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패배 이후 여권에 불어닥친 쇄신 바람이 물리적 세대교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생뚱맞은 이야기다"면서 "지금 나온다는 사람들을 보면 청와대 말을 잘 듣는 소위 MB세대"라고 꼬집었다. 당청 일각에서는 '1995년 지방선거 패배 이후 YS의 국정쇄신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전개되는 상황은 그때와 매우 달라 보인다.
정두언 "이재오 선배와 상의했다"
박근혜, 이재오 두 대주주가 전당대회 불출마 선언을 한 가운데 현재 거론되는 한나라당 당권주자는 두 자리 숫자를 훌쩍 뛰어넘는다.
범친이계에선 안상수, 홍준표, 심재철, 정두언, 이군현, 박순자, 전여옥, 이은재 의원 등이, 중도파에선 남경필, 권영세, 나경원 의원이 나설 분위기이고, 친박계에선 서병수, 이성헌, 한선교 의원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초선 쇄신모임 쪽에서도 김성식, 권영진, 정태근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태호 경남지사와 임태희 노동부 장관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이 중에 단연 눈길을 끄는 사람은 '50대 초반-재선-MB직계'인 정두언 의원이다. 정 의원은 16일 <서두원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제가 친이계 핵심인 건 맞지만 친위세력은 절대 아니다"면서 "나는 지금까지 줄곧 현 정부에 대해서 할 말을 해온 사람으로, 그래서 한동안 험난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염려는 나한테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 전대 출마는) 이재오 전 대표 뿐만 아니라 많은 선배들과 상의를 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정 의원 뿐 아니라 청와대 일부 참모들도 '세대교체' 바람을 타고 '영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이한구 의원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청와대의 세대교체 언급이 있은 뒤에 정두언 의원이나 이런 측근세력들이 출마하겠다고 나서고 하는 환경을 보면서 선거패배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도 별로 안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정 의원은 지방선거기획위원장으로 전교조 공격 등을 주도하며 스피커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의원은 '쓴소리 담당이었다'는 정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도 "특히 정두언 의원의 경우는 지금 우리가 심판 받고 있었다고 보는 4대강 문제나 세종시나 또는 미디어법 등에 대해서 정부에 쓴소리를 한 적은 없잖나"라며 "친이-친박 간에 불협 문제가 자꾸 대두될 때마저 자주 언급이 됐던 속칭 강경파에 속하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에 아마 외부에서 신경을 쓸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1996년 YS발 인적쇄신과 껍데기만 닮았다?
이 의원은 '1995년 지방선거 패배->국정쇄신->1996년 총선 승리'와 현 상황의 유사성을 주장하는 논리에 대해 "그때는 세대교체라기보다는 인적쇄신이었다"며 "당시에 민정계가 대폭 정리가 됐다. 그러니까 그 이전부터 몇십년 간 집권하던 세력들이 많이 물러나고 대신에 민주운동하던 사람, 또는 외부전문가들, 비정치권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당에 진입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새로운 평가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집권 초 금융실명제, 하나회 숙청 등의 개혁 드라이브로 인기가 높았던 문민정부는 3년차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최형우, 김덕룡, 서석재 등 측근을 전면배치해 민자당 내에서 민정계 색깔을 확 빼고 당명도 신한국당으로 바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과 마찰 끝에 총리직에서 경질한 이회창까지 신한국당으로 끌어들였다. 이재오, 김문수 같은 '민중계', '모래시계 검사'로 성가를 높이던 홍준표, 판사출신 여성 대변인의 원조격인 김영선 등이 이때 신한국당에 수혈된 인사들이다.
하지만 현재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한나라당 당권 주자들은 이한구 의원 지적대로 'MB세대'들이 많다. '15년 전'의 이회창, 이재오, 홍준표 같이 신선한 인물들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한나라당 선거 참패 원인이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로 꼽히는 마당에 이같은 물리적 세대교체론은 분칠에 불과하다. 외려 '신MB친위그룹'을 형성할 만한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약진한 야권 차차기 주자군들은 재정혁신(송영길), 분권(안희정), 지역주의 혁파(김두관) 등 확실한 트레이드 마크가 있었지만 한나라당 차세대들을 '물리적 젊음' 말고는 별달리 내세울 것이 없어 보인다.
어쨌든 청와대발 '세대교체론'은 여권의 쇄신바람을 가리면서 시야를 전당대회 쪽으로 돌리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한구 의원은 "지금 나오는 사람이 청와대 말 잘 듣는 MB세대로 주로 나타나면 국민들 눈에 편견이나 오만, 또는 눈속임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 인사들은 "나라가 걱정이지만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안상수, 정두언, 이동관 같은 사람들이 계속 잘 나가는 게 우리한텐 유리하다"는 관전평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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