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선 노회찬, 심상정 두 사람의 지지율도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무상급식을 필두로 한 '복지 경쟁'은 반갑지만 선거 국면에서 진보신당의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게 쉽지 않다.
노회찬 대표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5+4' 철수 이후의 상황에 대한 고민과 함께 향후 대응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다. 노 대표는 '2등과 3등의 지지율 합이 1등을 넘기는 경우'에는 "단일화를 포함한 선거연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상식과 양식에서 벗어났던 적이 없다. 단일화를 봉쇄했던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진보신당의 철수와 민주당의 내홍 등으로 인해 5+4 협상의 미래는 알 수 없다. 4월 9일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1심 선고 이후에는 또 다른 장이 열릴수도 있다. 한 전 총리 측 관계자는 "노 대표와 어떤 식으로든 (단일화) 프로세스를 거쳐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노 대표는 '지방선거 이후'에 대해서도 야권 연대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수천개의 작은 선거가 엮여있는 지방선거 연대가 가장 어렵고 국회의원 선거가 그 다음"이라면서 "후보가 한 자리인 대선이 가장 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길은 아니다. 독자노선을 강화할 경우 '좌편향적이다'는 비난을, 야권연대에 방점을 찍을 경우 '우경화됐다'는 비난을 받은 게 진보정당의 선거 역사였다. 당 대표직과 서울시장 후보라는 무거운 짐 두 개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그는 "지금 가장 험한 지형을 통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진보정당을 시작했던 그 원점으로 돌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힘을 주었다.
그는 2012년, 정확히 말해 총선 직전을 티핑 포인트로 내다봤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토목세력' 대 '복지세력'의 전면적 재편을 위한 진보대연합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 내지 기대다. 가능할까? 아마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 단초가 엿보일 것 같다.
다음은 19일 오전 진보신당 당사에서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 진보신당은 최근 창당 2주년을 맞았다ⓒ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5+4' 철수를 선언했는데.
노회찬 : '5+4(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2010연대, 민주통합시민행동, 시민주권모임, 희망과 대안)'가 (진보신당이 빠져) '4+4'로 됐는데, 그것마저 불투명한 상황까지 오고 있지만, 설사 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민들에게 감동적으로 비쳐졌을까?
나는 단일화라는 목표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까진 아니지만 협상테이블의 사람들이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1대1 단일화 안 하면 다 진다'고 판단해서 대응하더라도 메시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구조조정'을 통해 돌파하겠다는 것은 문제다. 구멍 하나만 뚫어놓고 수압을 높여서 돌파한다는 것인데, 구멍 하나 뚫어놓으면 다 이기는 것인가, 그런 의문이 있다.
프레시안 : '묻지마 연대', '무조건 반MB' 성격이 짙다는 얘기들이 처음부터 당 내에서 있었다. 모르고 들어간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애초부터 안 들어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노회찬 :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애초 우리는 득표상 큰 이점이 없다고 해도 미래를 위해 이번 선거에 전면적으로 같이 한다는 '진보대연합'의 길을 제시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아무것도 안할 거냐? 그것은 아니다. 명분이 있고 대중적 요구가 강한 경우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5+4'는 선거구 한 두 개 단일화 하는 게 아니라 전국을 통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초유의 실험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판단은 했지만, 대중적 요구가 있었고, 들어가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다. '아예 안 들어갔어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올바르지 않다.
프레시안 : '5+4 테이블'에서 이해찬 전 총리가 공동대표인 시민주권모임 같은 곳은 시민단체로 보기 어렵다. 애초에 친민주당적일 수밖에 없는 구성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느꼈나.
노회찬 : 시민단체로 보기 힘든 곳이 있는데,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잠정합의안이 나온 것은 그 쪽 때문은 아니다. 그 쪽이 없었어도 이런 식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용인하거나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서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효용이 있을 경우, 단일화는 적극 검토"
프레시안 :'철수' 이후에도 노 대표는 '통합적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4+4'에서도 진보신당이 빠지면 의미가 반감되기 때문에 기다린다는 자세다. 다시 단일화 논의를 시작하려면 어떤 모델이 되야 하나?
