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지역감정의 역사에 대한 김 전 대통령 생전의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전라도 표 덕에 대통령 됐고, 그 후 20여 년간 전라도에서 여당이 다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전라도 사람이 견디다 못해 내가 등장하고 하니까 전부 나에게 표를 주고 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에 야당이 세니까 군사정권이 가르기 작전을 했습니다. 못 고칠 감정도 아니고 고질도 아닙니다. 양쪽이 이해관계가 없잖아요. 대통령 때 노력을 많이 했으나 가장 성공하지 못한 것이 이 분야입니다. 하지만 씨는 뿌렸고, 그 씨가 아직 말라죽지 않았습니다"(2005. 3. 1. <조선일보> 창간 85주년 특별회견)"
이는 최근 한국의 지역주의를 정치학적으로 분석한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의 역저 『만들어진 현실』의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 대표는 '지역주의 망국론의 정치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지역주의 극복 없이 정치발전 없다는 담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1년 선거 직후였다. 선거에 나타난 시민의 의사를 민주화에 대한 요구로 해석되지 않게 하려는 박정희 등 군부집권세력의 전략적 의도였다.
둘째, 1980년 민주화의 봄 시기,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은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컸던 당시의 정치 상황을 DJ 등이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왜곡했다. 따라서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셋째,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 망국론은 다시 동원됐다. 민주화를 했더니 지역감정이 폭발해 사회불안만 심화되었다는 것이었다.
넷째, 1990년 3당 합당 당시 내건 정치적 알리바이가 지역감정이었다.
다섯째, 다시 대규모로 동원된 것은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총선, 199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재편 과정에서였다. 1993년 정계를 은퇴했던 DJ의 복귀가 몰고 온 폭풍이었다. 이때를 고비로 지역주의 망국론의 담론 생산자는 더 이상 보수적 정치세력과 주류 언론에 한정되지 않게 되었고, 상당부분 확대되었으며, 비로소 명실상부한 지배담론이 되었다.'
이것이 박 대표가 분석한 지역주의론의 정치사요, DJ와 지역주의가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그리고 과연 DJ는 지역주의의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를 말해 주는 역사적, 정치사적 논쟁이다. 과연 DJ는 지역주의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좀 더 살펴보자.
▲ 국회 분향소 모습ⓒ인터넷공동사진취재단 |
1971년 대선이 단초
지역감정이 정치적 지배구조로 자리잡기 시작한 1971년 당시, 박정희에게 중요한 사실은 야당 후보의 도전과 영향력이 매우 강력했다는 사실에 있었다.(박상훈, 50면) 따라서 박정희 등 군사적 권위주의 세력은 반호남주의와 반공산주의를 결합시켜 반호남주의를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영역으로 승화시켰다.
당시 박 후보 측은 "이런 사람이 호남대통령은 될 수 있겠지만 어떻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동아일보 1971년 4월 23일자 재인용)라고 공격했고, 한편 안보논쟁에서 DJ를 이적행위자로 몰아부쳤다. 당시 국방장관은 '예비군 폐지는 김일성의 남침을 촉진·유도하는 이적행위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DJ는 합리적인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빨갱이요, 호남지역주의자로 고립됐다. 덧붙여 호남인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민주화에 대한 염원과 투표 행태마저도 일종의 한풀이라는 지극히 전근대적 정서와 DJ에 대한 숭배의 영역으로 왜곡시켜버렸다.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태일 교수의 발표다. "사실 지역주의는 영남지역의 선행적이고 공세적이며 권위주의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호남지역의 그것은 수세적이고 방어적이며 저항적이라고 할 수 있다"(2009년 7월 15일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 토론회 발제문, 정치적 다양성의 도전과 실패)
적대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거울 이미지
문제는 이러한 지역주의가 두 개의 거울을 마주 놓는 것과 같아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적대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데 있다라는 것이다. 이른바 '거울효과'론이다. 거울효과를 인정하는 순간 "지역주의에 대한 해결은 반드시 역사적 선행요인을 거슬러 올라 그 순서대로 열쇠를 찾아야 한다거나 공세적 요인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양쪽 거울을 동시에 깨야 한다"(김태일)라는 논리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저항적 지역주의론'도 설 자리를 잃는다. 박상훈 대표도 "정치이념화된 반지역주의 내지 거꾸로 전도된 저항적 지역주의로 다시 부추기고 자극할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론이 무너지고 나면 정확한 책임소재와 범위를 따지기가 어렵게 된다. 거울의 스펙트럼을 따라가다 보면 책임의 경중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그 순간 지역주의는 '현존'이자 범접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화 되고 만다.
