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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0원 인생, 할머니 임종도 못지킬정도로 나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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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0원 인생, 할머니 임종도 못지킬정도로 나는 중요했다

[극한직업, 청년 ④] 최소한 지켜내야 할 내 노동과 삶의 가치

'최저임금 만원과 비정규직 철폐' 목표로 지난 4월 5일 출범한 '만원행동'은 지난 5월부터 6월10일까지 '만원스토리 공모전, 보이는 만원'을 실시했다. 아르바이트생, 현장 실습생 등 직접적으로 최저임금과 관련있는 당사자들이 공모전에 참여했다. 대부분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프레시안>은 이들 중 당선작을 선별, 지면에 싣고자 한다. 최저임금으로 일하고 공부하는 청년들의 사연이 극한직업과 다를 바 없는 한국의 노동현실을 들여다보자.

나는 1년 동안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했다. 학교에 다니느라 주말 알바밖에 할 수 없었던 나는 매달 30만 원밖에 벌지 못했다. 돈은 모을 새도 없이 생활비, 교통비, 식비로 다 날아가 버렸다. 월말이면 항상 통장잔고를 확인하며 이번 달은 며칠을 굶어야 하는지 계산했다. 그러면서도 "좀 더 아낄 걸"하는 자책에 빠지곤 했다. 내가 노동을 하면서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좀 더 나은 삶을 살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날을 거듭할수록 잃는 게 더 많아졌다.

나는 최저시급을 받고, 건강을 잃었다. 매장을 쓸고 닦는 일은 내 몫이었고, 사장님은 내게 대걸레를 꼭 손으로 몇 번씩 빨도록 시켰다. 매장에는 그 흔한 걸레 짜는 통도 없었고, 의자도 없었다. 앉을 시간이 있으면 사장은 어떻게든 청소할 구실을 찾아 시켰고, 극도로 숙달된 사람만 소화할 수 있는 업무량을 요구했다. 그러니 그 좁은 매장 안에서도 뛰어다니며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사장님은 매장에 있는 빵 중에 4000원 이하 빵을 하나 골라서 먹게 했다. 주방 구석에서 허겁지겁 빵을 입에 구겨넣고, 손님이 오면 다시 계산대로 튀어나가야 했다. 때로는 손님이 너무 많아 하루 종일 굶으며 일을 하기도 했다.

그 빵집을 그만 둔지 1년이 다 됐지만 아직도 손목과 허리에 통증이 있다. 그 곳에서 일하고 난 뒤부터는 오른쪽 손목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온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도 내 노동의 가치는 고작 6470원이었다. 내가 일한 매장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없이는 운영할 수 없는 곳인데도 나는 사장님에게 밉보이면 언제나 잘릴 수 있는, 그런 6470원짜리 노동자였다.

그리고 그 6470원으로 풍족하게 살지 못한 이유는 내가 더 검소하지 못한 탓이 되곤 한다. 나는 자존감도 잃었다. 행복할 수가 없었다. 또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시간도 잃었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보낼 수 있었던 시간들은 노동시간으로 채워졌다. 집이라는 공간은 잠만 자는 공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아프고, 힘들 게 했던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다. 여느 때처럼 나는 일을 하고 있었고, 갑자기 매장으로 엄마가 찾아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아. 마지막 모습은 봐야하지 않겠니. 같이 병원에 가자."

나는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나도 꼭 할머니 곁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사장님은 보내주지 않았다. 내가 없으면 영업이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때서야 6470원짜리 알바가 가게 문을 열고 닫고를 결정할 중요한 업무라는 말에 분통이 터졌다. 그 와중에 침울해하는 나를 사장님이 CCTV로 보고선 매장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내게 고개를 들고 일하라고 했다.

나는 막 대해도 되는 사람이다가도 돌아가신 할머니 곁에 가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었다. 혼란스러웠다. 결국 나는 일을 다 마치고서야 장례식장에서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를 뵐 수 있었다.

"그냥 뛰쳐나올 걸."

너무 후회가 됐다. 고작 최저시급 받자고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 뒤이어 인턴 처지인 사촌 오빠도 늦게 도착했다. 그도 최저시급만큼만 돈을 받지만 그마저라도 받아야 생존할 수 있기에 일을 해야 했다. 함께 펑펑 울었다.

내 노동의 가치는 곧 삶의 가치로 직결되는데, 최저시급을 정하는 높은 분들은 내가 어떤 삶을 사는지, 그걸 눈곱만큼이라도 알고 이해는 하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정한 최저시급이 6470원인 것을 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저임금을 정한다는 위원회를 보면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최소한이라도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고 싶을 뿐이다. 그 시작은 당장 최저임금 1만 원일 것이다. 나는 1만 원으로 내 노동의 가치를 회복하고 싶다. 자존감도 건강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낼 시간도 되찾고 싶다. 내가 바라는 건 딱 그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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