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총리실, 한나라당 등 당정청이 모두 '콩가루 집안'으로 전락하는 형국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중도파로 분류되는 남경필 의원은 9일 오후 부산에서 열린 당 대표 후보 비전발표회에서 "대통령이 무너지려고 한다. 이건 당이 아니라 나라가 망하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민간인 사찰, 영포라인, 선진국민연대 파문, 비선라인, 이건 친이-친박 문제가 아니라 권력 기반 자체가 무너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 의원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한나라당에선 정두언 의원 쪽과 선진국민연대 출신 의원들이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간혹 화살을 날리긴 하지만 박 원내대표가 이 사태를 기획했다는 주장은 '우린 멍청이들이다'는 바보선언에 다름 아니다.
총리실과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의 지난 주말 독대 이후 청와대 한 핵심관계자를 통해 "정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 이번 주에 마무리 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정 총리는 "인간적인 실망감을 느낀다"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도 화를 냈다고 한다.
8일 임태희 대통령실장 내정 소식이 전해지면서는 오히려 정 총리 유임설이 청와대에 퍼지기 시작했다. 정운찬 총리의 경우 상처를 너무 많이 입어 한참 더 끌고 가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유독 인사 문제에 보수적이고 뜸을 들이는 이 대통령이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인사를 앞두고 이런 저런 정보를 먼저 흘려 '간'을 보는 것은 현 정부 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선 "저 쪽은 이미 끝났다", "그 쪽을 희생양으로 삼아야 전부가 살 수 있다"는 식의 마타도어가 유독 난무한다.
공식일정 없는 9일, 이 대통령은 뭘했을까?
<조선일보>가 8일 예열시킨 선진국민연대 과녁을 <동아일보>가 따라 정조준한 9일 이명박 대통령의 공식 일정은 없었다.
이 대통령은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파문에 대해선 "어설픈 사람들의 권력남용"이라고 규정하면서 "철저 조사"를 지시했을 뿐 최근 국면에 대해선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전임인 노무현 대통령 같았으면 말이라도 속시원하게 했겠지만 두 사람의 스타일은 판이하다.
공식 일정이 없다고 대통령이 놀고 있을 리 만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은 오늘(9일)부터 주말 동안 외부 의견을 폭넓게 청취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이 대통령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는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전당대회가 14일인데 그 전에 우리 인사를 발표해서 김을 뺄 순 없는 것 아니냐"면서 "그 직후 쯤 인사 발표를 하는 게 순리 아니겠냐"고 말했다.
전당대회, 청와대 인사, 내각 인사를 통해 '자리'가 정해지면 이전투구가 그칠까? 쉽지 않을 것 같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내정을 두고도 "SD(이상득 의원) 파워는 여전하네"라며 벌써 입을 삐죽이는 여권 인사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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