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 전 자진 사퇴를 하는 '명예로운 퇴진'론이 범여권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탄핵 심판이 어떤 쪽으로 결정이 나건 국론 분열과 대립을 막을 수 없으니 그 전에 대통령이 자진 사퇴를 하는 게 낫다는 논리다.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이 불발되는 '유리한 조건'과 헌재가 8인 체제 속에서 탄핵 소추안을 인용할 가능성이 커진 '불리한 조건'이 동시에 겹치며 '제3의 길'로 자진사퇴설이 등장한 것이다. 특검 수사기간이 종료된 뒤부터 헌재의 탄핵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가 자진사퇴의 시점으로 거론된다.
범보수 정치권이 박 대통령에게 이런 마지막 비상구를 열어줌으로써 조기 대선에서의 지지층 결집을 꾀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21일 "국론이 점점 분열돼 우려스럽다. 탄핵 재판은 사법적 해결이지만 사법적으로 탄핵 인용·기각으로 이 문제를 풀 것이 아니라 정치적 해법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탄핵 심판 전에 국민을 통합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 있는지 심사숙고하고 정치권도 탄핵 이전에 해법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며 "정치권도 이 문제를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정치적 해법' 주장은 최근 들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불문하고 조금씩 분출되는 분위기였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바른정당의 김성태 의원도 지난 17일 "명예로운 결단이 극단적 갈등을 수습하고 안정적 리더십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고 했었다.
자유한국당의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15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원외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지금이라도 탄핵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우택 원내대표 또한 13일 "저는 작년에 정치권 원로들이 '4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 6월 대선' 안을 제의했을 때부터 이런 정치 해법이 절대적으로 국회의 탄핵 소추에 앞서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탄핵 소추는 정치권의 책임지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정치적 해법론을 재점화했다.
보수 매체도 나섰다. <동아일보>는 18일 사설에서 "20년 전 못지않게 나라가 백척간두에 선 지금,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파탄으로 치닫는 것은 박 대통령 자신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라며 "이쯤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길인지, 진심으로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1974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탄핵 표결을 앞두고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사임을 발표한 일을 함께 거론하기도 했다.
청와대에선 이런 자진 하야설에 아직은 무게를 두고 있지 않은 모습이다.
그보다는 당장은 헌법 재판소의 최종 변론일을 3월 2~3일로 미뤄달라고 요청함으로써 탄핵 기각 가능성을 키우는 데 주력하며 동시에 특검 수사 기간이 연장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이는 헌재가 이정미 소장 권한 대행이 퇴임하는 내달 13일 이전 탄핵 소추안을 인용하고 곧바로 수사 기간이 연장된 특검이 박 대통령을 구속 수사하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해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헌재의 최종 변론일이 당초 헌재가 염두에 뒀던 24일께에서 일주일 뒤인 내달 초로 미뤄지면 자연스레 선고일도 '8인 체제'가 무너지는 내달 13일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진다.
7인 체제의 헌재에서는 재판관 1명만 유고 상태가 되어도 심판 자체가 불능이 되고, 2명만 기각을 해도 탄핵 소추안이 기각된다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3월 초 선고는 여전히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헌재는 이 권한 대행의 퇴임일 전까지 심판을 마무리 짓기 위해 증인 신문과 서류 증거검토 등 증거 조사 과정에서 쌓인 탄핵 사유별 쟁점을 정리하고 최종 변론 이후 원활한 재판관 평의와 결정문 작성을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고 한다.
특검 수사 기한 연장은 황 권한 대행이 기간 만료일인 28일로부터 하루 전 '불승인'으로 불발시킨다고 하더라도, 헌재의 심리가 3월 초 인용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면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28일에서 3월 초 사이 박 대통령이 '자진 하야'하는 카드가 급부상할 전망이다.
자진 사퇴를 통해 헌재의 탄핵 심판 사건이 각하되게끔 하고,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으며 새롭게 구성되는 검찰 수사팀의 조사를 받는 것이 특검에 의한 구속과 탄핵 인용이라는 상황보다 낫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면서다.
범보수 정치권에서 지난 주에 이어 '자진 하야론'을 계속 꺼내드는 것도 이런 상황 분석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특검 수사 기한 28일 종료와 내주 초 탄핵 심판 결정을 가장 현실 가능성 높은 조건으로 보고, 박 대통령에게 즉각적인 '감옥행'을 피할 비상구를 열어줌으로써 지지층 재결집을 꾀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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