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이루어지는 모든 업무들을 지상 조업이라고 해요."
비행기가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하면 택시웨이(공항과 활주로를 잇는 통로)에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비행기를 지정된 주기장으로 안내하는 유도수들이다. 자동차를 예를 들면 주차 안내원과 같다.
"비행기마다 멈춰야 하는 선이 있어요. '더 와, 더 와, 멈춰' 등 몸짓과 무전으로 유도하죠."
그리고 비행기 엔진이 멈추면 브릿지 선원들이 와서 공항 게이트와 비행기 탑승구를 연결해 승객들이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동시에 여객기의 수하물을 내려 화물 컨테이너에 싣고, 터그카를 이용해 운반하는 작업도 이루어진다. 화물기의 경우 카고 로더 장비를 이용해 화물 상하역 작업을 한다. 또, 다른 비행기가 주기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정차했던 비행기를 다른 곳으로 견인한다. 이후 급유, 정비도 이루어진다. 이렇게 승객들이 떠난 뒤에 여러 수고가 있어야만 비행기는 안전하게 다음 목적지로 이륙할 수 있다.
지상 조업은 야외에서 일하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장 힘들 때는 여름, 가장 일하기 싫을 때는 겨울이에요. 특히 눈 많이 올 때요."
37도가 넘는 폭염에는 그늘 한 점 없는 택시웨이에 서 있어야 한다.
"쉬는 시간은 비행기 나가고 그다음 비행기 들어오기 전까지에요. 비행기 다 받지도 못했는데 새 비행기 오면 또 뛰어나가야 하죠."
눈이 많이 올 때는 주기장 눈을 치워야 한다. 넓은 구역을 몇몇 사람이 염화칼슘을 뿌리거나 밀대로 치우는 일이 가장 힘들다. 또, 기체에 눈이 쌓이면 안 되므로 뜨거운 제빙액으로 비행기 목욕을 시키는 디아이싱(De-Icing) 작업도 한다.
"747 기종의 경우 비행기 문 열고 작업하는데 높이가 아파트 4층 정도 돼요. 로더로 짐을 올리고 집어넣는데, 화물과 문 사이에 사람이 끼면 죽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댕겨라, 물건 들어간다, 조심해라' 이렇게 소통하며 작업해요. 화물 운반하면서 타박상은 일상이죠."
비행기 엔진이 돌 때는 엄청난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해도 청각 손상이 발생한다.
"후폭풍이라고, 비행기 엔진이 돌 때 나오는 바람하고 소음인데요. 그거 한 번 나면 정신이 없어요. 저희 직원들 집에 가면 텔레비전 소리가 다 커져 있어요."
고된 육체노동도 힘들지만 이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장시간 노동이다. 인천국제공항은 1년 365일 24시간 운영된다. 비행기 스케줄에 맞춰 업무가 발생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김 씨는 인터넷 구인 공고를 보고 입사했는데 공고에는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에 항공 업무 특성상 연장 근무가 있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김 씨가 막상 출근해 보니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야간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후 6시부터 시작해 새벽 3시에 퇴근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늘 다음 날 오전 10시에서 정오까지 일해야 했다.
"'저 오늘 집에 가야 하니까 근무 빼 주세요'라고 말해야 정시에 퇴근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하루 16~18시간을 일하다 보니, 집에 다녀올 시간이 없다. 쉴 시간이 부족해 아예 회사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출근하는 일이 벌어졌다. 근로기준법 제53조에는 노사 합의가 있는 경우에 최대 주 52시간 근무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샤프 노동자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법이다.
"잠 못 자고 일하니 만성피로에 시달리죠, 비행기 스케줄에 따라 들쑥날쑥하게 일하니 면역력도 떨어지죠."
그런데도 이들의 연봉은 작년 기준 2200만8000원. 야간포괄수당 80시간이 포함된 금액이다. 월급으로 치면 163만4000원, 야간수당을 빼면 약 140만 원이다. 상황이 이러니,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사람을 채용하면 나가고, 또 채용하는 일이 반복됐다. 회사는 2012년과 2013년 고용노동부로부터 '고용창출 우수기업'에 선정됐다.
노동자들은 회사에 인력 충원 및 임금 인상, 복지 확대를 꾸준히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김 씨는 근로기준법과 인터넷 등을 찾아보고 회사가 시간외수당, 연차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점 등을 알게 됐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김 씨와 같이 일하는 인천공항 지상 조업 현장 노동자 80명 전원이 노조에 가입해 2016년 5월 21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샤프공항지부(지부)를 설립했다. 김 씨는 노조 지부장을 맡았다. 하지만 회사는 지부 설립 6일 후에 대표이사가 개입한 어용노조를 만들어 설립 신고를 했다. 어용노조에는 지상 조업 현장직과는 교류가 없던 사무, 여객직군 직원들 670여 명이 가입했다. 지부는 회사 대표가 조합비 지원까지 약속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녹취록을 확보해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14일 어용노조 설립신고가 취소됐고 지부 설립 6개월 만에 교섭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는 형식적으로만 교섭에 세 차례 임했다. 지부 조합원들은 회사의 태도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결국 파업을 결의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그런데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어용노조 설립이 취소된 상태에서 쟁의조정 신청을 넣은 건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행정 지도를 받았어요. 이후부터 회사와 아무런 교섭을 못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용노조는 지난해 12월 7일 노조 이름만 바꿔 또다시 노조 설립신고를 했고, 고용노동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노조 구성원도 모두 그대로인데 고용노동부는 이를 검토도 안 하고 무조건 받아들였다. 제도도 허점이지만 안일한 고용노동부의 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저희가 뭘 건의하거나 불만을 이야기하면 관리자들이 '너 없어도 이 회사 잘 돌아가. 나갈 거면 가' 그런 반응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 그래? 한번 생각해 보자' 하죠."
김 씨 자신도 바뀌었다.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토요일마다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에 나갔다. 방송으로만 보던 것과 직접 집회에 참여해서 보는 것은 너무나 달랐다. 김 씨는 자녀가 다섯이나 되는 다둥이 아빠다.
"주말마다 촛불 집회에 가족들을 다 데리고 갔어요. 꼭 기억해 달라고 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말도 가슴에 남고요. 학교 선생님이 나와서 '너희들 3, 40년 후에 이 역사를 교과서에서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할 때는 저희 아이들이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리고 구속돼 있는 '한상균 위원장의 죄는 1년 먼저 촛불을 들었을 뿐이다'라는 피켓 문구가 정말 공감이 갔어요."
2015년도 우리나라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2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 1766시간에 비해서 두 달이나 더 일한 셈이 된다. 샤프 노동자들의 경우 연 3600시간, OECD 평균보다 20개월을 더 일했다.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는 인천국제공항의 부끄러운 뒷모습이다.
"이 회사에 온 뒤로 직장 생활을 위해 가정 생활을 하고 있어요. 정시에 퇴근해서 아이들도 돌보고, 가족들과 어디 놀러도 가고 싶어요."
삶의 작은 여유는 가져야 살맛 나는 것 아닐까. 샤프 노동자들은 죽어라 일만 해 왔다. 그들의 요구는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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