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그림 로비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은 "그림을 본 적이 없다" 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뉴욕에선 문제의 학동마을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검찰 조사도 있고 해서 지금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부정의 수위를 낮췄다.
하지만 3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국세청의 직원이 한 전 청장의 지시를 받아 문제의 그림인 '학동마을'을 구입한 뒤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귀남 법무장관은 지난 달 30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그림로비 사건 등은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고발 내용이 아직 고증되지 않았다"며 "범죄단서가 될만한 것이 포착되면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태근, 한상률 출국 전에 수사 촉구
'학동마을' 사건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이 지난 1월 "2007년 초 당시 차장이던 한 청장이 국세청장이던 남편에게 인사청탁과 함께 고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선물했다"고 언론에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 로비 의혹은 제대로 수사도 되지 않았고 한 청장은 사표를 냈다. 지난 2월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당시 김경한 법무장관을 향해 그림 로비 의혹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정 의원을 비롯한 수도권 중심 소장파와 현재 한상률-안원구 의혹과 관련돼 이름이 거명되는 이상득 의원·박영준 국무총리실 차장 등의 관계가 여의치 않던 시점이다.
결국 한 전 청장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본격화되던 지난 3월 15일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고 수사는 지지부진해졌다. 민주당이 지난 6월에 한 전 청장을 고발하고 나서야 그림로비 의혹 사건은 중앙지검 특수2부에 정식 배당됐고 최근 안원구 국장의 폭로 이후 수사가 진척된 것.
이 과정에서 검찰은 "한 전 청장의 심부름으로 내가 직접 갤러리에 가서 '학동마을' 그림을 구입한 뒤 이를 한 전 청장에게 전달했다"는 한 전 청장 측근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는 미국에 체류 중인 한 전 청장의 소환이 불가피하지만 한 전 청장은 당장 귀국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또한 한 전 청장이 소환되더라도 검찰의 칼날이 그림로비에만 국한되면 ▲정권 실세에 유임을 청탁하며 10억 원을 전달하려 했다 ▲태광실업 기획세무조사를 진두지휘하며 청와대에 직보했다 등의 핵심 의혹이 오히려 묻힐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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