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면담했을 당시 박 전 대통령이 SK그룹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액수를 직접 확인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최 회장은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뇌물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지난해 2월 16일 청와대 안가에서 이뤄진 면담 상황을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이 독대한 대기업 총수 가운데 법정에서 대면한 이는 최 회장이 처음이다.
최 회장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배석했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SK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얼마를 출연했느냐"고 물었고, 안 수석이 "111억 원을 출연했다"고 답하자 "향후에도 두 재단이 일 많이 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가이드러너'는 좋은 사업인데 작은 기업은 힘들고 SK 같은 대기업이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검사의 질문에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면담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선 안 전 수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설명하며, 이후 고위 임원들과 상의 끝에 '말씀자료'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말씀자료엔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가석방을 청탁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안팎에 산적한 경영 현황 등을 감안할 때 저만의 고군분투로 한계가 있다. 마침 지난 설날에 동생의 형 집행률이 80%를 넘었다. 송구스러우나 동생이 국가에 기여할 수 있게 배려를 호소드린다"는 내용이다.
최 회장은 면담 자리에서도 안부를 묻는 박 전 대통령에게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동생이 아직 못 나와서 제가 조카를 볼 면목이 없다"며 완곡하게 가석방을 청탁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따라서 사면에 관해서 더 말을 꺼낼 수 없었다고 밝혔다. 더욱이 당시는 최 회장 혼외자 논란이 불거진 때였다. 그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가정사로 인해 부정적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의 가석방 문제를 함부로 꺼내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최 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자사 사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밝혔다. 특히 면세점 사업권 문제를 말하자, 박 전 대통령은 "절차상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후 이 부분에 대한 시정 조치는 없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 처음으로 안경을 끼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전 공판 때와는 달리 최 회장의 신문 내용을 꼼꼼히 살피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에는 안경을 끼지 않지만 구치소에서는 끼고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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