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서민 보호하는 정부? 부자 만드는 여당?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서민 보호하는 정부? 부자 만드는 여당?

[김종배의 it] '부자 감세'를 '서민 증세'로 벌충하나

1.
어이가 없습니다. 부자 감세를 밀어붙인 정부가 이제는 서민 증세를 하려고 합니다.

기획재정부가 검토하고 있답니다. 감세정책으로 부족해진 세수를 메우기 위해 비과세·감면제도를 손질하려고 한답니다. 이를 위해 농어민에게 지급되는 면세유와 수송용 차량에 지급되는 유가보조금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답니다.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는 농업용 기자재 영세율도 검토대상에 올려놨다고 합니다.

뻔합니다. 정부가 실행에 들어가면 서민의 지출이 늘어납니다. 소비재 지출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생산재 지출이 늘어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 하는 경비가 늘어나고 그만큼 수익이 줄어듭니다. 서민 등골이 더 휘어집니다.

2.
백 번 아니라 만 번을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면세유와 유가보조금을 포함해 비과세·감면제도 대상 76개를 모두 합해도 한 해 감면 규모가 지난해 기준으로 3조 3백여억원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정부의 세법 개정으로 발생하는 감세규모는 향후 5년간 96조원에 이릅니다.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정부는 예산정책처의 계산방식이 잘못됐다며 감세 규모가 35조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사정은 매한가지입니다. 한해 감세 규모가 서민 증세의 두 배에 달합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독에 커다란 구멍을 내놓고는 바가지로 물을 퍼담으려고 합니다.

3.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말했습니다. 왜 부자는 감세해주면서 서민만 증세하느냐는 비판을 예상했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세냐 증세냐 논쟁과 관계없이 제도 도입의 목적이 달성됐는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라고 했습니다.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비과세·감면제도는 영구불변한 제도가 아닙니다. 일몰기한을 정해놓고 예정된 기한이 되면 자동으로 없어지도록 한 제도입니다. 그 기간 동안 지원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 제도 도입의 목적이 달성되면 없어지도록 한 제도입니다. 그러니까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말은 형식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논리는 그럴지 몰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목적 달성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4.
지난 겨울에 한 농민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전라남도에서 방울토마토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농민이었습니다. 이 농민이 전한 실상은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면세유 얻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보유한 농기계의 종류에 따라 면세유의 양이 책정되는데 그 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면세유 대금을 제 때 내지 않으면 면세유 지급이 칼 같이 중단된다고도 했습니다. 물정 모르는 서울 사람들은 면세유가 엉뚱한 데로 새나가는 현상을 비판하지만 그건 농기계를 많이 보유한 일부 '대농'의 짓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피해는 애먼 소농이 입는다고 했습니다.

농기계에 대한 불만도 컸습니다. 면세에 보조금까지 준다며 농기계를 사라고 권장만 할 뿐 그 다음엔 나몰라라 한다고 했습니다. 농기계를 생산하는 업체가 대부분 영세해 어느 순간 없어지는 게 다반사여서 부품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습니다. 가뜩이나 일손이 없는데 농기계 부품을 구하려고 군청과 인근 농가를 돌면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세율로 부가가치세 10%가 면제되지만 A/S에 들어가는 유무형의 비용은 그 것을 능가한다고 했습니다(영세율은 농어업용 기계 뿐 아니라 비료 농약 등에도 적용됩니다).

이 농민의 말을 좇다보면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비과세·감면제도 손질의 끝이 어디인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농어업용 기자재 영세율을 폐지하면 가격이 올라갑니다. 가격이 올라가면 농어업용 기자재를 살 수 없습니다. 농어업용 기자재를 사지 못하면 면세유 지급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행여 면세유가 축소 또는 폐지되면 더더욱 어려워집니다. 농어업용 기자재를 세금 물고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습니다. 기름값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5.
모르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정부가 기름값만이라도 확실하게 잡아주면, 그래서 면세유와 유가보조금 축소 또는 폐지를 상쇄할 만큼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면 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입니다.

산업연구원이 분석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국내 석유제품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제유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지난해 7월의 국내 휘발유 가격은 수입제품보다 365원이 비쌌고, 경유 가격은 457원 비쌌다고 합니다(수입 석유제품은 현물가격으로 국내에 수입한 뒤 국내 제품과 동일한 세금을 물리고 유통마진도 똑같이 붙이는 경우를 상정한 것입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3월 기준으로 휘발유는 42원, 경유는 59원 더 비쌌습니다.

더 심해질지 모릅니다. 석유제품에 낀 거품이 더 딱딱하게 굳어질지 모릅니다.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세계금융위기로 하락했던 국제유가가 최근 들어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거품을 가리는 논리, 즉 "국제유가 때문에"라는 논리의 입지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6.
답답합니다. 실상을 살피지 않는 정부가 답답하고 발밑을 보지 않는 여당이 답답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라디오 연설에서 말했습니다. "서민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국민통합을 이루는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들었습니다. 정부의 '공적'을 일일이 열거했습니다. 일자리 나누기와 희망근로사업으로 25만여명의 일자리를 마련했고, 보증확대와 대출만기 연장으로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크게 해소시켰고, 영세업자와 무점포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16일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부자당'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정확히 풀네임을 말하면 `부자를 만드는 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밝혔습니다. "서민의 눈물이 그치는 날이 바로 우리 경제가 살아나는 날이고, 대한민국이 도약하는 날이 될 것"이라며 "농기계 도입 초기 너도 나도 빚을 내 농기계를 사다보니 농촌사회가 피폐해졌으나 이제는 내 농기계가 아닌 농기계를 임대해 사용하는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