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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신성하다고? 아이들이 그렇게 느낄까?

<전태일통신 9> 일하며 공부하는 아이들

일직이어서 9시에 학교에 나왔다. 오늘은 공동체 프로그램으로 미취업 학생들이 도당공원에 가는 날이다. 공동체프로그램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는 아이들에게 생활습관을 만들어 주고 밥이라도 제때 먹이기 위해 오전 9시부터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다. 맨손체조를 시작으로 축구, 공원 방문, 공예교실, 노래교실, 요가, 미디어교실 , 도자기 만들기 등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식당에서 김밥을 준비해 아이들이 박창일 선생님과 도당공원으로 출발하는 것을 보고 한숨 돌리고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학교에 식당이라도 있어서 밥이라도 먹을 수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1교시가 끝나면 우루루 나가 빵 조각을 물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여간 속이 상하는 게 아니었다. 먹어 본 놈이 먹을 줄도 안다고.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 제때 제대로 밥을 챙겨먹은 아이들이 아니어서 소화불량도 많고 배탈도 많고 편식도 심한 편이다. 고기가 나오는 날이면 사죽을 못 쓰고 김치는 아예 못 먹는 아이들도 있다. 고기를 급하게 먹고는 손 따달라고 하니….

***일하며 공부하며…어려서부터 '비좁은 길'을 걷는 아이들**

우리 부천실업고등학교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야간 실업고등학교다.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에서 밀려나고 가정에서도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일하며 사회생활을 익히고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고자 시작한 학교다. 살아오면서 어디서도 존중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이다.

양친이 다 계신 경우는 극히 드물고 부모의 이혼과 재혼 등의 상황 속에서 중학교까지는 그런대로 버티다 고등학교 때 이쪽으로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보육원을 통해서 오는 아이들도 있고 외할머니나 친지와 함께 오는 경우도 있다. 중3을 막 졸업하고 오는 아이들도 있고 일반학교에 진학했다가 여러 가지 이유(공부가 싫어서, 친구들의 폭력으로, 왕따로, 선생님과 싸우고, 사고 쳐서, 친구랑 놀다가 등등)로 중도에 탈락하고 1~2년 정도 편의점, 주유소, 피씨방, 단란주점, 커피숍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래도 가방 끈이 너무 짧아 고등학교는 다녀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는 아이들이다.

유흥업소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다가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우선 규칙적인 주간 생활에 적응하는 일부터 사실 쉬운 게 아니다. 야간생활이 몸에 익어 있고 술에 익숙한 아이들이라 아침에 일어나 제 시간에 출근하는 일을 매일 반복한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다. 거기다 쓰던 씀씀이가 있어 공장 월급으로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쉽고 편하게 돈 버는 것부터 배우고 향락적 소비문화에 젖어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노동, 건강한 생활을 가르친다는 건 아마 계란에 바위치기가 아닐까 하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우리학교는 반드시 일하면서 다녀야 하는 학교다. 어영부영 야간에 학교만 다니는 게 아니라 어린 나이지만 사회생활을 익히고 자신을 단련시켜 가길 바라며 취업 선생님이 발로 뛰며 열심히 취업을 시킨다. 1학년 때는 처음 일하는 아이들이 많아 주로 적응하기 쉽고 위험하지 않은 곳에 보내려 애쓴다. 미리 가보고 이력서를 써서 아이를 직접 데리고 가 면접을 통해 입사 여부를 결정한다. 물론 처음이라 아이들의 의사는 별로 없기 마련. 선생님이 조건을 맞춰 보고 출근을 결정하게 된다. 1학년 때는 '몸만들기' 과정이다. 제 시간에 일어나서 지루하지만 매일매일 같은 일을 해야 하고 여러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경험적으로 볼 때 처음 세 달이 제일 힘든 기간인 것 같다.