노회찬 : 지금 당장 경선을 어떻게 하고 이런 모델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민주당 등과 관련해서는 대의명분이 강하고 대중적 요구가 강한 선거에 대해서는 전술적 판단에 따라 다양한 선거 연합을 할 수 있다고 이미 입장을 세웠다. 지역 차원의 합의로 진행되는 선거 공조에 대해서는 중앙당에서 인정하고 있다.
프레시안 : 지역, 특히 영남권 같은 경우 협상이 잘될 가능성이 높지만, 역시 수도권이 문제다. 끝까지 간다면 마지막에는 결국 '각자 후보로 심판받자'가 되는 것 아닌가.
▲ '해서 이긴다면'을 단일화의 단서로 달고 있는 노회찬 대표ⓒ프레시안(최형락) |
반대로 단일화를 해도 승리할 수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단일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될지 안 될지는 좀 더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 후보가 어떻게 정해지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단일화를 안 하면 정말 안 된다는 그런 상황이 되면 충분히 (단일화를) 받아들이면서 개방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우리는 여태까지 상식과 양식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번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프레시안 : 보편적으로 2등 지지율과 3등 지지율을 합쳐서 1등 보다 높을 때 단일화의 효용과 요구가 가장 높다. 그런 상황이 오면 단일화로 간다는 말인가?
노회찬 : 그럴 경우, 단일화를 포함한 선거 연대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다. 이것은 개인 입장이고, 적절한 당내 논의를 거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단일화를 봉쇄해왔느냐. 그렇지 않다. 우리는 충분히 열어놓고 왔다.
프레시안 : 수도권에 민주당의 이른바 '공천 양보' 지역들이 있다. 그런데 그 지역 민주당 인사들의 항변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진보정당 지지율이 우리 지역에서 3, 4% 수준인데 그 쪽이 단일후보가 되면 선거에서 진다. 지는 연대를 해서 되겠냐. 이기는 연대를 해야지 식이다. 이런 논리에 대해선 어떻게 받아들이나.
노회찬 : 해당 지역만 똑 떼서 보면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 조정을 하는데, 그런 (지지율 순서대로 결정) 방식으로 정하면 다른 정당은 정치적 기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라는 말이다. 지방선거 연대에는 애초에 모순적 관계가 내재되어 있다. 워낙에 난이도가 높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데 그나마 이 연대를 가능하게 하려면 (민주당 외에) 다른 당에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 연대가 제일 쉽다"
프레시안 : 2012년 총선, 대선에는 연대 요구가 더 강해질 수 있다. 지금도 이렇게 복잡한데 그 때는 더 복잡하지 않겠나.
노회찬 : 그렇지 않다. 선거 연대에서 가장 쉬운 게 대선이다. 후보가 한 명이니까. 그 다음이 총선이고, 가장 어려운 게 지방선거다. 수천 개의 선거를 치르기 때문이다. 2012년에 가면 정책 연합, 지역 조정 등이 상대적으로는 지금보다 용이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일이 향후의 악재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진보신당의 현재 지역 상황은 어떤가.
노회찬 : 울산은 협상테이블이 유지되고 있고, 인천도 그런 논의가 진행 중이고, 대전도 속도는 안 나지만 제안이 됐고, 경남에서는 진보신당이 논의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참관하면서 도지사 출마 여부를 고민하는 중이다. 부산의 경우는 지금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의 선거 연합을 제안해놓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이 빠진 채 협의하는 데 대해 부정적이어서 진척이 없다. 반면 광주는 우리는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당의 선거 공조를 제안했고, 국민참여당의 회답이 왔다. 다만 민주노동당이 이 부분의 입장을 못 정해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프레시안 :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양쪽의 한계가 보이는데 민주노동당은 광역 후보군이 뚜렷하지 못한 대신 지역 상황이 상대적으로 좋으니까 '5+4'에서 실리를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진보신당의 경우는 지역의 조직이 민노당에 못 미친다. 그래서 활용할 수 있는 카드의 숫자가 작아 보인다.
