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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심판, 뭔가 잘못됐다

[최창렬 칼럼] 헌재가 주권자를 거스를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지배다. 이는 종종 다수가 권력을 장악하여 소수를 억압하는 체제로 해석되기도 한다. 보통선거가 보편화되어 있는 현대에 와서도 민주주의는 여전히 중우정치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편 공화주의는 시민에 의한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헌정주의는 법에 의해 이루어지는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입헌민주주의의 개념, 즉 헌법에 의한 정치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헌정주의는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충돌은 심각하게 민의를 왜곡할 개연성이 높다.
이미 국민으로부터 '사실상의' 탄핵을 받았음에도 헌정주의와 법치주의의 우산 속에서 대통령 직을 유지함으로써 발생하는 손실과 기회비용은 법치주의와 헌정주의를 통해 얻는 안정감과 절차적 정당성을 상쇄하고 남는다. 탄핵 인용 여부를 단정할 수 없지만 그동안의 탄핵 심리와 검찰·특검의 수사 상황을 감안하면 인용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탄핵 인용을 바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탄핵 인용 후 대선정국에서 차기 지도자가 선출되면 새 정권이 출범할 것이다.
탄핵 절차가 길어지고 국민주권에 입각해서 선출된 지도자의 농단,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가결된 이후의 사회적 비용과 갈등에 대한 책임은 국민 전체가 집단적으로 나눠지는가. 헌법절차에 따른 대통령직 파면과 피의자들의 사법적 차원의 단죄로 전대미문의 게이트 사태는 일단락을 짓는가. 정치적으로 대통령 자격을 상실한 국가의 지도자를 교체하는데 이렇게 국력이 소진되고 사회가 갈등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제도는 어떠한 명분과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연합뉴스

맹자의 민본사상의 핵심은 혁명사상이다. 맹자의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즉 '백성은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말은 맹자의 민본의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민주주의는 민의 선택에 의해 정부를 구성하는 체제다. 그 정부가 주권자의 민의를 왜곡하거나 배신한다면 위임한 권력은 가능한 빨리 회수되어야 한다. 내각제라면 이 지긋지긋한 탄핵 정국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제라도 다 그런 건 아니다. 한국의 잘못된 제도 탓이다.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 재적의 3분의 2를 훌쩍 넘어 압도적으로 가결된 탄핵안의 유효 여부가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판단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상황은 국민주권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를 수 있는 사안이다.

최소정의적 관점에서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충족일지 모르나 민주주의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역설적 현상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헌법 구조에서 탄핵 심판이 기각될 경우의 상황은 지금은 예측하기 힘든 '상상 그 이상의' 국면이 될 것이다. 인용된다 해도 그 때까지의 소모적 갈등과 논란은 어떠한 가치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헌재, 특검, 공판 등의 사법적 절차와 대선정국의 어지러운 국면들로 대한민국은 혼돈과 패닉으로 점철된 '소용돌이의 정치'가 일상화되고 있다. 국민에게 최고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인인 대통령의 탄핵은 사안의 성격상 희귀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맞닥뜨릴 수 있는 사건이다. 탄핵은 주권자인 국민이 주권의 이름으로 위임한 권력을 회수·철회하는 조치일 뿐이다. 그래서 내각제 권력구조의 의회가 탄핵사유의 총리를 불신임하는 구조가 불가능한 대통령제에서는 탄핵은 국민의 대의기구가 결정하면 바로 효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인식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논의가 탄핵절차의 진행과 함께 논의됐어야 한다. 향후 헌법 개정 시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헌정주의는 서로를 강화하는 순기능으로 만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와 사법의 관계로 치환한다면 지금 정치는 사법에 종속되어 있는 형국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헌정주의에 의해 포획된 것이나 다름없다.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결정한 중대사안을 헌재가 뒤집는다면 이는 명백한 주권의 훼손이다. 헌법도, 법리도 주권자인 국민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시사평론가인 최창렬 용인대 교수의 정치 논평, <최창렬 칼럼>을 시작합니다.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 온 최창렬 교수는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전문가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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