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의 길을 걷나 싶었던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기류가 심상치 않다. 청와대와 친이계는 국토해양위에서 부결되더라도 본회의까지 다시 끌어올려 전체 표결에 붙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야당과 친박계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현재로선 세종시 수정안을 본회의에 올려도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나라당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상임위에서 부결돼도 본회의에서 가결된 사례도, 상임위에서 가결돼도 본회의에서 부결된 사례도 다 있다"며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전대 출마 예정자인 친이 이군현이 깃발 들고 나서
애초에 불씨는 청와대에서 피어올랐다. 지난 14일 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국회 표결 처리'를 언급한 직후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은 "포기가 아니라 더 이상 천연(遷延)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는 의미"라면서 "그러나 이전에는 한나라당이 먼저 당론을 결정하고 국회에서 표결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당론의 구속 없이 자유투표로 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었다.
이를 사실상 포기로 간주한 야당은 정부의 법안 철회 요구에서 한 발 물러서 22일 국토해양위에서 세종시 수정법안을 표결처리키로 한나라당과 합의했다.
하지만 친이계인 이군현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7일 "상임위원회는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친이계 의원들은 본회의에서 가결이든 부결이든 심판을 받겠다는 것"이라고 '깃발'을 들었다. 이 수석부대표는 한나라당 전당대회 출마가 유력하다.
이날 청와대 관계자도 "수정안은 국가 백년대계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만큼 누가 찬성했고, 누가 반대했는지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미"라고 힘을 보탰다.
역시 친이계인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18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상임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게 정상적인 절차지만 상임위 가결 사항이 본회의에서 부결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면서 "과거 문광위에서 KBS 결산안을 승인했는데 본회의에서 부결돼 끝내 결산안을 처리하지 못한 적이 있고, 역으로 자이툰 해외 파병안의 경우 국방위에서 부결됐지만 본회의에서 가결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본회의가 반드시 상임위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도 없다"면서 "이 문제는 해당 상임위에서 처리가 끝난 뒤 여야 간에 다시 논의할 사항이다"고 주장했다.
역시 전대 출마를 선언한 정두언 의원도 "역사적인 사안이므로 의원 각각이 입장을 조금씩은 다 남겨야 한다"고 가세했다.
이쯤 되면 청와대와 친이계의 진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울만 한 상황이다. 정운찬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의에 출석해 "절대 포기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 뜻도 나와 마찬가지"라고 강조했었다.
"월드컵 예선 떨어지고 본선에서 뛰게 해달라고"
야당과 친박계는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상임위의 정상적 절차를 통한 표결을 부정하고 본회의 직권상정으로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대화의 정치를 또다시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의 주장은 월드컵 예선에서 떨어진 팀이 본선에서 한번 뛰게 해달라는 주장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는 "16일 협상에서 이 원내수석부대표가 '상임위에서 장렬히 전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도 요구하는 바람에 합의해 준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상임위 처리'라는 여야합의를 재검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친박계 의원들도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일부 친이계 의원도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와 강경 친이계의 본회의 표결 주장이 단순한 '미련'에서 비롯된 것인지, 또다른 노림수에 의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결국 세종시 수정안의 실제 본회의 상정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막 임기를 시작한 박희태 국회의장이 야당은 물론이고 친박계의 반발까지 무릅쓰며 직권상정을 강행하겠느냐는 것. 또 비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무리수를 쓰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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