노회찬 :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않다. 전체 후보군의 양이나 폭은 (민노당에 비해) 적은데, 단일화 차원에서 보면 실제로 소위 민주당의 양보로 주어지는 몫이 워낙 적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못채워서 문제 될 차원은 아니다.
프레시안 : 중앙에서 '5+4' 논의가 깨졌을 때 울산에서도 진보신당이 일방적으로 연대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노회찬 : 나도 김창현 민노당 울산시당 위원장의 <프레시안> 기고문을 보고 '중앙에서 울산 등에 협상 중단을 지시한바 있느냐'고 물어봤다.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역 자체 판단이다. '5+4'가 진행될 때는 지방도 연관이 되기 때문에 대략 맞춰서 진행하자고는 한 적 있지만, '5+4'가 깨졌을 때 지역에서도 깨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았거니와 그런 지시를 내린 바도 없다. 내가 어제 확인한 바로는 협상을 결렬한 것도 아니다. 그 협상에 여러 합의되지 않는 지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존의 합의 일정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시간을 갖자고, 며칠 쉬자고 얘기한 것인데 그것을 협상 결렬이라고 하는 것은 오해다. 곧 재개될 것으로 알고 있다.
"'노무현 대 이명박'구도?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 복지경쟁의 저작권은 진보진영에 있다. 하지만 로열티를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2008년 총선 때는 뉴타운, 특목고 등 '욕망의 정치'가 휩쓸었다. 하지만 불과 2년만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최근에는 무상급식, 부동산보다 주거 문제 등 복지 경쟁이 벌이지고 있다. 한나라당도 가세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복지 의제는 진보진영이 저작권을 갖고 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다같은 주장을 하면 표심은 '진보진영에 고맙긴 한데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쪽에 찍어주겠다'는 식으로 흐를 수 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노회찬 : 지적한 것처럼, 집권 가능성 내지 권력을 쟁취할 가능성 때문에 그것을 '실현 가능성'과 연계해서 오히려 뒤늦게 그런 입장을 차용한 쪽(민주당)이 실리를 얻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그렇다 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진보진영은 더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본다. 과거에 왜 이런 게 안됐나. 그 때 다른 당(민주당)은 어떤 입장을 취했나. 또 자세한 내용에서 우리가 차별성을 최대한 부각시킬 수 있다.
두 번째, 의제 개발이 무상급식에만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서울시 '시프트'의 경우 좋은 정책이지만 너무 비싸고 숫자도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 대안을 제시를 빨리 해야 한다. 지금 준비도 하고 있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 이명박' 구도로 가는 흐름이 있다. 부각되는 민주당 후보군은 친노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노회찬 : '노무현 대 이명박' 구도는 2007년 대선 구도다. 그 선거는 '정동영 대 이명박'이 아니라 '노무현 대 이명박' 구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타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리한 검찰 수사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렇다고 2007년 대선이 재현되는 선거가 된다면 역사적 후퇴다.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오히려 우리는 노무현이 추구하려 했지만 추구하지 못했던 것까지 추구해, 노무현 시대를 극복해 한걸음 더 나가야한다.다. 복수심으로 선거를 치르는 일부의 심정은 이해되지만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 한나라당 같은 세력이 다시 집권하지 못하게 하려면 논점을 달리 해야 한다. 이제는 정면으로 '복지국가냐, 양극화 사회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민주당 대 한나라당'으로 가면 '영남 대 호남'으로 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래서 새로운 정치연합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추구해야 한다.
프레시안 : 노 대표나 심 전 대표 모두 진보대연합을 축으로 한 2012년 선거 전 새판짜기를 자주 언급하곤 한다. 어떤 식으로 될 것 같나? 어떻게 추동할 것인가?