***'노동의 신성함'과 '부정직한 사회구조', 일하는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힘든 과정을 버텨 살아남은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당연히 월급날이다. 적은 액수지만 아이들은 첫 월급을 받고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데 대견해하고 뿌듯해 한다.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 지루함을 이겨내기가 무척 힘들다. 적은 돈을 받아 유흥비나 핸드폰 비용 등에 충당하다 보면 돈은 어느새 다 날아가 버리고 만다. 아이들 돈 관리는 생활관리와 직결된다. 월급날 60만 원 받아 일주일 만에 다 날리고 나타나는 아이들도 있고 월급 받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싹 빼 입고는 학교가 끝날 때쯤 나타나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에게 월급관리는 아주 중요한 업무다. 매달 월급날 선생님이 회사로 가서 월급을 받아 오는 경우도 있고 월급날 봉투를 가져오는 착한(?) 아이들의 경우 선생님이 적금도 들어주고 용돈도 주며 관리해 주게 된다. 이쯤 되면 선생님들의 일이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어릴 때부터 계획해서 돈을 쓰고 생활하는 것을 익히지 못하고 없이 지낸지라 돈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아이들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취업지도에서 또 어려운 점은 우리 아이들이 취업하는 회사 대부분이 불안정한 경영과 열악한 산업구조 속에 있는 영세한 업체라는 것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심정이 다르다고, 급하고 아쉬워 일을 시킬 때는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며 돌봐주는 척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일이 없으면 일차적으로 정리하거나 쉬게 하는 대상은 우리 아이들이다. 월급도 안 쳐주고 며칠 쉬었다가 나오라는 말로 며칠 쉬게 하다가 다시 부르는 경우도 있고 아예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이래저래 또 얼마동안을 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정리되는 경우 또는 본인의 의사로 그만두게 되는 경우 문제는 월급이다. 그만두고 몇 달이 지나도 월급을 못 받아 애를 먹다가 급기야는 우리 아이들이 욕을 하거나 성질을 내게 되고 회사 쪽에서는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만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또 이 사회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이고 안 좋은 생각을 갖게 된다. 학교 다니는 학생인 줄 알면서도 학교 가지 말고 잔업 하라는 얘기도 하고 그런 학교 뭐 하러 다니냐며 기를 죽이기도 한다. 학교 그만 두고 일이나 하라는 관리자들도 있다.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경험하는 사회에서 따뜻함과 희망을 배우기보다는 지킬 것도 제대로 안 지키는 부정한 사회에서 이기적인 자기를 키워가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요즘 우리학교의 관심은 한 회사의 부도다. 7,8명 정도의 우리학교 학생이 근무하는 핸드폰업체가 얼마 전 부도가 나서 문을 닫고 사장이 잠적한 상태다. 젊은 사장이 납품업체 하나만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 그쪽이 막히면서 연쇄부도를 맞은 것이다. 당장 아파트 관리비도 못 내고 차비도 없다며 아이들은 난리가 아니다. 전화도 불통이고 찾아가 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단다. 우리나라의 취약한 기업경영과 산업구조의 피해는 고스란히 하청의 재하청업체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에게 떠안겨진 셈이다. 얼른 노동부에 신고하고 쫒아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맘 잡고 일하려던 아이들은 얼른 다른 데 취업시켜달라고 취업선생님을 조르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다. 졸업한 이후까지 문제가 되어서 노동사무소에 신고를 해서 겨우 월급을 받아낸 적도 있다. 회사가 부도가 나거나 사장이 아예 잠적해 버려 지금까지 못 받은 경우도 있다. 아예 회사가 없어져 노동부에 신고도 제대로 못 해보고 정당하게 일한 대가도 못 받은 채 절망감만 남게 되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을 위로해 줄 말이 별로 없다.

***"일하는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교사에겐 활력소"**

우리 학교는 올해로 16년이 되었다. 1회 졸업생 중에 밀링만 20년 가까이 한 졸업생이 있다. 학교 다닐 때부터 기름밥을 먹고 지금껏 기계 일만 고집하는 아이, 아니 이제 삼십 중반을 바라보는 아저씨다. 장가도 아직 못 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보통 잔업이 없다는 수요일, 토요일까지 잔업해서 한 달 꼬박 일하고 받는 돈이 200만 원 정도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돈 관리에 어려움이 있어 요즘은 학교 교감선생님께 월급날 돈을 들고 온다. 100만 원에서 150만 원까지 그때그때 알아서 적금을 붓고 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공장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번 달 10일에도 월급을 받고 나오려는데 철야를 하게 되어서 보통 짜증이 난 게 아니다. 이 날이 하필 생일이었나 보다. 그 다음 날도 잔업까지 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시커먼 공장을 나와 돈을 들고 왔다고 한다. 잔업 없이 일찍 나오는 날이면 햇살이 그렇게 낯설고 좋을 수가 없단다. 그는 공주에서 담임선생님의 소개로 우리 학교에 왔다. 3학년 때 내가 담임을 했던 학생인 데 일찍 술이 몸에 익어 술 먹고 교무실에서 잠이 든 경우도 있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시커먼 공장에서 시커먼 작업복에 시커먼 얼굴로 걸어 나오던 모습이 생생하다.

교사인 내게는 학교생활이 힘들 때 공장에 가서 아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큰 활력소는 없다. 그도 내가 많이 찾아 갔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3시경 휴식시간에 가면 빵을 한 손에 들고 걸어 나와 삐죽삐죽 거리며 "왜 왔어요?" 하며 퉁명을 부리던 녀석이다. 별 다른 말은 필요 없다. 몇 시간 후 교실에서 만났을 때 우리는 오늘을 함께 한 듯한 공감을 갖게 된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쌓여감을 느낀다. 거의 쉬는 기간 없이 일을 했지만 사는 데 쓰느라 집에 보태느라 어영부영 돈 날리고 결국 모아 놓은 돈이 없는 것이다. 정말 맨 몸뚱아리 하나 믿고 이 세상에서 노동자로 살면서 돈을 모을 수 있기나 한 것일까?

혹자는 10%가 전 국민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하면 아마 욕먹을 것이다. 육체노동자가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 내 아들이 배관공임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교수 얘기가 자연스러운 사회, 공부 못하면 공장이나 간다는 폭력적 언사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사회, 공장에서 기계일 하는 아저씨 중에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자신감 있게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아저씨들이 많은 사회, 기름밥 20년 된 우리 졸업생이 자식에게 아버지 직업을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사회, 법보다 사회의 보편적 정의나 가치가 따뜻함과 평등, 평화를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 될 때 우리 아이들은, 아니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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