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발전소,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프레시안의 공동주관으로 신정부 출범을 맞아 "새 정부,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기획은 정권인수, 신정부 출범의 조건, 외교안보, 행정, 협치, 복지, 노동, 개헌문제 및 선거제도 등 신정부가 직면해야 될 다양한 과제와 조건에 대해 분야별로 총 10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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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가 출범한 지 2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국정지지율 80%의 여론조사는 신정부가 정권 초기 추진하고 있는 각종 개혁 조치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기대감과 지지를 반영한다.
신정부가 지난 2주간 제기한 주요 의제들은 이미 시민적 합의가 폭넓게 형성된 쟁점들이다.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찾아가 발표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그리고 이 정부의 가장 큰 과제로 설정된 '일자리 창출 및 일자리위원회 설치'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여러모로 신정부가 정권 초기 주요한 의제를 설정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정부의 국정운영 기조가 '일자리' 문제에 맞춰지는 과정에서 노동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자리 문제가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노동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신정부의 일자리위원회 운영계획 등에는 지난 10년간 무너졌던 노사관계를 복원하거나 여전히 OECD 최하위인 노동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고민은 담겨있지 않다.
일자리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 역할과 위상과 관련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주지하다시피 노동시장의 양극화 문제는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노동자들 사이의 차별과 갈등을 낳았다.
신정부가 새로운 국가운영의 패러다임을 열어내고 '새 시대의 첫차'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수직적인 경제성장 목표에 집착하기보다 경제발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경제발전이란 단순히 경제지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 통합과 삶의 질 문제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면 노동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공안 문제를 넘지 못한 노사관계
지난 10여년, 아니 길게 보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부터 정부는 노동 문제를 갈등관리의 측면으로만 다루어왔다. 1987년 민주화 이전의 정부가 노동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주로 국가가 주도하여 갈등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기업별 노동조합들이 정부의 하위 파트너로서 노동운동을 조직하였는데, 이 시기 노동조합은 '선 성장 후 분배'의 걸림돌로만 인식되었다.
정부 역시 노사관계란 곧 공안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압도적이었다. 이런 시각에 따라 사용자들 역시 국가 공권력에 의존하여 노동자를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인 인사관리의 대상으로 취급했다.
변화는 민주화 이후에 나타났다. 87년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운동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으나 90년대 후반부로 갈수록 정체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시기 노동운동은 기업별 노조를 통한 조직화, 교섭을 통한 분배 확충 등 노동권 확대의 선구자 역할을 했지만, 아직 산별노조로 발전하기 위한 전망이나 전략은 결여되어 있었다. 반면 이 시기 사용자측은 체계적 인사 노무관리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신속하게 성과주의를 도입했다.
1997년 김영삼 정부 말기에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제가 입법화되고, 1998년 외환위기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도입되면서 시장에서 사용자의 입지는 한층 강화된 반면, 각종 법제도적 한계로 인해 노동조합의 교섭력은 제한되었다. 노동운동은 기업의 경계를 넘어선 연대에서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기업단위의 협소한 입금인상과 복지 확충에 주력하면서 비정규직의 증가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양극화에 대한 대응에 실패하였다.
2000년대 이후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노사관계를 풀어나가려 했으나 주로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노동시장 정책의 절차적 합의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밖에 활용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정부의 노사관계 정책은 이전 시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사정위원회'의 한계와 개혁방향
'노사정위원회'가 표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태도이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생산자집단이 참여하는 정치의 중심 문제로 바라보기 보다는 정부 주도로 노사 문제를 다루는 수단으로 취급했다.
운영에 있어서도 노동계와 경영계가 타협점을 찾도록 유도하기보다 정부가 직접 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가 되더라도 정작 그 합의사항을 지키려는 당사자가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는 자연스레 그 대표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노사정위원회는 근본적으로 노동계와 경영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구성원이 되어 노사간의 쟁점을 책임 있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노사정위원회에는 대표 단체의 강력한 통제력을 찾아볼 수 없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사안에 대해서도 현장에서 수용을 하고 따라야 하는데, 대표성이나 통제성이 결여된다면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의 수평적 확장과 수직적 확장이 모두 필요하다.
수평적 확장은 현재의 노동조합 조직률의 한계를 인정하고, 노사정대화기구에 참여할 수 있는 대표기구의 범위를 확대하는 노력이다. 기존의 양대노총만이 아닌 더 다양해진 노동 영역을 대표하는 단체의 이해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경영계의 경우에도 중소기업이나 협력업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자를 선정하여, 다양한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여 줄 필요가 있다.