노회찬 : 지방 선거가 끝나자마자 당에서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가급적이면 2012년 총선 전에 복지국가를 이루려는 세력의 폭넓은 규합이 이뤄져야 한다. 그 동안 정당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던 사람들, 시민운동 세력도 이제 자꾸 정치에 훈수만 두지 말고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뛰어들어야 한다. 전문가, 교수들도 자문만 하지 말고 직접 자신의 신념 관철을 위해 정당 운동에 뛰어들어 폭 넓은 세력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지국가 세력 대 나머지 세력으로 나뉘면 좋다. 현실적으로 그 수준이 어렵다면 최소한 근접한 단계까지 가야 한다. 이를테면 2012년 총선에서 진보가 원내 교섭단체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의미 있는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 민주당을 더 키우는 방법도 있지만 강력한 진보정당의 출현으로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국민참여당이 처음 나왔을 때 "범진보로 함께 갈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는데, 지금 보기에는 어떠한가?
노회찬 : 제가 얘기했던 것은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정책과 지향하는 바가 유사하다면 능히 '범진보'로 함께 할 수 있지 않느냐' 였다. 출범 당시 기자회견을 보면 당 운영 방식을 빼고는 (민주당과) 같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노무현 정부를 극복하겠다는 것보다는 계승하겠다는 게 강하다. 애매한 것 같다.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일단은 판단 유보다.
프레시안 : 거칠게 표현했을 때 '민주당 좌파'들과의 연대는?
노회찬 : '민주당 좌파'가 고정적인 블록으로 돼 있지 않지만 민주당 왼쪽에도 '립서비스'의 복지국가가 아니라 정치 철학과 노선으로 추진할 수 있는 세력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작년 10월 재보선 때, 당이 다름에도 임종인 전 의원을 지지한 것도 그런 가능성을 보고 한 것이다.
"겨울에 태어난 것은 우리 숙명이다"
▲ '겨울에 태어난 것은 우리 숙명이지 않냐'는 노회찬 대표ⓒ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진보신당 창당 2년이다.
노회찬 : 일단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는 한겨울에 풍찬 노숙을 각오하고 나와서 두 번의 겨울을 지냈는데, 계절은 흘러갔는지 모르지만 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겨울나기다. 그러나 필수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진보신당은, 진보신당 자체가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진보가 혁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창당하면서 목표로 설정했다. 이른바 내용, 추구하는 가치, 정책에 대한 재구성, 세력에 대한 재구성이 필요하다. 진보신당은 당 자체로 그것을 완성보다는 '추동체'로 의미부여를 더 크게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2년은 무익하지 않았다. 당이 출범하면서 스스로 약속했던 것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준비는 거의 끝낸 상황이라는 면에서 지난 2년이 어려웠지만 의미는 있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그런데 진보신당을 보면 '피로도'가 아주 높다는 느낌이 든다. 노 대표, 심 전 대표 등 10년 전 민노당을 시작할 때 40대 장년이었던 사람들은 50대가 됐고 김종철 대변인 등 30대 초입이었던 사람들은 40줄로 접어들었다. 민노당 8년 동안 '고지가 보인다. 조금만 더 힘내자'수준까지 올라가다가 도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된 상황 아닌가? 지금 다시 "앞으로 10년을 더 버티고 가자"는 식의 깃발을 들 수 있나.
노회찬 : 우리가 출발했던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보지 않는다. 지지율 숫자로 보면 2004년보다 후퇴했다고 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더 올라가고 있는데 지금 가장 험한 지형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우리의 숙명이다. 우리가 이 겨울을 잘 넘기는 것이 중요하고, 이 겨울을 잘 넘기게 되면 봄의 약진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필이면 내가 겨울을 경과하는 시기에 태어난 것은 숙명이다.
프레시안 : 그 봄이 오는 '티핑 포인트'가 언제일까?
노회찬 : 봄의 완연함을 느낄 수 있는, 과실은 충분히 따지 못하더라도 진보의 봄을 완연하게 느낄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2012년 총선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지방선거에서 복지가 화두로 떠오르듯이 어쨌든 뭔가 바뀌는 조짐이 있긴 하다. 국민소득이 늘어날수록 보편적 복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것도 통례다. 진보신당은 이에 대응할 준비가 잘 돼 있나?
