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병역 거부자 대체복무제 도입이 사실상 '백지화'된 이후에도,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 세 명이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 세 번째 병역 거부 선언을 한 사람은 기독교 신자이자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재학 중인 하동기(25) 씨다.
13일 하동기 씨와 '양심에따른병역거부권실현과대체복무제도개선을위한연대회의'는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조속한 대체복무제 시행을 촉구했다.
대체복무제 사실상 '백지화'…"우리 사회 '인권시계' 거꾸로 도나"
▲ 13일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선언한 하동기 씨. ⓒ프레시안 |
또 하 씨는 종교적인 신념 이외에도 "2006년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이전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이 병역 거부 결심을 굳힌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의 권력, 그리고 군사력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게 한 사건이었다"며 "그 작은 전쟁을 경험하면서 폭력의 사용을 강제하는 국가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하 씨의 병역 거부 선언은 현재 5000여 명을 넘어서고 있는 병역 거부자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 신자를 제외하고는 39번째다. 하 씨는 지난 7일자로 입영 영장을 받았으며, 경찰 조사를 앞둔 상태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이영 의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정상복 목사, 2005년 병역 거부를 선언했던 임재성 씨 등이 참여했다.
한홍구 교수는 "전 세계 병역 거부의 역사는 사실상 기독교평화주의의 역사였다"며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껏 여호와의 증인을 중심으로 (병역 거부 운동이) 진행되었지만, 이제 모든 종교계가 앞장서서 병역 거부에 대한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연세대 종교극예술연구회 학생들이 '예수의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
2005년 병역 거부 선언 이후 충주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마친 임재성 씨는 "작년 대체복무 백지화 이후 우리 사회의 '인권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다"며 "출소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이유로 감옥에 가야하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난 후, 연세대학교 종교극예술연구회 학생들은 '예수의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현재 병역 거부 수감자만 450명…국방부는 대체복무 시행 관해 '묵묵부답' 그간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반사회적 행위'로 치부되던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복무가 '인권' 차원에서 조명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이다.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하고 '최초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알려진 오태양 씨를 필두로 유호근, 나동혁, 임재성 씨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적 배경을 지닌 젊은이들의 양심적 병역 거부가 잇따르면서 이 문제를 '양심과 인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는 시민사회 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제기됐다. 2002년 박시환 남부지법 판사(현 대법관)는 병역법에 명시된 양심적 병역 거부 처벌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 심판'을 청구했고, 2004년 헌법재판소는 국회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또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이 헌법과 국제 규약 상 양심의 자유와 자유의 보호 범위 안에 있다"며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다. 유엔인권위원회 역시 여러 차례 우리 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마침내 2007년 9월, 국방부는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2009년 1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체복무제는 다시금 난항에 부딪혔다. 작년 12월 24일 국방부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전면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병무청 연구용역 결과 중 여론조사 결과(대체복무 허용 반대가 68.1%, 찬성이 28.9%)를 근거로 하여 대체복무제 도입을 무기한 보류했다. 아직 대체복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유보의 근거였다. 그러나 당시 병무청 연구 용역을 시행한 대전대 진석용 교수조차 "500쪽이 넘는 연구용역보고서의 결론을 대체복무 도입이고, 여론조사는 보고서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말하며 국방부의 발표에 당혹감을 표했다. 국방부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 대체복무제를 사실상 '백지화'한 이후에도 병역 거부자들의 감옥행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병역 거부 수감자는 450명을 넘어선 상태다. 한편, 병무청이 의뢰해 진석용정책연구소가 작성한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입영거부자 사회복무체계 편입 방안 연구' 자료에 따르면, 병역제도를 시행중인 170여 개국 중 83 개국이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1개국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법적,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체복무 제도를 시행 중인 국가는 그리스, 노르웨이, 대만, 덴마크, 독일, 러시아, 스웨덴, 오스트리아, 폴란드, 핀란드 등 20개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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