 미국에서 벨기에와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으로 퍼져간 아리랑 등이 아리랑로드의 실체를 더하며 감동을 더해준다.

또 1800년대 후반 해외 한인의 이주와 정착 과정을 담은 희귀엽서와 흑백 사진을 비롯해 지난 20년 동안 현지에서 직접 촬영한 100여장의 풍성한 컬러 사진, 아리랑이 전승되어 현지에서 변이된 실체를 알 수 있는 음반 사진 등도 실려 있어 아리랑로드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책 속에 실린 지도에는 한국에서 출발해 중국 길림성과 흑룡강성, 러시아 연해주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유럽 일대, 미국 하와이와 로스앤젤레스, 쿠바와 멕시코 등지를 잇는 아리랑로드가 보기 쉽게 표기돼 있다.

정선군에서는 구한말 이후 남한강 물길을 따라 서울로 간 정선아리랑에서부터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은 이들이 간 길에서 그 후손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아리랑 유적 및 관련 인물 등을 재조명해 학술, 교육, 전시, 홍보, 영상물 제작 등의 원천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1937년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들을 태운 열차가 처음 출발했던 라즈돌로예역. ⓒ정선아리랑문화재단

정선아리랑문화재단 최종천 이사장은 “아리랑의 이주 경로를 따라 현지에서 전승되는 아리랑에 대한 실태와 분포 현황을 체계적인 정리하는 이 사업은 향후 해외동포 아리랑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활용, 방송콘텐츠의 생산으로 이어지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리랑박물관에서도 보고서 발간을 기념해 오는 9월부터 그동안의 조사 자료를 활용해 ‘아리랑로드’ 특별전을 열게 된다.

이 책을 집필한 진용선 관장은 “아리랑로드를 세계 지도에 표시해가며 다니다보니 아시아를 넘어 중앙아시아, 유럽과 태평양, 미주와 남미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지역으로 뻗어 있고, 실크로드보다 훨씬 더 길고 방대한 ‘아리랑 로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아리랑로드가 실크로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 만의 아리랑을 넘어 ‘세계인’이 즐기는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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