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시민사회 진영까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각각의 다른 셈법과 처한 상황의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물론 이들은 "내년 지방선거에도 이렇게 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안산, 합의안에 서명도 해놓고 결국 무산
▲ 안산 상록에서 김영환 후보와 임종인 후보의 단일화 협상은 타결되지 못했다ⓒ김영환 후보 홈페이지 |
임종인 후보가 약속 시간 보다 3시간 먼저 협상 타결 사실을 밝혔다는 이유로 안산 상록을 단일화의 판을 엎은 민주당에 대한 진보진영과 시민사회의 불만은 적지 않다.
막판에 "상록을에서 민주당이 양보하면 수원 장안과 경남 양산에서 우리가 양보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은 민노당, 민주당으로부터 협상 난항의 요인으로 지목당한 진보신당은 "민주당이 스스로 밥상을 걷어찼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애초 민주당 김영환 후보는 단일화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후보 적합도'가 여론조사 항목으로 들어가는데 상당한 알레르기 반영을 보였다는 것. 민주당 지도부의 단일화에 대한 진정성이 없지 않았지만 경선을 거쳐 공천을 받은 후보를 주저앉히기도 쉽지 않았다.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는 "정세균 대표가 단일화에 뜻이 전혀 없었다고는 생각 안한다"면서도 "하지만 정말 의지가 있었다면 정식 공천 전에 정치적 정리를 끝냈어야 한다. 수원은 손학규 전 대표가 맡고 있고 양산은 친노진영이 맡고 있는 상황이니 안산과 충북4군을 자기 선거로 생각한 게 아닌가도 싶다"고 말했다.
민주당 인사들도 공식적으로는 "임종인 후보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러 합의안이 무산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체로 단일화 무산에 대해 겸연쩍은 표정이다. 한 핵심인사는 "어쩌겠나. 단일화가 안되도 당선이 된다는 판단이 선 이후엔 어쩔 수 없었다"면서 "물론 이번 선거 이후가 더 문제라는 것은 잘 안다"고 말했다. 이 인사의 말대로 '재보선 이후'가 더 문제다.
"판이 넓어지면 오히려 일이 더 쉬워진다"?
기존 정당을 비판하면서 직접 개입을 선언했지만 실제로 힘을 쓰지도 못하고 있는 시민사회도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지방선거 적극 참여를 주창하고 있는 '희망과 대안'의 상임운영위원인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내달 초에 우리 내부 토론회를 열고 11월 한달 동안 공개, 비공개 토론회를 쭉 열겠다"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우리가 중재나 압력을 가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맞다"면서도 "안산 같은 경우 (민주당) 후보가 버텨버리면 우리는 운신의 폭이 좁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번 재보선에서 선전해서 오히려 향후 연대의 전망이 어두워지는 측면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하 위원장은 "그런 점이 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고 답했다.
하 위원장은 "오히려 판이 확 더 넓어져버리면 일이 쉬워지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안산과 수원·양산을 패키지로 조정하자)는 강기갑 대표의 제안 같은 것이 좀 더 일찍 나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넓은 판'이 필요하다는데는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도 뜻을 같이 했다. 심 전 대표는 "지역별로 나눠져버리면 민주당을 감당할 수 없다"면서 "공식적으로 각 당이 후보를 공천하기 전에 큰 정치협상으로 기조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 전 대표는 "물론 그것도 쉽지는 않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단일화 무산 이후 각개 약진 국면에서 사표론이 적잖은 힘을 발휘한 것은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심 전 대표는 "이런 선거에서 진보진영 후보는 원래 실력의 60%도 발휘하기 힘들다"면서 "하지만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총력을 기울이는 지방선거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번처럼 '배짱'을 부리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압박이다.
"연대해야 한다"고 입 모으지만 계산은 제 각각
민주당의 덩치 앞에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 진보정당은 조속히 후보군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이미 나란히 거제시장 후보를 정해놓고 단일화의 여지도 열어두고 있다.
또한 서울시장 예비후보를 모집 중인 민노당은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유력한 상황이고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도 곧 출마를 공식화할 계획이다.
물론 민주당에서도 "이래선 안 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안산 단일화를 주장하다가 막판에야 김영환 후보 지원활동에 뛰어들었던 천정배 의원은 "이번 선거보다도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면서 "이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연대를 반드시 이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경 사무총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야권 연대 성공을 위해 정책 연대를 추진하면서 선거연대를 위한 논의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다른 야당들과) 협의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도 "연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세력 간, 출신지역 간 이해관계가 다르다. 또한 '안산 학습효과'로 인해 진보정당 내에서도 독자노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야권 안팎의 인사들은 하나같이 "답은 간단하다. 민주당이 기득권을 놓으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실천이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가 기득권을 놓을 의지가 있는 지도 문제지만 수많은 출마 예비군들을 통제할 힘을 갖고 있는지가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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