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지난 주말 여러 언론이 같이 보도한 것 한 가지(☞관련 기사 : 치매환자 2024년에 100만명…文대통령 치매센터 250개 약속).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치매 국가책임제'를 재차 언급하고 이달 말까지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국가 차원의 치매 종합대책이 곧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세곡동 서울요양원을 방문해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 "치매 관련 본인 건강보험 부담률을 10% 이내로 확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
모든 치매 환자가 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등급제를 확대하고, 현재 47개에 불과한 치매지원센터를 250개 정도로 대폭 늘리겠다고 문 대통령은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또 치매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과 방문 서비스 강화, 치매 관련 예산 2000억 원 추경 반영 등도 약속했다.
치매 환자에 대한 국가 관리가 강화될 모양이다. 공약에 포함된 내용을 대통령이 취임 후 다시 강조하고 현장까지 방문했다. 이만하면 정책 의지를 충분히 표현한 셈이니, 정부와 공무원이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는 치매 환자를 더 잘 관리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인다는 방향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재정이나 서비스에 국가가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다. 치매 환자는 이미 70만 명이 넘었고, 노인이 늘어날수록 환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치매는 가족의 돌봄 부담이라는 면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는데, 실재하는 것이든 상징이든 지금 한국에 사는 개인과 사회가 부담을 느끼는 질병으로 치매에 비길 만한 것은 찾기 어렵다. 치매 돌봄의 사회화와 국가 책임을 요구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제 공약 단계를 지나 실행으로 접어들었으므로, 우리는 '총론 찬성'을 넘어 몇 가지 걱정거리를 보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떤 정책도 객관적 평가와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가장 큰 고민은 치매만으로 '국가 책임'이 충분한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치매 환자에 대한 돌봄 필요가 크고 또 부담스러운 것은 누구나 안다. '치매 국가책임제'가 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 그래서 정치적 동력이 충분한 것은 오로지 이런 기반이 있어서다.
문제는 정책의 성격. 치매처럼 콕 찍어서 어떤 질병이나 상태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에는 분명 유리한 점이 있다.
'범주별' 또는 '질환별'로 대상을 정하는 정책이나 사업을 흔히 '수직적' 프로그램이라 하는데, 그 정책의 필요성이나 어떻게 하겠다는 방법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결핵 관리, 에이즈 치료, 임산부 복지, 노인 주치의,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 등이 모두 이런 정책이나 프로그램에 속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왜 그것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설득하기가 쉽다.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성과를 달성했는지, 평가하는 것도 쉬운 편이다. '치매 국가책임제'는 이런 점에서 전형적인 수직적 프로그램이라 해야 한다.
당장 문제는 치매 이외에도 돌봄 부담이 큰 장애와 상태, 질병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발달 장애인. 2011년 서울시복지재단이 펴낸 <서울시 중장년 발달장애인가족 복지욕구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발달장애인 돌봄 기간은 평균 34.4년이며, 47.7%의 응답자가 하루 평균 돌봄 시간이 9시간 이상이라고 응답했다(☞바로 가기). 치매에 비해 돌봄 부담이 가볍다 할 수 없다.
범위를 조금만 넓히면 돌봄 부담은 사실상 보편적 현상이다. 쉽게 생각나는 것은 몸이 불편한 노인이지만, 다른 장애인이나 기능 제한, 질병도 많다. 특성과 필요한 지원, 정책은 달라도 영유아에 대한 돌봄 또한 여러 측면에서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서로 '경쟁'해야 하면, 쓸 수 있는 돈과 자원이 정해져 있다는 '자원 한정론'이 벌써 걱정이다. 다른 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어떻게 될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우선순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다른 영역의 자원이 줄어들거나 더디게 증가하는 것. 벌써 그런 걱정을 하는 분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치매 따로 다른 장기요양 따로, 질병이나 상태에 따라 기관이나 인력이 달라지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치매 '전문' 병원이 더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다고 보장하지 못한다. 아주 적은 수의 전문 병원과 전문 인력은 필요할 수 있지만, 그저 환자 종류로만 구분한 전문시설은 비효율과 질 저하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정신병원'이나 '정신요양원'을 보라).
공약이었고 이제 아젠다가 되었으니 '치매 국가책임제'에서 출발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로 지켜야 할 것은 거기까지다. 유리한 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에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돌봄 대상을 범주로 나누지 말고 '수평화'해야 한다.
여기서 수평화란 질병의 종류나 범주(치매, 중풍, 발달장애, 지체장애, 노인의 일상생활 제한 등)로 가르는 것이 아닌, 얼마나 장애가 심한가 또는 얼마나 돌봄이 필요한가로 국가 책임을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돌봄에 대하여 높은 부담을 사회화하는 '고부담 돌봄의 국가책임제'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걱정한 것보다는 사소하고 내부적이지만, 치매 관리의 정책적, 기술적 측면도 불안한 구석이 많다. 특히 중요한 한 가지는 치매 관리가 환자의 시설 수용으로 치우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치매를 앓더라도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고 가족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돌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여건과 사정 때문에 이런 '지역사회 치매관리'는 흔히 탁상공론으로 끝난다는 것이 문제다.
시설과 인력이 있는가, 가까이에 돌볼 가족이나 이웃이 있는가, 이도 저도 어려우면 가벼운 환자도 시설로 가기 쉽다. 대통령과 정부가 '맞춤형 서비스' '치매지원센터' '방문서비스 강화' 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겠지만, 인프라와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려운 과제다.
시설 위주의 치매 관리를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단지 국가의 재정 부담을 걱정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생애 마지막까지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생활하면서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누구에게나 허용되고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자 인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취임 초기 목표를 분명히 하고 현장을 방문했다는 데에서, 우리는 치매 국가책임제가 단순한 프로그램이나 정책이 아니라 정치임을 확인한다. 높은 지지가 이 정책을 뒤에서 받치고 있으니,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치적으로 '기회의 창'이 열린 것도 사실이다.
정치의 수준이 어떻든 모든 정치적 정책은 공무원의 손에만 맡겨둘 수 없다. '국가책임제'라는 프레임이 작동하지만, 정치적 기회가 치매 관리에 대한 국가 재정 확보로 끝나서도 안 된다. 정책 목표와 수단, 참여자와 상호작용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치매 국가책임제'를 넘어 기회의 창을 더 넓게 열어야 한다. 치매를 비롯한 돌봄 부담 전반의 사회화와 국가 책임 강화, 그리고 권리에 기초한 돌봄의 질 향상으로 확대하고 심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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