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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의 제1과제는?

[기고] 법원행정처 앞세운 대법원장의 과도한 권한, 내려놓아야

스스로 권위를 추락시키는 사법부

이른바 '사법개혁 저지 의혹' 사건으로 인한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주지하는 바처럼, 박정희 유신정권은 '긴급조치'를 전가의 보도처럼 무소불위 휘두르며 권력을 사유화하고 철권통치를 자행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대법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 개개인 권리에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박정희의 긴급조치 발령에 면죄부를 준 판결로서 한 마디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이 판결은 대법원 자신의 기존 판결을 뒤집은 것이었고, 그것도 자신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일개 소부(小部)가 뒤집은 것이었다. 일찍이 대법원은 2013년 4월 18일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긴급조치 9호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 것으로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도 위반돼 무효다"라고 판시한 바 있었다.

대법원은 법의 해석과 적용을 담당하는 최고기관으로서, 마땅히 국민의 다양한 이해와 사회적 가치를 판결에 담아내야 한다. 이러한 임무 수행의 전제 하에서 대법원의 권위가 존중받는 것이다. 하지만 긴급조치 판결처럼 자신이 내렸던 판결조차도 권력의 입맛에 맞춰 뒤집고, 지금 일선 법관들의 아주 조그만 움직임조차 철저히 그 싹을 자르려는 관료적이며 제왕적인 이러한 행태는 구시대적이며 스스로 권위를 결정적으로 추락시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5년 OECD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법부의 신뢰도는 27%로 OECD 42국 중 최하위와 다름없는 39위였다.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독점은 사법독립 훼손


우리나라 법원조직법에 의하면 사법행정사무는 대법원장이 총괄한다. 법원조직법은 법관의 임명, 판사의 연임, 보직, 근무성적의 평정, 파견근무, 휴직, 겸임 등에 관한 권한행사를 모두 대법원장이 독점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대법원장이 대법관에 대한 임명제청권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장은 사법행정 권한을 통해 법원 전체의 법관 인사에 관한 사항을 철저하게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해 법원에 속한 모든 국가기관은 모두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에 복속된다.

반면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 수단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대법원장의 독점적 권한 행사는 사법행정을 넘어서 사법권 독립 자체를 훼손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법행정이란 사법권의 독립을 보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법권 행사를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경우, 각급 법원의 사법행정 내지 법원행정은 당해 법원장의 책임 하에 있다. 그리해 법원장은 그 행정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 법원장은 행정업무의 수행자로서 일반적으로 당해 상급법원 법원장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므로 독일의 경우에는 연방최고법원 법원장은 각 연방최고법원의 사법행정 권한만 행사할 뿐 각급 법원에 대한 사법행정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법관계급제 폐지와 법원행정처의 혁파가 사법민주화의 출발점이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법부란 조직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의 법관이 곧 심판기관이요 사법부이다. 따라서 한 명 한 명의 법관이 소신껏 재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곧 사법권의 독립이다. 사법권의 독립이란 비단 '입법부, 행정부로부터 사법부의 독립' 나아가 '개별 법원의 독립'을 의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는 사법권을 직접 행사하는 기관(심판 주체)으로서의 재판부의 독립 나아가 더 구체적으로는 재판부를 구성하면서 실제로 재판을 수행하는 한 명 한 명의 법관의 독립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은 상명하복을 전제로 해 수직적 서열구조로써 계층화되어 있는 일반 행정관료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적으로 사법 후진국으로 불리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어느 국가도 법관을 인사하지 않는다. 법원행정처를 앞세운 대법원장의 과도한 권한은 이미 큰 문제다. 특히 독점적인 인사권은 시급히 바뀌어야만 할 것이다. 한 나라 판사의 인사권을 한 사람이 쥐고 흔드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 기본법 제97조 제2항은 법률의 판결이나 법률이 정하는 형식 및 이유에 의해서만 법관 자신의 의사에 반해 전보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법관의 전보 인사를 금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심급제에 따른 사실상의 고하 관계를 제외하고 법관은 모두 동일한 권한을 가지는 법관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직급 승진이나 지위의 고하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장이 행사하는 판사의 임명권, 특히 보직과 승진결정권이야말로 판사의 독립된 법 발견과 천명(闡明)의 기능, 즉 사법권의 독립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법관의 판결 역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사법 독립 또한 허구화될 수밖에 없다.

각급 법원은 사법부 최상층이 아니라 소송 당사자들과 소통하면서 '당해 사건에서의 법'을 찾아나가는, '자신의 법원(my court)'을 이뤄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법민주화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법관 계급제 폐지는 이를 위한 핵심적 요소이며, 법관계급제의 중심에 서 있는 법원행정처의 혁파는 변혁의 출발점이다. 사법 관료화의 핵심으로 부상한 법원행정처는 일본 식민지시대 잔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즉, 일본 제국 시대에 일본의 전체 법원과 재판관을 지배, 통제했던 사법성(司法省)을 그대로 모방한 제도이다(사법성은 이후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으로 그 명칭이 변경됐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법원행정처라는 시스템은 사법 후진국인 일본을 제외하고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판사회의의 정상화, 법관 독립의 핵심


독일에서 재판부 구성과 각 재판부의 사무분장은 각 법원의 법관들로 구성되는 대의원판사회의(Das Präsidium)에서 결정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법적 구속력이 부여되어 있다. 대의원판사회의는 법원장과 선출된 법관으로 구성되며, 재판부의 구성을 결정하고 수사법관을 임명하며 관장하는 업무를 분장한다. 이렇게 해 대의원판사회의는 '사법권 독립'의 중심에 존재한다.

우리 법원에서도 판사회의를 개최할 수는 있다. 판사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판사들은 구성원 5분의 1이상의 동의를 얻거나 내부 판사회의 의장이 회의를 요청하면 법원장은 판사회의를 즉각 소집해야 한다. 하지만 상명하복 시스템만 존재하는 우리나라 법원 운영에서 판사회의란 단지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 혹은 법원장을 보좌 기능 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 한낱 유명무실한 겉치레의 존재이다. 법원조직법은 각급 법원의 판사회의를 대법원장의 자문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으로 법관 독립을 기하고자 한다면, 우선 판사회의를 기속력 있는 의결기관으로 구성하고 일반 사법행정 권한이 판사회의에 관여할 수 없도록 독립시켜야 한다. 그리해 최소한 각급 법원의 재판부 구성과 각 재판부의 사무분장은 각급 법원 법관으로 구성되는 판사회의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판사회의의 정상화야말로 진정한 법관 독립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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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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