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5월을 삼켰다. 오늘부터 1일은 노동절, 3일은 석가탄신일, 5일은 어린이날이다. '황금연휴' 바람은 예상했지만, 투표까지 겹쳐 형식만 남게 되었다. 텔레비전의 특집이 해마다 인사치레라도 하지만, 올해는 그마저 대강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예상하기로는 어린이날이 가장 큰 '타격'을 받지 않을까? 노동절과 석가탄신일에 관계된 사람은 투표할 사람이 많지만, 어린이는 투표권이 없다. 한 표가 아쉬운 마당에 어린이보다는 그 부모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린이날 대통령 후보들이 어딘가에 나타나더라도, 부모가 아닌 어린 자녀는 동원되고 소비되는 역할에 그칠 것이 뻔하다.
겉으로 보이는 행사나 놀이, 노동이야 크게 달라지겠는가. 어린이날이 이 시대 가족과 가족관계의 중요한 '의례'가 된 지 오래니, 어떤 가정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문제는 정치다. 의례가 제도가 되고 국가화한 다음에는 어떤 의미든 정치와 맞닥뜨려야 한다. 늘 현실과 그 현실에 대한 국가 통치가 불려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는 또 다르다. 5년 만에 맞는 대통령 선거가 어린이를 의제로 하는 유일한 정치적 기회를 가로막고 나선 꼴이다. 정치의 역설이라고 할까, 대선 바람에 어린이와 어린이날의 정치는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올해 어린이날은 그 어느 해보다 더 형식에 치우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다시 대선이 압도하는 한 주가 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니 대선 안으로 들어가야 마땅하다. 평등과 권리라는 가치와 규범 때문에도 그렇지만, 기억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익숙하지만 늘 아픈, 통계와 조사결과를 불러내는 것부터.
열흘 전쯤 발표된 조사결과가 먼저 눈에 띈다. OECD가 회원국을 포함한 72개국 15세 학생 54만 명을 대상으로 평균 삶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성적·장래 스트레스…韓학생 삶 만족도 세계 최하위, ☞바로 가기). 22%의 학생이 삶의 만족도가 매우 낮다고 응답했다(OECD 평균은 12%).
2016년 이맘때쯤 연세대 연구팀이 발표한 '2016 제8차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도 비슷하다. 한국 어린이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조사 대상인 OECD 회원국 22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다(☞관련 기사 :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OECD 꼴찌).
"어린이·청소년들은 5명당 1명꼴로 자살 충동을 경험한 바 있었다. 자살 충동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은 초등학생은 17.7%, 중학생 22.6%, 고등학생 26.8%이었다. 이는 전년도 조사 때보다 각각 3.4%포인트, 3.1%포인트, 2.8%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또 한 가지 조사결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소년 정신건강 보고서다.
"최근 12개월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23.6%였다. (…) 최근 12개월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 있는 청소년은 11.7%였는데, 이 비율도 가정의 소득 수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최고 26.7%, 최저 10.2%로 차이가 있었다."(☞관련 기사 : '가난하다' 생각하는 청소년들 스트레스·우울감 크다)
이런 통계가 아니라도,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데에는 대부분 사람이 동의한다(영양과 신체로만 건강을 시비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보고 듣는 것이 다 그런데. 가정과 학교, 길거리에서 매일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니, 어린이와 청소년의 '불건강'은 하나의 일상이다.
어떻게 해야겠다, 무슨 수를 내야 하겠다는 생각이 그때 뿐이라는 것이 문제다. 어린이날, 청소년 행사나 기념일, OECD 보고서 발표, 또는 무슨 연구결과가 나올 때, 어린이와 청소년은 그때 잠시 신문과 방송을 장식할 뿐 일상으로 복귀한다.