수직적 확장의 경우, 중앙뿐만 아니라 지역별, 산별 수준의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여 하위수준에서 협의 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노사가 충분한 자율성을 가지며 협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의료, 운수, 교통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노사정 협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 역시 새롭게 설정되어야 한다. 먼저, 노사간 자율성을 보장하되 힘의 균형이 무너진 영역에 대한 일관성 있는 정부의 조율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 그 자체이며 노동조합조차 제대로 조직되지 못한 많은 영역(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을 제도 밖에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편 대규모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경우, 정당한 파업에 대해 공권력을 투입하는 등의 지나친 정부 개입을 하지 않는 원칙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사항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정치적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나 국무총리가 직접 노사정협의체의 장을 맡음으로써 의결사항이 국회와 행정부에서 반드시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과 업종별 노사정 위원회의 활성화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및 유관 부처의 긴밀한 연대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이미 서울시의 경우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 수준에서 '서울형 노사정협의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모델협의회'라고 불리는 서울시 산하 공공부문 노사정협의체의 경우, 이미 집단교섭 및 사적조정 등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으며, 노동시간 단축 및 청년일자리 확대를 노사정이 합의하는 성과를 냈다. 중앙정부 차원의 노사정위원회가 여러 가지 정치적 조건으로 인해 당장에 큰 성과를 내기 힘들다면 지방정부 산하 공공부문 노사관계부터 노사정 협치의 모델을 활성화 시키는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참고> 서울시 노사정 협치 모델
- 서울시는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노사관계의 일상적인 갈등조정과 집단교섭에서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음. - 특히 2015년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하여 첨예한 노사갈등 해소를 위해 서울시 최초의 노사정 사회적협약인 <일자리창출을 위한 노사정 서울협약>을 체결, 이행점검 TF를 구성·운영 - 서울시 산하 투자기관 성과연봉제의 도입과 관련 집단교섭 및 사적조정을 통하여 노사정 강등해소 및 노사관계의 발전에 기여함. -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 행자부의 지방공기업 '성과연봉제 확대'계획의 발표에 따라 정부의 정책에 따라야하는 사용자측 입장과 성과에 따른 기본연봉 인상률의 차등을 반대하는 노동자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됨 - 서울시는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를 통해 노사 감담회를 진행(7.29)하였고,「일자리창출을 위한 노사정 서울협약」을 준수하기 위해 성과연봉제 도입시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결정 등을 통해 일방 도입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교섭을 진행함 - 이 후 서울시 투자기관 성과연봉제 관련 집단교섭 노사합의가 이루어짐 - 이러한 합의는 1)서울시 투자출연기관 최초의 집단교섭 사례로 2)노사합의에 의해 성과연봉제 도입의 원칙을 확립하였다는 성과 3)퇴출제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를 노사합의에 의한 임금체계 개편으로 연결 4)직접교섭의 실현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집단교섭으로 공동과제를 노사합의로 처리 5)사적조정제도 도입으로 노사자율교섭의 분위기를 창출하였다는 성과와 의의가 있음 |
공공부문, 지방정부 차원에서 노사정협의의 성공을 통해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이 신뢰를 쌓아가고, 민간기업의 노동자와 경영계가 노사정협의의 성과를 신뢰할 수준이 되었을 때, 정부는 진정한 의미의 노사정협의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방향성 : 노사정 협치를 위한 신정부의 기조
가장 중요한 기조는 노사관계가 더 이상 공안문제나 경제에 부담이 되어 관리해야 하는 갈등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사회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오히려 노동자들의 요구는 사회 통합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의 요구는 일-가정 양립을 위한 필요조건이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일자리에 대한 요구는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열린 시야가 필요하다.
박태주 박사에 따르면 한국경제를 장기침체의 늪으로 끌어넣는 핵심적인 요소는 성장둔화에 따른 투자부진, 소득격차에 따른 소비의 부진, 대내외 환경 변화에 따른 수출 부진으로 말해지는 수요의 부진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수요의 문제를 해소 할 수 있는 방법은 복지와 임금을 통한 소득의 보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분배는 내수경제를 활성화시켜 국가 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며 선순환적인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사회적으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중에서 임금상승을 통한 분배는 복지를 통한 분배보다 시민들에게 더 즉각적인 효능감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노사정간 긴밀한 협력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제 노동은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동원되어야 할 타자가 아닌 이 사회의 주권자 중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줄여야할 비용으로 취급받던 노동, 재벌구조에서 소외되던 노동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인정받을 때, 국가의 사회통합이 이루어 질 것이며, 나아가 사회적 공동체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신정부는 새로운 노-사 관계의 디자이너로서 사회의 핵심 구성원인 노동을 협상의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이는 노동자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다는 의미가 아닌, 노동계와 경영계가 공정한 테이블위에서 협의하고, 각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물리적, 정책적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합의에 한발 더 다가 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이를 신정부의 안정적인 통치기반으로 전환시키는 적극적인 전략을 기대해 본다.
※ 이 기획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분권과 협치의 대한민국 국가 운영 모델 연구"의 일환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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