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법정에서 두 번째로 맞붙었다. 주로 수사 및 재판 절차에 관한 쟁점이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및 최순실 씨 일가 등에게 수백억 원대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삼성 관련 사건에서, '실체'보다 '절차'를 문제 삼는 전략은 낯설지 않다.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때도 그랬다. 뇌물을 주고받은 정황이 뚜렷해도, 증거 확보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처벌을 피한다. 이른바 '떡값 검사'들과 삼성 수뇌부가 그렇게 위기를 벗어났다. 대신, 이들 검사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전 의원이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 "특검 파견검사, 공소유지 가능"
이런 풍경을 또 보게 될까?
일단, '절차' 관련 여러 쟁점 가운데 하나는 금세 승부가 났다. 법원은 특검에 파견된 검사는 공소유지(재판 진행)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 부회장 측 주장을 기각했다. 파견검사 직무 범위에 공소유지도 포함된다는 특검 측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새로운 쟁점도 있다.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이 핵심 증거로 삼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의 수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수첩 입수 과정이 위법일 가능성을 거론한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삼성 X파일 사건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증거 확보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증거의 효력도 없다. 따라서 이 부회장을 구속 기소한 근거 역시 흔들린다.
계속 진행 중인 쟁점도 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앞서 진행된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특검이 공소 사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내용을 공소장에 첨부해서 법원에 제출했다"고 주장했었다. 이는 재판부에게 편견을 심을 수 있으므로, 공소장의 효력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 부회장 측은 이른바 '공소장 일본주의(公訴狀 一本主義)' 원칙을 거론한다. 공소장 이외의 자료는 법원에 제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공소 내용과 관계없는 자료를 제출해서 법관에게 편견을 심는 걸 막자는 취지다.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이 이런 원칙을 깼다고 본다.
"삼성 경영권 승계에 대한 박근혜 정부 협조 위한 대가, 에버랜드 사건도 관계 있다"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가 진행한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특검 측은 이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공소장 첨부 내용 가운데 공소 사실과 관계가 없는 사례로, 이 부회장 측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 및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BW) 헐값 발행 사건 관련 내용을 꼽는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은 1996년, 삼성SDS 사건은 1999년에 발생했다. 특검 측이 너무 오래 전 일까지 들췄다는 주장이다.
특검 측은 이들 사건 관련 내용이 공소 사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했다. 이 부회장 측이 박 전 대통령 및 최순실 씨 일가에게 뇌물을 건넨 대가가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 전반에 대한 협조였다는 게 특검 측 주장이다. 그런데 삼성에버랜드 및 삼성SDS 관련 사건은 삼성 경영권 승계 논란의 핵심이므로 공소 사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 두 회사는 삼성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특히 삼성에버랜드는 삼성물산에 합병된 상태인데, 옛 삼성에버랜드와 현 삼성물산 모두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이다.
최순실과 이재용이 공유하는 전략 : 절차를 문제 삼기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문제 삼는 이 부회장 측 논리는, 사건의 실체보다 재판 절차의 정당성을 따지는 쪽이다. 특검 파견검사는 공소유지에 참여할 수 없다는 주장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최순실 씨 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다른 피고인들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특검이 기소해서 이뤄지는 재판은 물리적 한계로 진행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재판부가 이날 파견검사 역시 공소유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여러 재판 역시 걸림돌이 치워지게 됐다.
이재용 측 "안종범 수첩 전체 열람하게 해달라"
하지만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을 둘러싼 논란은, 이처럼 간단히 마무리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한 차례 기각됐었다. 이후 추가 수사를 거쳐 새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구속 시도 '재수'가 성공했던 핵심 근거를 제공한 게 안 전 수석의 수첩이다. 이 수첩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고 한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거래 정황도 담겨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안 전 수첩의 입수 과정에 대해 위법 논란이 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특검이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압수한 근거 문서를 확인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특검이 증거로 삼은 수첩이 정말 안 전 수석의 것이 맞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설령 안 전 수석의 수첩이 맞고, 확보 과정이 합법적이었다고 해도, 수첩 안에는 이 부회장 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 측은 안 전 수석의 수첩 전체를 열람하게 해달라고 특검 측에게 요청했다.
이에 대해 특검 측은 관련 자료들에 대해 "향후 증거 조사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일단 "변호인이 요청한 증거목록에 대해 특검이 적극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두 차례 재배당 거친 이재용 재판
한편 이 부회장은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 재판은 두 번의 재배당을 거치는 등 공판 시작 전부터 논란이 이어졌다. 당초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법원 내부 추첨으로 형사합의21부(부장 조의연)에 배당됐지만 조 부장판사가 앞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어 재배당을 요청했고 형사합의33부(부장 이영훈)에 재배당됐다. 하지만 이 부장판사가 최순실 씨와 관련이 있는 인물의 사위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다시 형사합의27부(부장 김진동)로 배당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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