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께서 구속되어 법정 서는 모습은 불행한 역사의 한 장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법 절차의 영역에서 심판이 이루어져 법치주의 확립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 실체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이원석 부장검사)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서는 불행한 역사가 재현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피고인' 신분으로 처음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구속 53일 만이자 지난 1996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12·12 사태 및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돼 나란히 섰던 바로 그 417호 법정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의 첫 정식 재판에 출석했다.
삼성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 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함께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았다. 플라스틱 집게 핀으로 '올림머리'를 하고 수의 대신 남색 정장 차림을 한 채였다.
이날 재판부와 검찰 측 모두 박 전 대통령을 '피고인'이라고 지칭했다. 검찰은 그러나 모두진술에서 간간이 '전직 대통령'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8개 혐의를 간략하게 설명한 뒤, "박근혜 피고인이 최순실과 공모해 직권을 남용하거나 재벌과 유착해 위법행위한 사실을 규명하려 한다"며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역사적 중요성을 절감해 헌법 형사소송법 법령 정한 절차에 따라 예단을 배제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증거에만 입각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본격적인 심문에 앞서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 신문'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직업이 어떻게 됩니까"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무직입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주소는 "강남구 삼성동 42-6번지"라고 답했으며, "생년월일이 1952년 2월 2일생이 맞습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짧은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동안 박 전 대통령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반면 그의 40년 지기였던 최 씨는 인정신문 내내 울먹였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와 가끔 귓속말을 할 뿐 최 씨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