지금 진행 중인 대통령 선거에서도 어린이와 청소년 공약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차이도 없다. 어린이 관련 활동 단체가 물었지만, 몇 가지 소극적인 답변뿐이었고 그나마 체벌 문제는 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관련 기사 : 대선후보들 '아동·청소년 체벌문제 해결'에는 '묵묵부답'). 다른 한 단체가 캠페인(!)을 벌이고 어린이·청소년이 만든 공약을 제안했지만(☞관련 기사 : "놀 시간을 주세요!"…'아동이 제안하는 대선공약' 발표), 무슨 반응이 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런 정치적 '그림자' 취급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투표권을 가지지 못했으니, 다른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힘도 없으니, 무슨 약속을 하는 것이 정치적 효용이 있을 리 없다. 겉으로 보기에 어린이와 청소년에 해당하는 것이라 한들, 겉모양만 그렇지 사실은 어른용이다.
여러 대선 주자가 다투어 내놓은 '아동수당' 약속도 마찬가지다(☞관련 기사 : 아동수당 공약에서 후보 철학 보인다). 아동수당이 의미와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할 중요한 복지정책이자 가족정책이지만, 여기서 어린이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어린이를 '위한다'고 하겠지만, 여기에 어린이라는 주체는 없다.
'보호자주의'은 이런 공약과 정책, 정치를 최선이라고 볼 것이다. 백 걸음을 양보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보호와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보는 한, 피할 수 없는 논란이다. 만 18살이 어리다고 투표권도 주지 않는 나라가 아닌가?
'어른'은 어떤 존재이고 그들은 마땅히 어때야 하는지, 이 논란도 복잡하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어른도 그렇지만 어린이도 무엇(예를 들어 어떤 자격이나 성과)을 갖추어야 권리를 인정받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사실만으로 어떤 조건과 경우에도 누릴 수 있는 권리(인권)를 보유한다. (정말 '이상한' 어른에게도 어떤 인권이 있듯이) 어떤 어린이도 나면서부터 양보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
흔히 말하길, 모든 어린이는 생존의 권리, 보호의 권리, 발달의 권리, 참여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한다(☞바로 가기). 오늘 이 <논평>의 맥락에서는 특히 발달과 참여의 권리를 강조하고자 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분명 국제 사회가 같이 인정한 권리다. 대부분 국가가 동의한 '보편'이자 '글로벌 스탠다드'인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리라(☞바로 가기).
- (제12조)
1. 당사국은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능력이 있는 아동에 대하여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스럽게 표시할 권리를 보장하며 아동의 견해에 대하여는 아동의 연령과 성숙 정도에 따라 정당한 비중이 부여되어야 한다.
2.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특히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사법적 행정적 절차에 있어 아동이 직접 또는 대리인이나 적절한 기관을 통하여 진술할 기회가 국내법의 절차에 따라 주어져야 한다.
- (제13조) 아동은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
- (제14조) 당사국은 아동의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존중하여야 한다.
- (제15조) 당사국은 아동에게 결사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 (제16조) 어떠한 아동도 사생활 가족 가정 또는 서신 왕래에 대하여 독단적이거나 불법적인 간섭을 받지 아니하며 또한 명예나 신망에 대한 불법적인 공격을 받지 아니한다.
대통령 선거와 한국의 정치는 이런 어린이의 권리를 보장하는가?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제12조), 예를 들어 아동수당, 빈곤, 학교 교육, 노동, 보건과 의료, 사회보장에 대해 충분히 말할 기회가 있는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권리를 누린다고 하지는 못할 터, 대부분 권리는 꿈꾸기부터 시작해야 할 형편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다르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으로는 발달을(교육, 여가, 문화생활, 정보, 양심과 종교 등), 과정으로는 참여를(의사표현, 양심과 종교, 집회, 사생활, 정보 등) 새롭게 볼 수 있는 사건이 왜 없을까. 이번, 대선과 어린이날이 겹쳤으니, 전에 없던 유력한 정치적 기회다.
대선 주자 누구든 혹시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할 계획인가? 그렇다면 선거법을 개정해서 투표 연령을 낮춘다고 약속하라. 더 민주적인 학교는 어떤가? 표가 안 된다고? 그들은 곧 유권자가 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면, 권리와 정치를 생각하는 어린이날이 되기를. 남은 열흘,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어린이·청소년의 민주주의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논의가 넓게 일기를 기대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