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병원 진단서 끊을 돈도 없어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병원 진단서 끊을 돈도 없어요

[극한직업, 청년 ⑥] 최저임금 만원은 나에게 작은 권리

최저임금 만원과 비정규직 철폐' 목표로 지난 4월 5일 출범한 '만원행동'은 지난 5월부터 6월10일까지 '만원스토리 공모전, 보이는 만원'을 실시했다. 아르바이트생, 현장 실습생 등 직접적으로 최저임금과 관련있는 당사자들이 공모전에 참여했다. 대부분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프레시안>은 이들 중 당선작, 그리고 아쉽게 당선은 되지 못했으나 최종까지 경합을 겨룬 작품을 지면에 싣고자 한다. 최저임금으로 일하고 공부하는 청년들의 사연이 극한직업과 다를 바 없는 한국의 노동현실을 들여다보자.

인후두 역류질환. 이름도 생소한 이 병에 나는 병원도 가지 못하고 앓았다. 기침은 쉴 새 없이 새어나오며 손가락조차 까딱하기 힘들 때도 힘없는 근육을 당겨 기어코 비집고 나왔다. 억지로 물에 밥을 말아 한 숟갈 뜨고 겨우 기력을 차려 간 병원에서는 며칠 동안의 고통을 단지 두 마디로 압축했다.

"약 받으시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오세요."

진료비 4000원. 약값 6000원. 도합 만 원이다.

"학교에 내려고 하는데 진단서 주실 수 있나요?"
"진단서는 2만원인데 몇 장 필요하세요?"

듣자마자 계산이 나왔다. 등록금은 이백만원. 성적 장학금 컷이 저번에 3.5였으니까, 출석점수가 10%고 두 번 빠진 거면….

"혹시 진단서 나중에도 끊을 수 있나요?"
"네 물론이죠. 언제든지 가능하세요."
"그럼 다음에 올게요."

돈이 없는 줄 알면서도 지갑을 펼쳐보았다. 꼬깃한 5000천 원 지폐, 1000원 몇 장, 동전까지 다 세보니 겨우 만 원 남짓. 약을 사지 말까. 그러기엔 숨만 쉬어도 목을 찌르는 통증이 호되게 앓았던 기억을 상기시킨다.

저녁을 먹지 않으면 되겠다. 내일까지는 다이어트 한다는 생각으로 물만 먹으면 되겠지. 장학금은? 중간고사를 두 과목이나 망쳤다. 평균에 겨우 미치는 성적인데 출석점수라도 잘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출석점수가 장학금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지?

저번에 저녁 먹지 말걸. 얼마 전 저녁을 안 먹는 게 버릇이 될 즈음, 참지 못하고 먹어버린 기억이 떠올랐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먹었다. 거기에 더위를 못 참고 마셨던 1000원짜리 음료들을 합치면 2만 원 정도 될 듯싶다.

이런 자잘한 생각의 과정은 항상 고통스럽다. 이제 저녁을 먹지 말자고 다시 결심했다. 저녁 정도는 걸러도 삶에 큰 지장은 없다.

"오래 일할분만 뽑아서요."
"원래 최저보다 낮게 주는 거에요. 우리는 그래도 많이 주는 거라니까요."
"근로계약서 원래 안 써요. 최저는 맞춰서 드립니다."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으면 보일 때마다 해봤다. 직원이 적은 곳은 대타가 없어 번번이 불려나가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학교 갔다가 알바 갔다가, 밤늦은 시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온다. 그러곤 또 오전수업을 듣기 위해 6시에 기상하는 반복된 생활은 고통이었다.

주말에 쉬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주말은 풀타임으로 일했고, 밥조차 근로시간 내내 손님 몰래 한 입씩 주워 먹는 게 다였다. 엄마는 늘 집을 팔아서 시골로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집을 팔면 판 금액을 다 받는 게 아니라 은행에 줘야 한다고 했다. 빚 때문이다. 부모님은 쉬는 날 없이 일하셨다. 때로는 우실 때도 있었다. 이번에 성적을 잘 받지 않으면 장학금을 못 받을 처지였다.

"너 공부하는 거 하나 못시켜주겠니. 공부가 중요하지 알바가 중요한 게 아냐. 공부에 전념하렴."
공부에 전념하는 삶은 생각보다 힘들다.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었다.

"오늘 밥 같이 먹자."

친구들하고 연락을 잘 안하다보니 친구들이 먼저 연락을 해온다.

"오늘은 안 될 것 같고 담에 먹자."

점심은 우유로 때우려했는데 친구랑 먹으면 밥값 사천 원에 카페도 갈 테니 이천 원 추가하면 도합 육천 원 정도다. 그 정도면 점심을 세 번이나 해결할 수 있다.

"오늘 놀 건데 너도 같이 올래?"
갈수 없었다. 과외를 알아봤지만 학점이 좋은 것도, 학교가 그리 유명한 것도 아니어서 번번이 퇴짜 맞기 일쑤였다. 최저시급이 만원이 되면 지금처럼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적은 최저임금으로 마련하기 위해 더 오래 일하지 않아도 될 터다. 최저시급에 관심을 두면서부터 점점 주간수당, 휴식시간 등 아르바이트생이 보장받아야할 권리들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최저시급 만원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그런 관심들이 모이면 그 때는 '열 시간 근무하면서 밥시간도 없어 한 입씩 몰래 먹어야 하는 일이, 근로계약서를 쓰고 싶다니 다른 사람들 돈을 물어내야 한다고 협박당하는 일이, 오랫동안 오직 일만해야 최소한의 삶이라도 살 수 있는' 이런 일들이 개선되고 나아질 것이다.

내가 바란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병원 진단서를 끊을 만큼, 빚 때문에 허덕이는 집에 손을 벌리지 않을 만큼, 점심과 저녁 중 한 끼라도 마음껏 먹을 만큼, 공부에 투자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딱 그 정도 수준의 임금이라도 받기를 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