노회찬 : 좀 전에 얘기했듯이 피로도도 있으나, 한편으로 우리 경험은 쌓여가고 있다. 사람들이 이제 진보에 대해 생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의 정치적 역학관계에서는 왜소해졌을지 몰라도, 과거에 비해 플러스 된 것도 있고 마이너스 된 것도 있다. 플러스를 극대화시키고 마이너스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당 운영하는 사람으로 해야 할 일이다.
주어진 것이 나쁘기 때문에 상황과 전망이 나쁘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 주어진 나쁜 상황을 바꾸는 게 정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지방선거 자체도 중요하지만, 지방 선거 결과를 발판으로 향후 2년이 진보 세력의 상당기간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본다. 낙관적으로 봤던 것을 만들어내느냐, 아니면 주저앉느냐에 따라 2012년 결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고, 앞으로 2012년의 결과가 향후 10년, 20년을 좌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프레시안 : 진보신당이라는 당이 과거에 비해 발랄한 점도 있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면이 강하다. 그런데 세계 진보정당사를 보면 조직화된 노동, 조직 대중에 기반하지 않은 정당은 없다. 지난 2년을 보면 미흡했던 것 같고 솔직히 더 나아질 기미도 잘 안 보이는데?
노회찬 : 진보신당을 그간의 진보 운동의 성과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지난 10년 간 진보 정당 운동이 수동적으로 조직 운동에 의존하는 데 치우쳐 있지는 않았냐는 문제의식을 갖고, 오히려 조직화되지 않은 부분들, 촛불 시민들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치고 나간 면이 있다. 조직을 버린 게 아니라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던 측면이 있다. 앞으로 (조직 대중을) 다시 규합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진보대연합'의 정당성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현재 진보신당을 2배, 4배로 확대 복사하는 것은 우리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새롭게 개척해 나가야 할 부분을 개척해 '정반합' 하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낼 과정이다 .
"삼성이 왜 이건희 것인가?"
▲ "삼성이 왜 이건희 전 회장 것인가? 국민들 것이지"ⓒ프레시안(최형락) |
노회찬 : 기본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왔던 것은 재벌 체제의 해체다. 그 다음에 소유와 경영의 분리다. 기업 집단을 해체하고 잘못된 소유 경영 구조를 극복하는 게 핵심이라고 봐야 하지 기업 하나를 없애느냐 아니냐로 가는 쪽엔 좀 부정적이다.
신종플루를 막는 것이 중요하지 지역을 봉쇄하는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이를테면 삼성이 왜 이건희 전 회장 개인 것인가. 이건희 전 회장 지분은 2%밖에 안된다. 그러면 삼성은 이건희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업이다. 그가 '불법점유'하고 있을 따름이다. 불매운동을 통한 해체 주장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견제하자는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닐까도 싶다.
프레시안 :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이 나와도 막상 삼성은 까딱 없는데 광고 문제나 기고글 문제로 진보진영 내에서만 분란이 일어났다. 역시 삼성이 너무 세서 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노회찬 : 나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문제로 본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치외법권 지대가 없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치외법권 지역이 두 개 있다. 미국과 삼성이다. 미국은 외국이니까 그렇다 치자. 삼성은 헌법의 문제를 무시하고도 버젓이 사회적으로 정당화 되는 등의 일이 일어나는 게 문제다. 지난번 이건희 전 회장의 원포인트 사면 문제를 보라. 뭘 위한 사면인가. 그는 IOC에서 징계를 받아 위원회 활동도 못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별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지적하는 언론이 없다. 대통령이 어느 재벌 총수 한사람을 위해 사면한 경우가 있나. 노태우 정권, 김영삼 정권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프레시안 : 정치 권력의 권위주의가 무너진 곳을 시민사회의 권위가 채운 것이 아니라 '돈'이 채운 것 같다
노회찬 : 그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얘기했던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이 그 이야기를 신나서 한 것은 아닐 것이고 자탄, 자조의 얘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을 바꾸는 역할을 노 전 대통령이 할 수 있다고 봤고 하길 원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한 데 대해 우리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는 말의 상징이 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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