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사태에 '아전'을 생각하다
원래 행정사무 업무란 보조적 업무여야 한다. 즉, 사무 및 관리(administer)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함으로써 그 명(名. 이름)과 실(實. 내용)이 부합돼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전반적으로 행정사무 업무가 오히려 상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사법부 법원행정처가 대표적 사례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인사관리와 기획조정 업무를 장악하면서 스스로 법관에 대한 감독기관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렇게 관료 조직 대부분 행정사무 부서가 인사와 예산 그리고 각종 사무분담 업무에 의거해 원래 보조기관이지만 상위에 군림하면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게 된다. 주객전도다. 공공성과 가치와 철학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사무와 규정 그리고 상명하복과 형식주의가 대체했다.
전체 관료사회에 보편화된 이러한 특수 기제는 이른바 "영혼 없는 공무원"을 양산하고 재생산하는 토대로 기능하며, 관료주의의 주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은 이러한 풍토에서 횡행할 수 있었다.
관리 능력의 제한을 목표로 한 '아전 독재'의 관료 역사
조선시대 혹은 중국 역사에서 아전(衙前)이란 사회적 지위가 낮아 일반적으로 멸시를 받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아전들이 실제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큰 것이었다. 이들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었고, 세금을 더 걷을 수도 덜 걷을 수도 있었으며, 어떤 공사든지 중단시킬 수도 있었고 아니면 더 크게 짓도록 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에서 특히 극심했다. 아전들은 지방의 실제 정황에 매우 정통했고 관아의 하부 행정 역시 오직 아전들만이 이해하고 처리해낼 수 있었으므로 지방으로 파견되는 관리들은 전적으로 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각 아문의 각종 조문들도 모두 아전들이 제정했다. 조례의 제정은 대부분 이들의 의지가 조정(朝廷)의 의지로 전화됐고, 지방 관리의 임명은 대개 이부(吏部) 서리가 결정했다. 사실상 실제적인 일체의 사무에 있어 이들 아전들이 전문가였고, 따라서 그 처리는 철저하게 이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명말청초의 대학자인 황종희(黃宗羲)는 이러한 현상을 빗대어 "천하에 아전(吏)의 법만 있고 조정의 법은 없다"고 풍자했다. 사실상 '아전 독재'였다.
중국에서 역사상 황권(皇權)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정책은 중앙에서 각종 방법으로 재상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지방에서는 각종 방식으로 지방장관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은 지방장관의 임기를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지방 정무에 숙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황제는 기꺼이 이들 아전들과 천하를 함께 통치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역사상 이러한 구조 속에서 모든 행정 시스템의 설치와 운용이 관리(官吏) 개인의 능력 발휘를 제한함으로써 효율적인 통치의 도구화에만 그 목표를 두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과연 '아전공화국'을 넘어섰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과연 '아전독재', '아전공화국'을 넘어선 것인가? 가령, 유신과 국보위가 국회를 자신들의 하수인 혹은 거수기로 전락시키기 위해 도모한 국회사무처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시스템은 국회의원에 대한 국회판 "가만히 있으라!"이며, 이는 입법관료의 득세를 동반했다.
관료집단의 무능에 관련해 저명한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렌(Thorstein Veblen)은 '훈련된 무능력(trained incapacity)'라고 했다. 공정과 효율, 합리성을 추구해야 할 관료사회가 제도와 규칙을 준수하도록 훈련받으면서 독선과 형식주의, 무사안일, 책임 전가, 규제만능 등의 병리적 현상을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다른 나라에서 발견하기 어렵고 유독 한국에만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여러 비정상적 시스템 중 관료조직이 예외일 리 없다. 오히려 그 정도가 더욱 심한 편에 속한다.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우리의 공무원 선발제도를 비롯해 전일적인 상명하복 문화의 존재와 오로지 승진만이 지상 목표가 된 조직, 이 구조와 그 구성원들은 블랙리스트며 댓글부대며 4대강 사업 등등 그 어떤 일도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 더구나 이 조직은 체계적인 회계감사 시스템과 사업평가 시스템이 철저히 부실했다.
"영혼 없는 공무원"만 재생산하는 시스템을 바꿔라
공무원 관료 조직은 외부에서의 진입이 철저히 봉쇄돼 있을 뿐 아니라, 그 내부에서도 지금은 5급 공채로 그 이름만 바꾼 고시 출신의 성골을 비롯해 진골 그리고 육두품 등등의 차별과 장벽의 철옹성으로 둘러쳐진 강고한 조직이다. 온전히 그들만의 영토이고 그 영토 안에서 승진을 매개로 하는 상명하복의 문화와 관행으로만 '잘 훈육된' 구성원이 존재하며, 그들이 쌓아올린 그들만의 금자탑이다. 그들이 곧 규칙과 룰(rule)의 제정자다.
명색이 박사인 필자는 근무하는 기관에서 "연구 분야의 직위"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 공직 사회의 현 주소다. 필자를 잘못 뽑았거나 최소한 '인력 낭비'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아픔, 필자도 그 아픔을 앓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래 희망하는 직업 1위는 바로 공무원이다. 정의감 있고 유능한 젊은이들이 해마다 속속 공무원 조직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유별난 관료문화의 '강력한 훈육' 속에서 진입 후 대부분 불과 몇 년 만에 초록동색 유사한 조직 구성원으로 변한다. 나라가 나라답기 위해서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공무원 조직이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비정상적인 "영혼 없는 공무원"을 재생산하는 지금의 시스템을 바꿔내지 않는 한, 블랙리스트는 다시 출현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 사회는 결코 희망으로 내일을 채색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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