그렇다면 지역주의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고 지역주의의 피해자들은 어떤 목소리를 통해 이를 피해나갈 수 있을까. 피해자의 입장에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DJ와 지역주의에 대한 비판 혹은 DJ가 갖는 지역주의의 한계가 바로 지극히 미묘한 이 점에 존재한다. DJ는 소수파의 입장, 혹은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가해자가 먼저, 원인을 제공한 자가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아니 주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역주의를 입에 담는 순간, 그 순간 DJ는 지역주의자로 더 가혹하게 낙인찍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DJ는 그런 식의 해법이나 문책을 요구한 적이 없다. 물론 시민운동가라면 달랐을 것이다. 집권을 목표로 삼지 않는 순수운동가형 정당 정치가였다면 또 달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DJ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였고, 집권이라는 목표를 끊임없이 추구해 온 집요한 정치가였다. DJ는 정치적 수단과 연대를 통해 이를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평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역등권론과 'DJP연합'의 등장 배경
1997년 대선의 중요한 논리였던 '지역등권론'이 이론적 기반이었다면, 현실적 정치연합이었지만 몰가치적 정책연합이었다고 비판받았던 이른바 'DJP 연합'이 바로 DJ의 방법론이었다.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사실상 우회했다거나 도리어 지역주의를 이용했다는 비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고려대 사회학과 정태환 교수는 DJP 연합은 지역주의라는 현실적 차원과 단순다수 대표제라는 제도적 차원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결과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원이 결국 정권의 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에 김대중 정권의 성립과 위기 모두는 지역주의의 결과라고 평가한다.(정태환, 김대중 정권의 성립과 위기 : 지역주의 정치 동학을 중심으로) 8월 21일자 경향신문 김광호 기자의 기사도 같은 맥락에서 DJP 연합을 지역주의와 연계시켜 비판했다.
하지만 DJ 시대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당시 대한민국 정당의 한계요, 정치의 한계요, 풀뿌리 정치의 한계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가장 강력했던 민주화운동가요, 야당 지도자로서의 DJ 책임을 결코 부정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책임의 경중과 선후는 따질 필요가 있다.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 피해자에 대한 비난만큼이나 적절했을까. 권위주의 세력의 지역주의 망국론에 대한 정치적 프레임을 깨트리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 도리어 이러한 지배구조와 주류사회에 편승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김태일 교수는 양쪽 거울을 동시에 깨자고 한다. 대안은 선거제도다. (정태환 교수도 같은 입장이다.) 박상훈 대표도 이와 유사하다. 결국은 정당이 중심이 된 정치판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DJ에게 가해지는 지역주의의 한계가 바로 대한민국 정치의 한계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인과관계가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DJ는 지역주의의 원인이라기 보다 결과이다. 그리고 지독스런 결과 책임에 시달리고 있다. 전근대적 책임구조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과 책임구조가 해체될 가능성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집단주의와 연고주의, 여기에다 사적대통령제와 승자독식주의가 국민주권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누구나 이상론으로 거론하지만 계층정당, 정책정당의 길은 멀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비판은 가능하다. 하지만 한계를 인정해야
DJ가 저항적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정당, 좀 더 분권화되고 민주적 구조에 입각한 정당을 건설할 수는 없었는지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런 민주적이고 정책지향적인 정당 구조를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했더라면 하는 순수 논리적 아쉬움을 얘기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정치 DJ, 집권을 목표로 했던 DJ를 반드시 고려해 놓고 평가해야 한다. 그랬더라면 좋았을 걸하는 영역과 당시의 엄연히 존재했던 현실의 상황을 제대로 종합해야 한다. DJ의 한계와 DJ가 살았던 시대적 한계를 구별해야 한다.
DJ는 앞선 자신의 말대로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이른바 '동진정책'을 햇볕정책만큼이나 중요시 했다. 결국 본인의 자인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김태일 교수는 대구경북 지역을 바탕으로 한 '동진정책'의 실패를 분석했다. 첫째, 밀라노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돈으로 지역보수기득권 세력과 제휴하려 했던 시도. 둘째, 특별예산 확보 등 민원 해결사적 방식으로 지지기반을 확대하려 한 점, 셋째, 지역발전에 대한 비전이 없이 지역성장연합의 발전주의적 의제를 추종한 점, 넷째, 정당이라는 정치적 기제를 중심으로 추진되지 않고 대통령과 청와대 중심으로 밀어부쳤다는 점 등을 실패의 원인으로 삼았다.
물론 이 점도 DJ의 한계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DJ 이후의 과제라 하는 게 더 옳을성 싶다.
대안은 결국 '민주주의'다
최근들어 지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지역적 일체감이 정당 일체감으로, 다시 특정 정당의 몰표로 이어지고, 여기에다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보수이념과의 일체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과 특정 정당과 특정 이념이 강고하게 결합되었을 때의 위험성은 또 다른 지역주의의 이데올로기성에 대한 탐구과제가 될 것이다.
DJ가 지역주의와 지역갈등의 원인이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게 내 생각이다. 물론 저항적 지역주의 요소가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DJ는 현실정치가로서 현실정치를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동진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온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문제는 DJ 이후다. "지역주의가 본질적으로 반이념적, 몰정책적, 한국적 정치지형의 불행한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경북대 정치외교학과 채장수 교수의 토론문에서 인용)"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지역주의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악용하는 집단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그렇다 민주주의다. 강화된 민주주의다. 더 많은 민주주의다. 참여하는 민주주의다. 행동하는 양심에 기초한 민주주의다. 개인의 자유가 한없이 보장되고, 인권이 살아 숨쉬며, 개인의 자유만큼이나 공공성이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공화국, 그리고 이런 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주권자들의 끊임없는 정치적 행위, 이 점이 바로 DJ의 유업아니겠는가.
추신: 이 시대의 위인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살아남은 자의 의무에 대해 끊임없이 묵상하고 행동하며 언제나 바른 양심의 편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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